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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나는 시간

가헌관매도-이유신

DidISay 2012. 1. 22. 17:58




작년 연말에 찍었던 눈 펑펑 내리는 사진을, 장마가 아닌 우기로 인해  제법 열대 지방 분위기를 내고 있는 7월에 발견한-_- 기념으로 오늘은 눈의 꽃! 매화 얘기를 좀 할까 한다.^^


조선 후기 완상 문화가 발달하면서, 선비들 사이에 피어난 로망은 바로 파교심매. 즉 눈이 녹지 않은 산속에서 처음 피는 매화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고전 시가를 몇 편만 훑어봐도, 문인들의 매화 찬양은 아주 지겨우리만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ㅁ=, 사실 파교심매의 전통은 본래 중국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탐매에 대한 열망은 송대 성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널리 유행하였다.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겨울은 천지의 기운이 닫히고 감추어져 음양의 두 기가 교합되지 않은 때이다. 어둠과 혼란의 계절. 이 음기 가득한 혼탁한 세계에서도 어김없이 순행하여 꽃을 피우는 천지자연의 질서. 그것을 간절히 염원하여 확인하고픈 욕구가 탐매의 산행을 이끌게 된 것이리라.(말하다 보니..애니메이션에 등장할법한..악의 세계를 끝내 줄 희망의 꽃..;;이런 느낌이 들기도 -_-;)

 

굳이 성리학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요즘에야 겨울에 등 따시게 지내고 곱게 키운 꽃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조선시대야 꽃은 구경도 못했을 것이고 한 계절 내내 보는 것이라고는 하염 없이 내리는  눈과 매서운 바람뿐이었을 것이니...그 눈속에서 꽃을 피워내는 매화를 봤을 때의 감동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탐매의 산행이 여의치 않을 때는 집안의 분매로 대신하기도 했다.

집안에서 소중히 가꾼 분매가 꽃을 피우면 선비들은 벗들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모임을 가졌다.

 

이를 매화음이라고 하는데, 위의 그림은 이 모임의 정경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눈 내린 겨울날 가헌이란 곳에서 선비들이 모여 분매를 감상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방안의 커다란 촛대에 촛불을 밝힌 것으로 보아 밤 풍경인데, 방 앞 섬돌 위에 괴석이 어우러진 매화분 두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조희룡은 '이향견문록'에서 이유신이 수석을 매우 사랑하여 신위에게서 괴석 하나를 얻게 된 일화를 기술하였는데, 마침 그림의 분매도 괴석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방안에 있는 두 사람은 매화 감상에 여념이 없고, 한 사람은 일어서서 우측을 바라보며 바깥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듯한 광경이다.  분매 가지 끛의 높이가 서 있는 사람의 키와 엇비슷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큰 매화나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방 오른쪽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이미 매화 감상을 마치고 술 한 잔을 나누려는지 술상이 보인다.

 

화면 상단 오른쪽에는 다음과 같은 제화시가 적혀 있다.

 

 

 

외론 등불 아래 함께 모였는데

매화는 눈 속에서 참된 모습이라.

우리 무리 청진함이 본성이니

수척한 대나무가 이웃해 살고 있구나.

 

 

 

이 그림은 당시 사대부가에서 겨울철 밤중에 촛불 아래 분매를 감상하던 구체적인 정경을 잘 보여준다. 김홍도가 '2000전을 들여 매화를 사고, 800전으로 술 몇 되를 사서 동인들을 모아 매화음을 마련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당시 매화 완상의 풍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티스트 매화 완상가는 이윤영이다. 그는 내가 한옥에 살게 된다면 꼭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일을 조선 시대에 이미 해본 사람;;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연못 가까이 정자를 세우고 겨울밤에는 얼음덩이를 잘라내 그 속에 촛불을 두고 '빙등조빈연'이라 이름 붙였고, 여름에는 연꽃을 병에 꽂아두고 벗들을 불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취향과 상통하는 이들과의 모임을 즐겼으며 그 모임에서 겨울밤이면 얼음덩이를 잘라내 그 속에 촛불을 밝혀놓고 매화를 비추며 시를 짓곤 했다!!! >_< 모임의 이름도 멋진데, '빙등조빈연'은 얼음 등불이 손님을 비추는 자리' 의미한다. 이 정경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지난 기사년 겨울 경보(오찬의 자)가 매화가 피었다고 기별해와

나는 원령(이인상의 자) 등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산천재(오찬의 서재)로 가서 모임을 가졌다.

 

매화 감실 안에 둥근 원을 뚫어놓고 운모로 가려놓았는데,

하얀 꽃송이가 빛나는 모습이 마치 달빛 속에 있는 듯했다.

그 곁에는 문왕정이 놓여 있고,  다른 고기(古器) 몇 가지가 있었는데

모두 맑고 깨끗하여 즐길 만했다.

 

서로 더불어 문사를 담론하다가 밤중에 이르자

경보가 커다란 백자 사발을 가지고 오더니

깨끗한 물을 가득 채워 지게문 밖에 놓아두었다.

 

한참 뒤에 보니 얼음의 두께가 2푼쯤 되었다.

그 속에 구멍을 뚫어 물을 쏟아내고

궤안 위에 사발을 엎어놓자 반짝이는 은빛 병 하나가 만들어졌다.

 

구멍 속으로 초를 밀어 넣고 불을 붙이자

붉고 밝은 기운이 환히 빛나는데,

투명한 빛이 무어라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돌아다보고 웃으며 술을 가져오라 하여 즐거움을 극진히 했다.

 

-이윤영의 문집 '단릉유고' 中 

 

 

이를 보면 이윤영 외에 오찬의 산천재에서도 빙등조빈연이 열렸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리는 단순한 문회가 아니라 서화, 고동을 감상하고 품평하는 골동품 완성을 겸한 자리였다. 겨울밤 냉수를 얼려 얼음등을 만들고 그 속에 촛불을 밝혀 매화꽃을 비춰 감상하는 자리는  상상만으로도 흐뭇하고 고즈넉한 아취가 느껴진다.

 

얼음 속에서 발하는 촛불에 번져 은은하게 빛나는 매화.

옛 문인들은 보름달이 아닌, 희미한 달비에 비친 매화를 더 아름답게 생각했다고 한다. 매화의 은은한 향이(오죽하면 매화의 향을 그윽히 풍기는 향기 즉, 암향이라고 칭했을까) 어스름한 달빛과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윽한 얼음빛에 비치는 매화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태학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