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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커트 보네거트

DidISay 2013. 7. 27. 01:51

천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누굴 먼저 만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을 엿볼 기회가 없으나,

가끔 죽음의 문턱에서 다른 세상을 본 사람들의 기사를 접한다.

대부분 흔한 가십거리로 생각하면서 넘겨버리고 말지만...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이런 궁금증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이 작품을 내놓았다.

소설이라 하기엔 갈등이나 서사구조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개인잡문집이라고 봐야 더 적절할 것 같다.

 

 

 

 

나의 천국 여행은 캔디와 함께!

예쁜 삽화들은 덤 ^^

 

 

 

 

이 작품에서 커트 보네거트는 닥터 키보키언에 의해 독극물주사 사형실에서 임사체험을 시도한다.

그리고 천국을 방문해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뉴턴이나 히틀러 같은 유명인부터, 평범한 일반인까지 다양하다.

블랙 유머의 대가 답게 온갖 비틀린 농담과 풍자가 작품 곳곳에 숨어있어,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느낌이다.

100페이지 남짓의 얇은 책이라 부담 없이 읽기 좋다.

 

 

 

일단 닥터 키보키언은 미국에서 고통받는 시한부 환자 130여명에게 안락사를 직접 시행해

'죽음의 의사'라는 별명과 함께 안락사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더 궁금한 사람은 영화 'YOU DON’T KNOW JACK' 참고)

때문에 책 말미에 가면 키보키언의 체포로 더이상의 임사체험이 불가능하게 되어

모든 인터뷰가 중단되는 것으로 나온다. 

 

미시건 주에서 그를 살인죄로 기소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살인죄로 기소된 이 사람은 내 목숨을 수십 번이나 구했으니까요! 잭이 사라지고 나니 이 독극물 주사 사형실이 더는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는군요.

 

 

 

다음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이들을 통해 나타내려고 한 것들을 생각해 봤다.

읽다 보면 일관된 흐름이 보이는데, 반전과 휴머니즘이 그 주축을 이룬다.

 

 

1.메리 D.에인즈워스 박사:  어머니와 아이의 결속에 대해 연구 한 발달심리학자.

 

모아母兒의 결속이 부재된. 혹은 부재될 수 밖에 없는 현대 사회 비판.

서면방송에서도 나왔지만, 보네거트는 많은 친지가 다함께 어우러지는 대가족을 선호했던 것 같다.

 

 

천국에 가서야 미친듯이 결속을 맺을 수 있는 어머니와 아이들.

그리고 그렇게 돌봄을 받은 아이들은 천사가 된다.

 

 

...그러면 누군가의 돌봄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악마가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살바토레 비아지니 : 애완견을 구하려다 죽은 남자

 

애완견을 위해 죽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베트남전쟁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지 않냐고 되물음.

 

 

3. 버넘 버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중 최초로 로스쿨에 입학한 사람

 

영국에 의해 이루어진, 태즈메이니아인 학살에 대한 비판

제국주의 및 인종차별 까기.

 

 

4.존 브라운: 노예폐지론자. 반역죄로 교수형을 당함.

 

"미국법 안에서 노예제는 합법이었지" 그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도 독일법 안에서 합법이었다네"

 

 

5. 로버타 고르서치 버크 여사: 1955-1961년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알리 A.버크 제독의 아내

 

운명처럼 만나 이상적인 부부로 생을 맞이한 부부.

 

제독의 장례식에 섹스스캔들로 곤혹을 치른 클린턴 대통령이 왔단다.

강직한 표정으로 "어째서 바람을 피우죠?"라고 묻는 듯한 여사의 눈길과

벌개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는 클린턴의 삽화가 재밌다. ㅎ

 

 

 

6.클래런스 대로:  '거인'이라 불렸던, 미국의 유명 변호사

 

 “그 카메라의 존재는 결국 중대한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라네. 사법제도는 언제 어디서나 정의가 실현되든 말든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일세. 로마의 원형경기장처럼 사법제도는 불공평한 정부 - 그렇지 않은 정부는 없지 - 가 살아 있는 목숨들을 가지고 대중에게 엄청난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수단이라네.”

 

 

7. 빅터 데브스: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5번 출마.

 "하층계급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하층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범죄형입니다. 감옥에 갇힌 영혼이 존재한다면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 하지만 이런 의견은 오늘날 미국에서 '조롱당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가장 빨리 성장하는 산업은 "감옥을 건축하는 분야"가 되어버렸다.

