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김선주 본문

소리내어 책 읽기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김선주

DidISay 2013. 6. 6. 10:06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감성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흔한 책일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이 낯익어 이력을 확인해보니,

제3공화국 조선/동아일보 해직사태를 거쳐서 한겨레 논설위원을 지낸 바로 그 '김선주'씨였다.

가끔 여성언론인이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거론할 때 이름을 올리곤 하는 그녀.

 

담백하면서도 강단있는 글솜씨가 좋아서

기억에 남는 사설들을 확인해보면 김선주씨일 때가 많았는데 반가웠다.

 

 

 

 

이 책은 그동안 그녀가 써왔던 글들을 모아놓았는데,

그 시기가 저마다 달라서 굉장히 다양한 주제와 생각들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시사저널 사태처럼, 한참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글을 읽고 다시 떠올리게 된 이슈들도 있다. 

 

어떤 것은 내 생각과 비슷하고, 어떤 것은 다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거부감이 들거나 책을 덮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맑고 곧아보이는 그녀의 삶과 성품 때문일 것이다.

 

책의 거의 모든 글들이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나 삶에서 출발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다른 사설에 비해 부드럽고 좀더 친근한 느낌이 들며

이런 경험으로 어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발전시키는구나 싶어서

다시 한번 내 일상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축이 되었다.

 

 

 

얼마 전에 본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친구들과 위스키를 맛보는 장면이 나온다.

민감한 감각을 가진 주인공은 한모금의 액체에서

수많은 정보를 읽어내고 맛과 향을 감지했지만,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그저 '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같은 시기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그 안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는 천차만별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선택과 사유의 깊이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사소해 보이는 그것들이 모여서 내 인생의 격格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0대를 넘어간 나이에.

누군가에게 '노인' 혹은 '할머니'로 비춰질 나이에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그에 따라 삶을 살아가려는 그녀의 모습이 참 대단해보인다.

나와 30년이 넘게 차이가 나는 분인데,

이정도의 감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썼다는 것도 놀라웠고.

세상에 이런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좀더 멋진 세상이 되겠구나. 하는 희망을 발견했다.

 

 

 

 

 

 

어른들도 성장해야 한다


  50대 이상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고전을 읽고 깊이 있는 독서를 해야만 정신이 고양되고 자아가 확장되고,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된다고 믿어온 세대에 든다. 20대인 아들이 제대로 된 책, 그러니까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줄만한 책을 읽지 않는 것에 절망스러울 때가 많다. 아들에게 그렇게 책을 안 읽으면 무식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냐고 하니까 1초도 뜸을 들이지 않고 어머니 세대가 생각하는 유식과 우리가 생각하는 유식은 다르다며 자신도 자신의 세대에선 무식한 사람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하도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쉬고 또 내쉬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 그다지 잘못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계시면 올해 100살인 친정아버지는 말끝마다 공자 맹자를 인용하셨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충고나 중국 고전을 읽어야만 사람 사는 도리를 알게 된다는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쇠귀에 경읽기라고 혀를 차면서도 벽마다 한문 글을 써 붙이고 우리에게 감동을 강요했다. 형제들은 공자와 맹자는 몰라도 살 수 있으며 우리들은 충분히 유식하다고 생각했다. 친정어머니는 결혼해 보니 전문학교를 나왔다는 아버지가 모차르트를 모르더라고 아버지의 교양 없음을 흉보셨다. 일본의 고전에는 능통했지만 사르트르도 프로이트도 잭 케루악도 모르는 어머니도 유식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부모에게 말할 용기는 없었지만 부모님이 생각하는 유식과 내가 생각하는 유식은 다르니까 상관하지 말라는 마음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교양이나 지식이란 것도 시대의 산물이고 보면 시대흐름이나 시대적 상황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지식이나 교양은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때 우상처럼 보였던 언니들은 서구의 인문학적 교양주의 세례를 받은 세대로서 박학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의 내눈엔 그렇게 비쳤다. 그러나 최근에 언니들과 얘기를 해 보면 젊었을 때의 지칠줄 모르던 지식욕은 사라져 있었고, 과거가 좋았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 최근의 사회문화 현상과 새로운 경향을 흡수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어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 20대에서 성장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부터 우리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세대간의 틈과 갈등, 가치관 차이로 인한 충돌은 모두 이런 맥락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배웠으며 우수한 학력을 갖췄고 , 우리 시대의 지도층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우려와 나아가 엄청난 거부감은 익숙했던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되는 것에 대한 불안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머리 허연 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시에 자극을 받고 각종 사회적 쟁점에 대해 궐기대회를 조직하고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그런 연유로 읽힌다.

