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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나는 시간

흐르는 내 눈물이 진짜 꽃이라네

DidISay 2012. 1. 22. 17:53




일기는 보통 초등학교나 유치원에서 선생님의 숙제검사에 못이겨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숙제의 일환으로 시작했던 행위가 어느덧 십년이 넘게 내 일상 속의 일부로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으니 신기한 일이다.

 

삶의 길이만큼 켜켜이 쌓인 일기들을 꺼내 읽어보면서 갖는 추억과 상념들은 문득 자신이 서 있는 곳, 삶의 좌표를 확인하게 한다. 기억이란 그렇게 저 멀리 아득하게 멀어져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바싹 붙어있다. 그것은 과거이면서도 현실을 규정하는 강력한 실재, 리얼리티이다.

 

우리는 그 리얼리티를 발견하는 순간 삶을 되짚어보고, 과거를 생각함으로써 다시 미래를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을 집약하고 있는 일기의 실체는 종이 위에 남겨진 문자언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에게 마치 일기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림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고갱의 이 작품이다.

 

으젠느 앙리 폴 고갱은 184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조모는 노동조합을 설립한 투사이자, 여행을 끊임없이 다녔던 작가였는데 아마 고갱의 방랑벽은 그녀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고갱이 두살 때 일간지 '르 나시오날'의 정치부 기자였던 아버지가 페루의 수도 리마에 신문사를 설립하려고 하면서, 페루로의 이주계획을 세우던 중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와 고갱 그리고 그의 누이만이 페루로 정착하게 된다. 남아메리카에서의 유년 시절은 그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기게 된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여행을 꿈꾸다가 선원이 되어 인도, 지중해, 북해, 발트해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닌다.

 

군복무를 마친 고갱은 증권회사의 주식거래인으로 일하게 되는데, 

소질이 있었던 것인지 일을 시작한지 2년만에 파리 9구에 멋진 집을 장만하였고 결혼도 해서 다섯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주식거래사로서 평범했던  그의 인생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림수집가 귀스타브 아로자의 집에 드나들면서부터이다.  

그는 인상파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해 데생을 시작하였고 마네,세잔느,르누아르의 그림들을 수집하고 직접 전시회에 출품을 하는 등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입사 10여년만에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이제부터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 둔 후 몇달만에 그의 가족들은 가난에 직면하게 되고, 그는 아내와 이혼하여 파리의 벽을 돌며 벽보를 붙이는 신세가 된다.  이후 그의 삶은 끝없이 계속되는 여행과 그림 그리는 활동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고갱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타히티에 머물던 중, 1897년 다친 발로 인해 다시 돌아와 치료를 받게 된다. 그 와중에 전부인의 편지를  통해, 딸 알린이 늑막염으로 몇 달 전에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린은 고갱이 가장 그리워 했던 딸로, 우수에 젖은 듯한 시선과 섬세한 인상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딸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때부터 고갱은 자살을 생각하지만 죽기 전에 마지막 작품,

즉 화가의 유언에 해당하는 작품을 그리고자 했다. 작품 제목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였다.

 

그는 편지에서 "죽기 전에 머리 속에서 구상해 온 대작을 그리고 싶었네. 그 달 내내 미친듯이 밤낮으로 그렸다네"라고 했다. 한달 내내 열중한 결과가 거친 황마에 그려낸, 길이 4미터 높이 1미터 40에 가까운 이 그림이다.

 

이 작품이 끝나고 그는 집에서 나와 근처의 고사리숲으로 들어가

비소 한통을 먹었으나 양이 너무 많아 모두 토해내는 바람에

자살에도 실패하게 된다.

 

이 그림의 배경은 환하고 자유분방하며 다채로운 색을 지닌 타이티 섬이다. 나무들은 울창하고 풍요로운 과일이 있으며 작은 강과 푸른 바다가 보인다. 고갱이 편지에서 "이 그림은 성경과 비교될 정도의 주제를 가진 철학적인 그림이다"라고 했을정도로 이 그림에서 각 소재들은 상징성이 강하다.

 

그림은 오른쪽- 중앙- 왼쪽으로 나뉘어서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고 있다. 그림의 맨오른쪽 아래에 있는 잠든 아기와 젊은 여자 세명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영원한 수수께끼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다. 아마 맨 오른쪽의 개는 고갱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다.

 

또  중앙에서 현세의 욕구에 따라 과일을 따는 남자와 과일을 먹는 아이, 그리고 화면 오른쪽 아래에 웅크리고 죽음을 체념하고 수용하고 있는 노파를 통해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른편을 다시 보면 자주색 옷을 입은 두 인물을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생각을 털어놓고 있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일부러 크게 그린 인물은 한 손을 들고, 감히 자신들의 운명을 생각하는 두 인물을 놀랍게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과연 과거와 미래과 대면할 용기가 있을까?

 

고갱은 딸을 잃은 충격이 매우 커서 자살을 시도할 정도였는데,

그 시기의 편지를 보면 ' 딸아이의 이름은 알린, 우리 어머니와 같은 이름이었다네. 저 먼 곳에 있는 알린의 무덤과 꽃들, 그 모든 것은 겉치레일뿐, 알린의 진짜 무덤은 여기 바로 내 곁에 있고, 흐르는 내 눈물이 진짜 꽃이라네.'라고 적고 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왼쪽 윗부분에는 타히티 섬에 전해내려오는 전설 속의 여신 히나의 상이 있는데, 이것은 내세를 가리킨다.

여신 옆에는 고갱의 딸 알린이 그려져 있어, 여신의 힘을 빌어 딸을 살리고자 했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은 쉽게 말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고갱처럼 죽음을 생각할만큼의 절망에

빠져있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자신의 슬픔과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생에 도전하는 정신에 있다. 슬픔 속의 딜레마에 갇히지 않고 슬픔 위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다.

 

잊음이란 초월과 닮아 있다. 굳이 무언가를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않고, 슬픔이란 인간의 어쩔수 없는 숙명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연히 잊혀지도록 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