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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빈 의자와 고갱의 빈 의자. 본문

그림과 만나는 시간

고흐의 빈 의자와 고갱의 빈 의자.

DidISay 2012. 1. 22. 17:55

 고흐의 생애에서 정신분석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중요한 시기는 1888년 12월부터 1890년 7월까지의 1년 7개월간이다. 고흐는 이 기간동안 여러 차례 발작을 일으켰고 동시에 생애 최고의 작품들을 그렸다. 도대체 이 기간 동안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고흐는 1888년 12월 24일, 얼마 전부터 같이 지내던 고갱을 면도칼로 공격하려다가 실패한다. 고흐가 그 면도칼로 대신 자신의 귀를 잘라 어느 여자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즈음 고흐는 고갱의 빈 의자를 그리고 있었다. 고흐는 고갱이 자기 곁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그는 예술가들이 함께 살며 작업을 하는 공동의 거처를 갖기를 워했고, 고갱이 자기의 제안에 동의했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온갖 정성을 다해 고갱이 머물 방을 칠했고 열두 송이의 해바라기를 그려 벽에 걸었다. 그의 그림에 그려진 ‘고갱의 의자’에는 촛불과 책이 그려져 있는 등 ‘고흐의 의자’에 비해 화려하고 여성 취향으로 꾸며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게라는 이를 ‘양성적 갈등’의 표현으로 읽는다. 말하자면 고흐의 심리에는 양성애의 경향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가령, 동생의 결혼 사실에 충격을 받아 발작을 일으킨 것, 또 고갱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가 머물 방을 정성스레 꾸민 것 등, 여기서 우리는 고흐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성, 즉 그의 내면에 감추어진 여성성을 읽을 수 있다. 즉 고흐는 자기 내면에 숨어 있는 여성의 수동적 환상과 소망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누군가를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덧붙여진다. 즉 남성적이고 강인한 고갱의 성격은 고흐로 하여금 그를 아버지와 동일시하게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자 원했던 만큼, 그는 고갱에게도 인정을 받으려 했다. 이것이 실패하자, 그에 대한 강한 증오의 감정에 사로잡혀 그를 공격하려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사랑과 증오, 이 양가의 감정이 고흐로 하여금 고갱의 빈 의자를 그리게 했다는 것이다. 고흐에게 빈 의자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고흐 자신의 낡은 빈 의자 그림에는 파이프와 담배가 놓여 있다. 이 물건들은 고흐가 자신의 아버지를 추모하여 그린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아버지를 닮고자 했고 그토록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했던 고흐는 아버지의 것이었던 파이프를 자신의 의자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림에서나마 원하던 것을 성취한 고흐는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조이한, 진중권 공저, 천천히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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