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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Jiseul, 2012) 본문

그들 각자의 무대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Jiseul, 2012)

DidISay 2013. 4. 1. 01:22

내가 오멸 감독의 '지슬'을 예전부터 기다려온 주된 이유는

4.3사건에 대한 안타까움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때문에 사실 영화 자체의 작품성이나 재미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건 자체가 너무 잔혹한 역사였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처럼 딱딱하거나 사회비판적인 성격이 강할거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지슬'은 객관적으로 정말 잘 만든 영화였고

마냥 딱딱하거나 날을 세우고 있는 작품도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오기까지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악 혹은 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학살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명령에 의해,

혹은 빨갱이에게 죽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때문에 총을 겨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집을 떠나 동굴로 피신하게 된 제주도민들 역시

절대적으로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이들의 단점들이 학살을 당할만한 이유는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저 그 시대에 그 지역에 살고 있었을 뿐, 우리네와 너무나도 닮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초반에 왜 나뒹굴고 있는 제기들을 보여주는지 의아했는데,

영화 자체가 제사의 절차에 따라 '신위-신묘-음복-소지'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지 65년만의 제사라니. 그것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겨우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이

슬프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주 자극적이고 잔인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영화의 느낌은 단정하고 아름답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정적으로 보여주는 씬들이 많은데다가,

화면이나 음악들이 격정적이거나 강렬한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흑백의 대비가 주를 이루는 화면 덕분에,

몇몇 장면들은 아주 인상깊게 다가올 수 있었다.

 

조용히 칼을 가는 소리.

커다란 가마솥에 돼지가 통으로 삶아지는 이미지.

학살이 일어난 뒤 하얀 연기로 가득찬 집들과 불타는 지방지의 오버랩.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순덕이의 벗은 몸을 닮은 둔덕. 그리고 그위를 달리는 마을 청년의 질주.

검은색만 존재하는 동굴에서 이어지는 주민의 끝도 없는 대화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덧)

 

1, 오멸 감독 자신이 제주출신인 까닭에, 제주도의 설화나 방언을 아주 잘 살렸다.

이야기 곳곳에 설화적인 이미지가 차용되어 있고

'지슬'이란 제목 자체도, 제주도민들이 동굴에 숨어서 먹던 피란음식인 '감자'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에서 제주방언을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주방언을 이렇게 긴 시간동안 제대로 들은건 처음이었다.

 

섬 지역의 말들은 대체로 억양이 거칠고 꺽음새가 많은 법인데,

제주방언은 억세지 않으면서도 순박한 그 느낌이 참 좋더라.

 

 

2. 도움이 될만한 감독 인터뷰.

http://www.artpluscn.or.kr/NextPlus_webzine/81/NextPlus_webzine_81_13.html

 

 

 

이건 씨네21에 실린 것.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더 공감하면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