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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나는 시간

아름다움, 진리의 일어남

DidISay 2012. 1. 22. 17:57


<구두> 고흐,1886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리란 이거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구두는 한갓 유용한 물건일 뿐이다. 즉 구두는 발을 보호해주는 도구다.구두라는 존재자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간단하다. 아래 창과 윗가죽을 실로 꿰매는 데에. 모든 게 이렇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걸로 구두의 존재가 모두 밝혀진 건가? 아니다. 예술 작품은 구두라는 존재의 더 근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구두라는 도구의 밖으로 드러난 내부의 어두움 틈으로부터 들일을 하러 나선 이의 고통이 응시하고 있으며, 구두라는 도구의 실팍한 무게 가운데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강인함이 쌓여 있고, 구두 가죽 위에는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이 깃들여 있따. 구두창 아래는 해 저물녁 들길의 고독이 깃들여 있고, 이 구두라는 도구 가운데서 대지의 소리 없는 부름이, 또 대지의 조용한 선물인 다 익은 곡식의 부름이,겨울 들판의 황량한 휴한지 가운데서 일렁이는 해명할 수 없는 대지의 거절이 동요하고 있다. 이 구두라는 도구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빵의 확보를 위한 불평 없는 근심과 다시 고난을 극복한 뒤의 말없는 기쁨과 임박한 아기의 출산에 대한 전전긍긍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의 전율이다.

 

 

  고흐의 그림은 하나의 유영한 물건이기 이전에 구두가 진실로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촌아낙네의 삶 속에서 구두 존재를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한 켤레의 구두를 존재의 빛 속에 들어서게 한다. 구두의 존재자의 진리가 정립된 거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진리의 일어남(生起)을 '미'라고 부른다.작품 속에서 진리가 빛나는 거, 그게 바로 아름다움이란 얘기다.

 

 

-미학 오디세이2 中, 진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