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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길위에서 (Bhikkuni - Buddhist Nuns, 2012)

DidISay 2013. 5. 28. 00:49

주말. 분노의 질주를 볼까. 유료시사회를 한다는 스타트렉을 볼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뭘 하나 싶어 찾아보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영화 한편. '길 위에서'

 

당신도 혹시 나처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나요?

 

명문대 졸업, 미 유학파, 젠(Zen) 센터의 경험으로 출가한 ‘엄친 딸’ 상욱 행자!
 어린 시절, 절에 버려져 ‘동진 출가’의 업을 지닌 선우 스님!
 ‘신세대형’ 비구니, 인터넷 검색으로 ‘절’에 왔다는 민재 행자!
 37년간 수행의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영운 스님!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이 머리를 자를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곳, 비구니 수행도량 ‘백흥암’
 그곳에서 비구니와 함께한 300일 간의 템플스테이가 공개된다!

 

감독도 영화도 모두 낯설었지만,  비취빛이 도는 포스터의 느낌이 참 좋았고

저 문구들이 마음을 끌어서 극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내가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피상적으로 접한 얄팍한 지식이 끝이지만,

사찰과 불상들. 그리고 그 호젓한 분위기를 사랑하고

어떤 신을 믿는 종교보다는 나 자신의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의 교리에 좀더 이끌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이나 거부감은 없었다. 애초에 종교색이 강한 영화도 아니었고.

 

 

예전에는 속세의 길을 떠나서 부처님의 품으로. 혹은 수녀원이나 수도원으로.

혹은 다른 어떤 다른 구도의 길로 빠지는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거나 공감해본 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 삶에 대해 좀더 성찰하게 된 것은, 2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삶의 다양한 면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된 후였던 것 같다.

그 후에야 그 길이 얼마나 많은 생각과 굳은 의지가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왜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때때로 나도 삶이 힘들고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조용한 사찰이나 무인도에서 1,2년 정도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으니까.

 

 

 

 

이 영화에서 이창재 감독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과정을 1년동안 지켜보면서

이를 다큐멘터리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제 막 머리를 깍은 스님부터 온화한 미소의 주지스님까지

다양한 사연과 경로를 거쳐 한 길을 겪게된 이들의 모습이 참 다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큐멘터리. 그것도 스님들의 삶을 다룬 이 영화를 내가 졸지 않고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영화는 중간중간 수줍고 작은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시는 모습이나

핸드폰으로 추억을 남기는 일상들은 마치 여고생들의 교실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어 귀엽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영화 중간중간 계속 눈물이 나서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손수건을 쥐고 있어야 했다.

 

화면에서는 담담한 목소리와 작은 새소리들. 물흐르는 소리. 풀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들이 새어나오고

수없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풍경들이 지나가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부모와 형제를 버리고. 내 이전의 삶을 모두 내려놓고

그저 창만 바라보고 3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홀로 수행하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17살에 들어와 어느덧 노인이 된 영운 스님은 이런 말을 한다.

매일 화두를 붙잡고 있지만 화두와 한 몸이 되는 건 쉽지 않다고,

밥값을 해야 하는데 밥값을 하지 못하면 괴롭다고...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은 피 한 그릇과 똑같다며

스님은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오늘 먹는 밥 한그릇도, 누군가의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일터인데

난 오늘 그 밥값을 오롯이 하고 있는 것일까.

 

밥값은 둘째 치고

작은 치열함이나 고민 따위도 없이

물 흐르는듯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된 하루.

 

 

 

 

 

 

 

덧) 영화 보고, '내가 출가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말릴거야?' 라고 물어봤더니

아니 안말릴거야. 라고 하길래 왜? 라고 했더니

한달 이상은 절대 못할거야-_- 라고 해서

 

-_-+

 

버럭. 하려다가...잠시 생각해보고 스스로 수긍해버렸음 =ㅁ=

 

일단 난 고소공포증 때문에 높은 절은 못 올라감 + 108배부터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