 

 

8.해럴드 엡스타인: 정원망사증에 걸려 전세계를 떠돈 공인회계사

심장발작을 일으킨 뒤에야 부인과 함께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고 이를 즐긴 사람.

"단 하나 유감으로 남는 것은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이오."

 

 

9. 비비언 핼리넌 : 화려한  태평양 연안 가문의 여주인

 

부와 미모, 지성을 모두 가진 상위계급이었지만

그녀의 가족들은 진보당을 지지하고, 공산주의, 인권을 옹호함.

그녀는 '화려하다'는 칭호보다,

루스밸트가 적들에게 불렸던 "자기 계급을 배반한 자"라는 칭호를 더 선호함.

 

10. 아돌프 히틀러 : 2차대전 중 삼천오백만 명을 학살.

"나는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죄값을 치렀다"고 주장.

기독교인이었으며, UN 앞마당에 묘를 세우고 싶어함.

용서를 바라는 내용의 인터뷰.

 

 

11.웨슬리 조이스: 작가들의 집결지였던 '라이온스 헤드 바'의 주인

작가들을 "글쓰기 장애를 가진 주정뱅이"라고 스스로 까기 ㅎㅎ

작가들의 수다를 방해하려고 주크박스를 한 대 들였으나,

결론은 "그냥 더 시끄럽게 얘기하더군" (...)

 

12.프랜시스 킨: 로망스어 전문가&어린이책 전문가

"세 번의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다"라는 부고기사에까지 이어지는 언론들의 흠집내기에 대해서,

"라시 에스 라 비다" "세 라 비타" "세 라 비"(그것이 인생이다)로 대응

 

 

13. 아이작 뉴턴: 사과님. ㅎ

천국에 가서도 계속해서 연구 중인 아이작 뉴턴.

진화론이나 상대성 이론 등을 다른 사람이 발견하게 놔둔 자신을 분하게 생각하자,

성 베드로는 셰익스피어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허레이쇼, 하늘과 땅에는 자네의 철학으로 꿈꿀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네."

 

14. 피터 펠레그리노 : 열기구 덕후

 

천국에 갔지만, 지상에서 열기구를 탔던 일을 생각해하며 만족하지 못함.

이걸 보면 천국 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현실에서 얼마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냐가 관건인듯.

짜증난 베드로가 '천국과 그 불평분자'라는 책을 쓰라면서 빈정거림 ㅎㅎ

 

 

15. 제임스 얼 레이: 마틴 루터 킹 암살자

 

자신이 마틴 루터 킹을 암살해서 '그 잘난 깜둥이 nigger가 유명해졌다며

암살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음 (...) ㅋ

 

 

19.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줄리엣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온갖 대사들을 사용해 인터뷰를 했는데

이 부분이 꽤 그럴듯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위트 있는 부분 중 하나 :D

 

 

20.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프랑켄슈타인(=워자폭탄과 같은 전쟁으로 대입시킴)에 대한 생각을 묻자

"어쨌든 그건 무지한 게 아니에요. 내 소설에는 괴물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니까요.

그중 하나인 과학자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죠"라고 대답.

 

전쟁을 일으키고, 그 무기를 제조한 사람들 역시 괴물이라는 것.

역시 뚜렷한 반전의식. 무정부주의 및 평화주의가 드러난다.

 

 

21. 필립 스트랙스: 엑스선을 통해 유방암을 탐지할 수 있게 함.

 

우리 가엾은 남자에게 행동과 노래로 깨우쳐야 할 것은

이 여성스러운 세계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아는 자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

 

 

 

22. 칼라 페이 터커 : 참회한 살인자

 

감옥에서 참회하고 거듭났으나, 사형당함

그는 자신의 사형을 결정한 텍사스 주지사 역시 자신을 죽였기 때문에 살인자라고 주장.

사형제에 대한 보네거트의 비판적 시각이 드러난다.

 

 

23. 킬고어 트라우트 : 공상과학 소설가

 

세르비아 코소보 사태 비판. 인종청소 비판.

"이제 기정사실이 돼버린 인종 청소라는 질병에 맞서 선량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생존자를 구출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을 조심하는 것!"

 

24. 아이작 아시모프: SF 소설가 & 화학자

 

지옥은 없으니, 사후세계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믿음을 가지지 말 것을 권하며,

진정한 인도주의자는 "죽음이 잠이라 믿고 만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왕성한 창작력의 비법은, 남의 시선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에 있다.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 "지옥은 다른 사람들이고"(지옥은 타인의 눈초리에 있다)고 쿨하게 날려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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