 

  수박겉핥기식의 교양주의는 학문적 관점에서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회가 다양해지고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선 정보를 따라잡고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롭게 자아를 확장하고, 정보를 지식으로, 그것이 현실을 움직이는 힘이 되도록 교양을 쌓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가쁜 일이다. 깊이있는 독서는 못하더라도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 아이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성장해야 한다. 10대와 20대에 받은 교육이나 그로 인해 형성된 자아나 가치관으로 이 시대를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인생이 80까지로 늘어났고 사회가 급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계속 성장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세대간의 틈은 좁혀 질 수 없다. 젊어 보인다면 누구나 좋아한다. 젊어 보이기 위해서 염색도 하고 옷차림도 유행 따라 바꾸고 헬스클럽에서 근육운동도 열심히 한다. 그러나 정신이 젊어지기 위해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평생 공부해야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새로 배우려는 자세가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고 공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너희는 박수부대로 살아라

 

  결혼하여 전세집을 전전할때는 괴롭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전학을 자주 하게 되고, 내집, 내고향이라고 추억으로 간직할 곳이 없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특히 학업성적이 좋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잦은 이사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면 자책감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좋은 교육환경은 이미 실패했으니 대신 결혼할 때는 조그만 집이라도 장만해주어야겠다고 했더니 후배들이 펄쩍 뛰었다. “불공정해요,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적어도 인생의 출발은 공평한 스타트라인에서 해야되는 것 아니에요, 알만한 선배까지 그러면 곤란하지요” 하며 내가 무슨 악덕재벌이라도 되는 듯 공격했다. “그래 인생이 불공평한 건지 몰랐니? 너는 머리가 아주 좋잖아, 그리고 너는 미인으로 태어났잖아, 그리고 너는 어렸을 때 좋은 환경에서 자랐잖아, 그 모든 것이 세상살아나가는 데 같은 무게의 불공평 아니니?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한 거야”라고 응수했다.

 

  골프선수 박지은이 첫승을 거둔 날, 미국에 머물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경영하는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음식값을 받지말라고 했다. 점심때부터 오후 다섯시까지의 음식값이 4천 5백만원, 하루의 매상이 1억은 거뜬히 넘는 대형기업이다. 우승상금과 맞먹는 돈을 하루에 벌 수 있으니까 한턱 쓰는 사람이나 공짜음식을 먹는 사람이나 부담이 안가는 아주 기분좋은 광경이다.인터뷰에서도 박지은은 아주 능숙하고 거침이 없다. 본인의 능력과 노력도 뛰어났겠지만 일찌기 외국에 나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준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박지은의 태도에선 부자의 여유로움과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베어 있다. 시간강사로 서울대와 지방의 대학을 여러곳 뛰는 친구는 세칭 일류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은 품행도 좋고 각종시설이나 행사등 볼것 들을 것이 많은데, 지방대학은 명색이 도서관에 시사주간지 영화잡지 복사기 하나 변변한게 없으니 잘되는 놈은 더 잘되고 없는 놈은 점점 처질 수밖에 없다며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어이할꺼나 눈물을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최근 과외가 허용되면서 우리 사회는 누구나 재주껏 자녀를 박지은을 만들라고 부추기는 분위기다. 국가의 기능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태생적인 불공정함을, 그러니까 그것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사람 사이의 불평등을 요소요소에 장치를 하여 교육으로 의료혜택으로 세금과 연금등 복지정책으로 완화시켜 사회적 불안이나 빈부의 격차 기회의 불균형을 메꾸어주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점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능력주의가 만연해 박지은처럼 키우라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그것봐라 조기유학만이 길이야 영어못하면 언론도 바보취급하잖아 탈법 불법 편법이면 어때 성공하면 그런 것은 흉이 되지 않아. 지난 시절 일부특권층에서만 벌어지든 일이 이제 모두 합법이 되므로써 이런 분위기는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되고 그것이 자랑이면 자랑이지 흉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언론도 교육의 수월성이니 영재교육이니 하며 능력 있으면 키워주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고교입시부활이니 특수학교니 특별전형이니 어딘가 공정치못해 보이는 정책에 힘을 실어준다.

 

  공교육의 목적은 국민 대다수의 일반적인 교양수준을 높이는 것이지 몇몇스타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몇년전인가 교육개혁에 앞장선 교육부장관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떨어져 산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현역 교육부장관까지 이 나라의 공교육을 믿지 못한다고 폭로한 꼴이다.

 

  그렇게 잘 키워진 사회 각분야의 스타들이 국위도 선양하고 돈도 잘 벌어오고 때되면 잘 먹여살릴테니 너희 능력없는 사람들은 박수부대로 살아라이다. 만약 태어나서부터 기회를 얻지 못하고 국가가 적절하게 대책을 세우지 않아 인생의 길목길목에서 실의와 좌절을 겪었을 젊은이들이 더이상 박수부대는 안하겠다면 어쩔것인가.후배가 뱉은 말 “그러니까 세상이 한번 뒤집어져야 해요”라는 말이 칼같이 가슴을 후벼팠다.

