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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주먹왕 랄프(Wreck-It Ralph, 2012)

DidISay 2013. 3. 11. 14:58

사람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고유의 특성이 모두 다르고,

그에 따라 갖게 되는 직업이나 사회적인 위치 역시 차이가 난다.

 

흔히 우리는 모두 각각의 장점이 있으니 이를 모두 인정해줘야 해. 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경쟁하는 대부분의 과정은

가능한한 주목받는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한,

그리고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능력들을 갖기 위한 자리다툼일 때가 많다.

 

 

 

 

 

'주먹왕 랄프'는 추억의 오락실 게임 속 캐릭터 중 한명이다.

그의 장점은 그 어떤 게임캐릭터보다 파워풀한 두 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부수고 또 부수며 자신의 소명을 다 해봐도

게임 속에서 자신의 위치는 악당일 뿐이고, 모든 칭찬은 자신이 힘들게 부숴놓은 것을

다시 원상복구 시키는 펠릭스에게 다 돌아간다.

 

이런 자신의 처지에 회의를 느끼고, 펠릭스처럼 모두에게 칭찬받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메달을 따오려는 기나긴 모험의 과정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된 스토리이다. 

 

 

자신의 코도 석자인 마당에, 아웃사이더 처지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바넬로피 덕분에 일은 점점 꼬여가는데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생동감 넘친다.

 

'주먹왕 랄프'는 소싯적에 조이스틱 좀 만져봤을 사람이라면 향수를 불러일으킬만 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게임 배경음이나 오락실의 풍경들이 어찌 그리 훈훈하던지 :)

어릴적 내가 좋아한건 펭귄이랑 서커스, 그리고 슈퍼마리오였는데

집에 게임팩이 있어서 동생이나 사촌들이랑 경쟁하면서 했던 기억이 났다 ㅎㅎ

 

 

 

 

영화 속 캐릭터 하나하나가 게임 속 인물이다 보니 아주 개성이 뚜렷하고,

스토리 라인이 아주 매끄러워서 어른들이 보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각 게임의 특성들을 각각 잘 살려내서,깨알같은 재미가 있다.

콜라온천에 멘토스 기둥이 붕괴되면서 폭발하는 장면을 또 어디서 보겠는가 :)

 

단순무식하지만 정이 넘치는 랄프도 좋고,

귀엽고 올망졸망한 매력이 있는 슈가러시의 캐릭터들도 즐겁다.

작은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아기자기 해서 잘 짜여진 퍼즐처럼 느껴졌다.

 

상처 받은 존재들끼리 뭉쳐서 자신의 운명을 돌파하려는 시도는 흔한 시련극복형 이야기 같지만,

이야기의 배경이 게임 속 세상이라  휙휙 바뀌는 분위기가 좀더 박진감이 넘치고 통통 튄다.

 

 

 

 

악당이 아닌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랄프는 새로운 영웅이 되기 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자신 역시 게임의 주인공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길을 떠나려 했던 바넬로피는

자신의 꿈을 이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누군가는 영웅이고 주인공이며, 누군가는 악당이며 그늘진 자리에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게임을 살리기 위해 화합하여 최선을 다한다.

짓밟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동료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평범한 존재들이 사실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한명한명의 영웅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는다.

 

그래서 빛나는 위치에 오르지 않는다면, 주목할만한 결과가 없다면

'잉여인간' 이나 '루저'라고 쉽게 딱지를 붙여버린다.

 

하지만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내 삶의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잡고 행복하다면 또 그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허덕이며 살아가는 '주인공'보다는,

비록 하찮아도 하루하루 삶의 작은 목표를 향해 나가는 '엑스트라'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