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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2013 제 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DidISay 2013. 5. 4. 15:03

일본드라마 '수박'은 어린 주인공이 형편 없이 망쳐버린 시험지를 태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뒤이은 장면에서는, 쌍둥이자매가 주인공에게 다가와 

이제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종말이 올테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다.

 

나른한 매미소리와 전원적인 풍경, 여름날의 습기와 무더움이

지구멸망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라 인상적이었는데,

201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김미월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읽다가

저 장면이 문득 생각이 났다.

 

만약 내일 지구의 마지막 날이 온다면,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할까?

 

 

종말을 다룬 영화나 만화들은 수없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종말 전후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파괴, 광신론적 행위를 급박하게 그려내고 있기에

우린 종말..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몸을 움츠리며 불안함에 휩싸이게 된다.

 

사실 이런 영화들을 볼 때면, 종말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인지

아니면 미쳐돌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이 더 무서운 것인지도 헷갈릴 지경.

 

 

 

 

주인공은 숙취에 잔뜩 취한 채, 종말 전날의 반 이상을 까먹어버린다.

그리고 문득 아 내일이 정말 마지막 날이 오는 것인가 싶어,

밖을 보고 뉴스를 보아도 인기검색어가 지구멸망으로 바뀌었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나름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다.

 

아니 오히려 버스는 요금을 받지 않고, 동네 슈퍼들은 무료로 식품을 배포하며

가족들은 한데 모이고, 헤어졌던 연인들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먼거리를 달려간다.

일상에서 나를 옭아매었던 그 모든 제약들이 사라졌으므로,

이들은 어쩌면 좀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설핏 스쳐갔다.

 

 

미디어를 통해 익숙하게 접했던, 파괴나 방화도 우발적인 범죄도 이 소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좀더 허전하고 느슨하고 심심한 모양새다.

 

소설을 읽다가, 내일이 멸망의 날인데 그저 목이 마르고 졸립고

천도복숭아 통조림에 집착하는 주인공 때문에 순간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불현듯 어젯밤 술집 계산대 앞에서 공과 옥신각신하다가 텔레비전 뉴스 속보를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저거 다 뻥이야! 공이 외쳤던가. 맞아, 다 뻥이야! 내가 맞장구쳤던가. 그러고 보니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우면서 했던 생각도 떠올랐다. 자면 안되는데,  지구가 멸망하는데 잠이 온다니, 말도 안돼.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목이 말랐다. 나는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 "테레비 봤냐?"

"네"

"힘든데 니가 내려올 것도 없다"

"네?"

"느 엄마 생각도 그렇고, 우리가 서울로 올라가마"

 

  하마터면 왜요 하고 물을 뻔했다. 아버지는 어째서 최후의 날을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평소에 그리 가정적인 사람도 아니었으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대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 혼자 있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점심 먹고 바로 출발하면 저녁 전에는 도착할 거다."

"엄마는요?"

"고추 딴다고 밭에 나갔다."

 

오늘 같은 날 고추를 딴다니, 기가 찼지만 나는 순순히 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동안에도 카카오톡 메세지들이 속속 도착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메시지를 확인하는 대신 냉장고를 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뉴욕의 9.11 테러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 갑작스러운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이 저마다 소중한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든가 미안하다든가 했다는 일화를 접했을 때와는 느낌이 생판 달랐다. 그때는 남 이야기인데도 슬펐으나 지금은 내 이야기인데도 별 감흥이 없다고 할까. 아마 메시지를 받은 나도 똑같이 죽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해설은 이 작품이 88만원 세대와 같은 미래 없는 세대에 대한 뼈아픈 이야기라고 했다.

 

“우리는 그동안 김미월의 소설을 통해 성장과 입사의 문턱에서 좌절한 세대의 상처 입은 삶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희망이나 열정 같은 단어는 잊어버린 지 오래인 이들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팍팍한 곳인지도 대략 알고 있다. 어쩌면 이들이 ‘종말’이란 사건 앞에서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 파국을 ‘내일 없음’의 상태로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88만원이 아닌 4천원 세대라고도 하던데,

그런 미래 없는 이들. 아픈 사람들의 병든 종말을 다룬 소설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이 소설은 오히려 가장 마지막 순간에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혔다.

