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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로봇 앤 프랭크(ROBOT & FRANK, 2012)

DidISay 2013. 2. 22. 23:26

 

개봉 전부터 굉장히 보고 싶었던 영화.

하지만 발자막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많은 관객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더랬다 (...)

 

영화 내용 자체는 우리가 로봇 + 휴머니즘 영화를 보면서 기대하는 딱 그 정서를 자극시켜 준다.

프랭크는 은퇴한 금고털이범으로, 전화질 하는 딸도 귀찮고  주말마다 방문하는 아들도 귀찮다.

그냥저냥 생활에 별다른 자극 없이 잉여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는 중에

아들이 시리얼이나 먹고 엉망인 집안인 상태로 살아가는 노인네의 꼬라지를 보다 못해서

최첨단 로봇을 하나 붙여주게 된다.

 

건강도 챙겨주고 요리에 설거지, 청소도 만능인 로봇 =ㅁ=

(이게 만약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 된다면 바로 사고 싶다;;)

하지만 프랭크는 이름 붙어주기도 귀찮아서 그냥 '로봇'이라고 부르고, 어거지로 로봇을 데리고 있다가

자신의 금고털이 기술을 로봇에게 전수해서 삶의 활기를 불어넣으려 시도하게 된다 -_-;;

 

 

 

 

인간이 되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많은 로봇 영화의 그것과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로봇은 딱히 인간의 감정을 갖거나 인간과 동질의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로봇과의 교감을 점점 바라게 되고, 로봇과의 추억을 아끼게 되는 것은 프랭크 쪽이다.

가족과의 자잘한 만남은 거추장스러워서 견딜 수 없어하는 그가

피를 나누지 않은 로봇에게는 특별한 자신만의 기술을 전수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가족에게는 부끄럽고 숨겨야하는 비밀이었지만,

자신의 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바로 그것을

로봇과 나누게 되었을 때 프랭크는 활력을 찾는다.

 

그래서 그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차마 로봇의 추억을 지우지 못하고 계속해서 망설인다.

이 추억은 치매를 앓고 있는 프랭크가 점점 놓쳐버릴 하루하루를 담고 있기에.

 

 

 

 

우리 세대의 대부분의 부모님은 이 영화의 등장하는 프랭크처럼

자식과 특별한 교감을 나눈다거나 함께 생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와 남자친구의 부모님도 그렇고, 나 역시 그러하다.

 

짐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고, 자녀들이 어느정도 성장한 뒤에는

봉양 받아야하는 수동적 처지나, 잡다한 부모의 의무에서 벗어난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삶이 더 편한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서도,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것이 감정이 없는 로봇일지라도.

나와의 특별한 기억을 공유한 그 순간은 너무나 특별한 것이다.

 

 

우리가 홀로 외로워도 슬프지 않은 캔디. 영원히 쿨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일상과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