 

 

 


 

 

 페미니스트에게 빚지다

 

   세상에는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만 요란했지 정작 행동에서는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겁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 대의에 찬동하면서도 손끝 하나 까딱 안 했기 때문이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견해를 밝히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뒷북 치기에 머물렀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시대를 같이 살아온 사람 가운데 몸과 마음을 바쳐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살았던 사람들 모두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얻은 자유와 권리에 무임승차해 그러한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사는 것이 아주 미안스럽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고맙다. 해방된 뒤에 태어나 내 땅에서 내 나라 말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사는 세대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다행스럽고 감격스럽게 생각한다.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대항해 싸운 사람들, 4·19와 광주항쟁, 그리고 민주화운동과 자유언론운동을 하면서 감옥에 가고 목숨을 잃은 많은 이들을 떠올리면 나의 비겁이 부끄럽다.

 

  요즘 세대들은 이러한 것들에 무감동·무감각하지만 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는 하나도 거저 얻어진 것은 없고 모두 투쟁과 희생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월드컵 열기 속에서 젊은이들의 분방한 옷차림이나 거침없는 자기 표현을 보면 그래도 우리 세대가 이 정도까지의 세상을 만들어내었구나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안정환 선수가 골을 넣고 아내를 향한 반지 골 세리머니를 한다거나 이천수 선수가 속옷에 애인 이름의 이니셜을 보이며 골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군사독재 시절 어떤 운동선수도 예외 없이 국제적인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면 땀을 닦을 시간도 없이 본국의 대통령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 했다. 우승 소감은 으레 대통령 각하 운운하면서 공덕을 대통령에게 돌리던 것이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사회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현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아 내가 살아서 생전에 이러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다니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아직도 이런 세상이었단 말인가 하는 한탄이 나오는 때가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페미니스트들한테이다. 왜냐하면 민주화, 언론자유, 사회정의 등의 문제에는 적극적 지지 세력에 속했었기 때문에 후회가 없지만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내가 여성임에도 별 자각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자각한 것은 마흔 살도 넘어서였다.

 

  신문사는 야간국장을 부장들이 돌아가면서 하게 되어 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까지 하게 되면 48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인원도 부족했고 윤전기 사정도 좋지 않았고 배달 사정도 좋지 않았다. 항상 긴급 상황이 발생하는 격무였다. 처음 부장이 되었을 때 나는 야간국장을 안 했다. 당시 편집국장은 여자를, 그것도 아이 엄마를 야간국장을 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고전적 의미의 페미니스트였다. 당연히 나를 야간국장에서 빼주었다. 살았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 후배들 몇이 나를 조용한 구석으로 불러내었다. 선배가 야간국장을 안 하면 후배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고 질책했다. 힘든 역할을 여자라고 포기하면 우리는 바라볼 곳이 없어요라고 했다. 지금은 여자 부장이 한두 명이라 그렇지 만약 여자 부장들이 많이 생기면 그때는 남자 부장들이 여자들 부장 시키는 것에 반기를 들 것 아니냐고 했다. 야간국장을 시작했다. 그때 내가 속한 조직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권리의 이면에는 이러저러한 의무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그때까지 여자도 남자와 꼭 같은 권리가 있다는 것만 생각했지 권리에 따른 의무도 있다는 것을 외면했던 것 같다. 권리는 갖고 의무는 여자니까라는 방어막 속에 숨었었다.

 

  호주제 폐지도 그렇다. 고은광순이라는 진지하고 성실할 페미니스트가 광야에서 선지자가 외치듯 혼자서 호주제 페지를 역설하고 국회로 언론사로 전단지를 들고 다닐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불가능한 일을 왜 시작했냐 싶었다. 문중 재산을 여성들에게도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는 그게 될 일인가 했다. 그런데 모두 이루어졌다. 온갖 박해와 방해, 비난 속에서…

 

  그 뒤로 여성 문제에 관해 글을 쓸 때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내 시각보다 앞서는 글을 썼다. 내가 페미니스트의 소양이나 여성적 시각이 기본적으로 부족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못하고 항상 뒤에 가서야 당시에는 급진적으로 보이는 문제 제기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성 문제는 여성의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보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다는 확고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이 온갖 박해와 방해, 비난 속에서 시작해 이루어놓은 성과물은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 무임승차로 공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부문처럼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여성의 권리는 법적으로 눈부시게 신장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가 페미니스트들한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나 자유에 대해 무심하다.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것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대를 무릅쓴 투쟁에서 얻어졌으며 거기에는 그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