대학 때 자신이 우연히 썼던 이야기에서처럼, 연정을 품었던 사람과 함께 마주하고

어떤 고백이나 갑작스러운 대화 없이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그 순간.

너와 내 삶의 마지막 일부분을 가만히 나누는 그 마음.

 

그리고 지금까지 끙끙 앓던 통조림 뚜껑이 사실은 뒤집기만 하면 되는 원터치 캔이었다는 것.

어쩌면 우리의 문제들은 대부분, 이 통조림 뚜껑처럼 너무나 허무하고 간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실에서의 여러가지 요소들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있을 뿐.

그래서 결정을 점점 미루게 하고 고민하게 만들 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마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일까란 생각을 참 많이했다.

이상하게 다른 세기말적 작품을 읽을 때는 저런 생각이,

자극적인 볼거리에 묻혀서 잘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좋았던 소설들.

 

대상을 받은 김종옥의 '거리의 마술사'는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무난무난한 느낌.

오히려 황정은이 '상행上行'이 참 좋았다.

현대소설에 이런 운율을 넣을 수 있구나 싶어서 대사를 계속 여러번 읽게 되더라.

 

보통 소설의 대사들을 읽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되새기게 되는데,

할머니들의 구성지면서도 다소 메마른 음성들을 이렇게 자연스레 상기시키는 이야기는 오랜만이었다.

 

콩 봐라

저 아까운 콩 봐라

 

...

 

이 집 팔아서 뭘 한대요.

오제의 어머니가 물었다.

글쎄 뭘 한다나 사업을 한다나

아주머니가 말했다.

지랄하고.

노부인이 말했다.

늦게 팔려라.

오제의 어머니가 말했다.

늦게 팔려라.

노부인이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릴적에 시골 한옥 마루에서 배 깔고 앉아 그림 그리며 수박 먹던 생각도 나고,

할머니의 잰 손길로 완성되던 푸짐한 먹거리들도 그리워졌다.

그리우면서 슬프고. 씁쓸해지던.. 괜시리 눈물이 날 것 같은 소설이었다.

 

  더 늦기 전에 출발하기로 하고 마당으로 나섰다. 고추밭 주인이 전구를 켜서 마당을 밝혔다. 고추며 감이며 고구마며 호박이며 그 많은 자루를 싣고 보니 차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타이어 아래쪽이 빵빵하게 눌려서 못이라도 박히는 날엔 속절없이 터질 것 같았다. 누군가 내 팔뚝을 톡,톡, 두드렸다. 노부인이 내 얼굴을 바짝 들여다보고 말했다.

 

자고 가.

밥 줄게.

 

  누군가 도와줬으면 해서 둘러보았지만 오제도 오제의 어머니도 짐을 확인하느라고 바빴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서 있다가 다음에 와서 자고 갈게요, 라고 말했다. 몇 겹으로 왜곡된 안경 속에서 노부인의 눈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다음에 오냐.

네,

정말로 오냐.

네.

나 죽기 전에 정말로 올 테냐.

....

 

오긴 뭘 오냐 니가, 라고 토라진 듯 중얼거리는 할머니 앞에서,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자 약속도 아닌 약속을 해버린 나는 얼굴을 붉혔다. 오제의 어머니가 자동차 뒷좌석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할머니, 우리 이제 간다고 말했다.

 

  고추밭 주인은 마지막으로 헛간 벽에 널어 말리고 있던 시래기를 한 두름 따서 가져왔다. 아무에게나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며 한사코 거절하려는 오제의 어머니의 무릎에 시래기 두름을 던진 뒤 차 문을 닫고 뒤로 물러놨다. 돌을 튀기며 마당을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내 무릎을 바라보았다. 얼마쯤 멀어진 뒤에야 사이드미러를 통해 보니 아흔 살 노부인이 조그맣게 마당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