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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에 반해 귤을 던지다. 본문

그림과 만나는 시간

미모에 반해 귤을 던지다.

DidISay 2012. 1. 22. 17:58


오카무라 쇼, 계원귤보 中

 

 

 

 

  주인공이 가래떡인지 아니면 빼빼로인지는 모르겠으나 백년만에 돌아오는 11.11.11이 되었다. ^^  내가 100년 후에도 살아서 두 눈으로 빼빼로 데이를 기다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사랑하는 사람과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분명 기분좋은 일이니까 어찌되었든 풍성한 마음으로 보내는 하루였으면 한다.

 

  2011년의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빼빼로로 마음을 표현하지만,

옛님네들은  귤을 던져서 사랑을 표현했다.

 

  오늘 빼빼로랑 귤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글을 써본다. :)

 

 

 

 

귤림추색 좋은 경치

강릉천수 완연하다.

황금색 노란 귤이 무럭무럭 자라

향기로운 내음이 사방에 진동한다.

목사는 미취하고

예기는 가무할 제

소년 한량들은

귤을 던져 주고받으니

두목지가 지나간 듯

가을 경치 더욱 좋다.

 

 

 

-영주십경가 中

제 3경 귤림추색

 

 

 

 

 

  '강릉천수'는 천호후의 녹봉과 맞먹는다는 중국 강릉의 귤 천 그루를 뜻한다. 두목지는 당나라 말기에 미녀들과의 로맨스로 유명했던 카사노바를 말하는 것이다. 그가 지나가면 미모에 반한 여인들이 뒤질세라 귤을 던졌다고 하니. 오렌지족의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나 보다. 얼큰하니 취한 목사, 노래와 춤을 뽐내는 아름다운 기녀들, 귤을 주고 받는 젊은 한량들의 정경은 귤의 노란 빛처럼 나른하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과거엔 귤이 매우 귀한 과일이라, 제주 감사는 10월 종묘에 햇과일 제수품으로 매년 귤을 진상해야 했다. 때문에 관가의 등쌀에 못이긴 백성들이 심은 나무마저 뽑아버렸다고 하니 그 노고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황제는 귤을 붉은 비단에 싸서 총애하는 신하에게 선물했다는 기록도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의 임금 역시 종종 총애하는 문신 관료들에게 귤을 나누어 주고 시를 짓게 했고, 귤이 서울에 올 때면 성균관 유생들은 겨울철 시험 예상 문제에 '귤'을 포함시켰다 한다. 요즘 우리가 아무 고민 없이 쉽게 접하는 귤을 앞에 두고, 성균관에 모여서 끙끙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참 재미있다.

 

  귤이 귀한터라 겉껍질인 청피, 속껍질인 진피도 매우 귀했는데, 궁중에서는 아픈 이에게 인삼과 귤을 섞은 귤삼차를 먹였다고 한다.또한 귤껍질을 비벼말려 갓의 관자와 바둑알로 만들기도 하고, 김치에 활용하기도 했다. 낙엽들이 떨어지는 가을의 쓸쓸함 속에서, 노란 빛을 찬란하게 자랑하는 귤림을 생각하니 봄처럼 황홀해진다.

 

  정조는 세손 시절에 '귤'이라는 시를 짓기도 하였고, 귤 수송선이 표류하거나 난파하면 바다의 신을 달래는 제문을 나라에서 짓기도 했다니 과일 이상의 문화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조의 귤 사랑은 남달라서, 귤배 즉 귤로 만든 술잔을 가장 많이 하사한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맑은 향기를 오래 품고 있는 귤을 닮으라는 의도로 선물해 주지 않았을까 싶은데..

 

  나도 귤보다 향기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면, 푸릇푸릇하고 앙증맞은 탱자를 손에 쥐어주고 싶다. 진한 향으로 몽롱하게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탱자. 그렇게 새곰하니 취해갔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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