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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그와 그녀의 목요일(2013)-성남아트홀 앙상블씨어터

DidISay 2013. 6. 16. 02:00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정민과 은퇴한 국제 분쟁 전문 기자 연옥.

연옥이 암선고를 받고 은퇴한 뒤, 과거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매주 목요일날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로 약속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연극은 마리 카르디날의 ‘샤를르와 롤라의 목요일’이 원작이라 한다.

만약 20대초반에 봤다면 조금은 공감하지 못했을 연극 같은데,

대사가 어렵다거나 내용이 난해하다기 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가 다소 모호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개인적인 연애사는 엉망이다.

과거의 연옥은 이지적인 운동권 학생으로, 자존심이 강하며 주체적인 면모를 지녔고

정민은 아는 것은 많지만 행동하진 않는. 사변적인 역사학도였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 우연히 만나 취업 후에도 애매모호한 관계를 이어갔지만

엇갈린 타이밍으로 정민은 연옥에게 결혼을 알리고,

동시에 연옥은 자신이 정민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숨기게 된다.

그뒤 아내의 외도로 정민이 이혼한 뒤, 아이의 존재를 연옥이 알리지만

오히려 정민은 죄책감과 부담감 때문에 화를 내며 연을 끊어버린다.

 

연옥은 홀로 종군기자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

무지몽매한 촌동네가 싫어서 도시로 상경한 탓에,

어머니의 부고소식에도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었던 자신처럼

그녀의 아이 역시 가족의 보살핌을 거의 느끼지 못한채 성장한다.

이런 상황을 연옥 역시 미리 예감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기자로서의 커리어를 계속 쌓을 뿐.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옥이 암을 선고 받고,

정민이 옛연인과 새로운 결혼을 연옥에게 통보하는 그 순간까지도

이상하고 질척거리는 느낌일지언정 이어져왔다.

 

헤어진 옛연인과의 관계만 해도 머리가 복잡해지는게 연애사인데,

부부도, 옛연인도, 친구도, 섹스파트너도..그 무엇으로도 정의되지 않는

이들의 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규정지어야 하는 것일까.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과거의 연옥처럼 혼전임신을 하게 된 이들의 딸은 어찌 풀어나갈 것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궁금해졌다.

 

 

 

 

정민은 그의 결혼이나 연애사에서 책임을 떠맡게되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두려워 도망치고야 마는 그런 남자였고

연옥은 문득 연락했다가 갑자기 몇년씩 소식을 끊곤 했던 그에게

어떤 희망이나 미련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그렇지 않으면 실망할테니까.

 

연옥 입장에서 정민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사내이며

정민 입장에서 연옥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려는 비겁하고 겁많은 여자다. 

두 사람이 웃으며 떠드는 순간에도, 관계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연극이다.

이런저런 연애를 해보고 아파했던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대사들이 많았다.

슬픈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도, 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연극은 처음인 것 같다.

(나도 계속 우는 바람에 나왔더니 눈이랑 코가 발갛던;;;)

 

개인적으로 연옥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었는데,

자신의 감정을 그저 솔직하게 인정한다고 해서

비겁하거나 무책임한 행동이 면죄부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짜임새 있는 대사와 좋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탄탄한 줄거리 외에도 이 연극의 장점은 더 있다.

바로 사진인데, 두 배우들이 대화를 나눌 때

그리고 결말부분에서 계속 사진이 활용된다.

 

종옥의 직업 때문인지, 로버트 카파와 같은 종군기자들의 사진들

그리고 옛추억이 담긴 흑백사진들이 참 좋았다.

연극에서 사진매체를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렇게도 주제를 잘 보여줄 수 있구나 싶어서 인상깊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