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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나는 시간

로버트 카파 100주년 사진展(세종문화회관)

DidISay 2013. 8. 11. 22:30

 

 

매그넘을 알게 된 것은 18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내가 좋아했던 오빠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나에게 알려줬었고

그를 따라 이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에 빠져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집을 뒤적이거나 전시회를 가며 기억을 공유했다.

 

그래서 로버트 카파의 긴장감이 흐르는 전시戰時사진들은

역설적이게도 나에겐 그리움과 따뜻한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접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

동생 코넬 카파가 설립한 ICP(국제사진센터)의 오리지널 프린트 160여점이 전시 중이다.

대학생 때 열린 매그넘 사진전에는 없었던 작품이나 소품들도 꽤 있었다.

 

조던 매터의 사진전과 협약을 맺어서, 30%할인을 받고 입장했다.

내부에 포토월을 참 잘 꾸며놨으나 비가 오는 바람에 사진기를 안가져가서 패스.

날이 너무 더워서 아티제 팥빙수 먹고 들어갔는데,

건물 안은 에어컨 때문에 시원해서 너무 행복했음 >_<

 

사람이 많을까봐 걱정했지만 오전부터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친 탓인지

점심시간즈음인데도 그리 붐비지 않아 다행이었다.

입장인원수를 통제해서 전시실 내부는 그리 붐비지 않아 여유로운 분위기.

월요일도 휴관일 없이 전시하니 평일에 가도 괜찮을 것 같다. :)

 

 

유명한 카파의 사진들은 거의 볼 수 있었고, 전시 자체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오디오 가이드는 3천원인데, 설명이 그리 자세하진 않으니

어느정도 카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슨트를 추천.

 

 

 

근대 전쟁사와 카파가 머무르고 이동한 공간의 기억은 정확히 일치한다.

스페인내전부터 중일전쟁,세계2차대전, 베트남전..죽는 그 순간까지 치열한 포성 속에서 살았던 사람.

연인 게르다 타로(최초의 종군사진가)는 스페인전에서 찰영 중 목숨을 잃었고

카파의 청년기와 얼마되지 않는 중년기 역시 총과 포탄이 남무하는 장소에서 흘러가고 끝을 맺었다.

 

 

때문에 그의 사진들은 항상 전쟁의 눈물과 팽팽한 긴장감이 도사려있다.

재미난 것을 구경하는 듯 호기심에 차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실은 공습장면을 구경하는 것이고,

노부부가 빵을 나란히 들고 거리를 걷는 단란한 사진은

독일군이 몰려가고 처음 미군이 마을에 들어온 다음날의 풍경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의 개구진 하얀 눈싸움 마저, 전쟁의 포화에 휩싸인 암흑의 시간이다.

 

바로 코 앞에서 병사들이 너무나 안타깝게 죽어나가고,

수많은 학생들이 빈약한 무기로 버티다가 목숨을 잃는 상황을 수없이 목격하면서

어떻게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계속 사진기를 들 수 있었는지...

 

 

 

(관절염으로 손에 붓을 쥘 수 없자, 대나무에 목탄을 달아 그림을 그리는 마티스.

아래는 아들과 놀아주는 피카소의 모습. 그의 별장에 묵으면서 찍었다고 한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카파는 마치 영화배우처럼 분위기 있는 얼굴인데

앙리 마티스나 헤밍웨이, 피카소처럼 쟁쟁한 포스를 풍기는 인물들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매력이 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청혼을 했다고도 하는데, 첫사랑이었던 게르다 타로를 잊지 못해

이를 거절했다고 하는 일화가 로맨틱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수많은 명사들과 연애는 했지만 결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계속해서 마음은 방황 중이었나 보다.

 

아마 너무 젊은 나이에. 사랑했던 연인을 잃었던 상처와

전쟁 속에서 수없이 목격한 안타까운 죽음들의 경험이

그를 평화로운 공간에 정착하지 못하게 하고 계속해서 라이카를 들고  전장으로 나가게 하지 않았나 싶다.

 

 

 

 

 

 

 

+ 재밌는(?) 일화 한가지.

 

카파는 뼛속까지 그 냄새가 배어있는 기자였다. 헤밍웨이와 세계대전 취재를 나가던 중 둘의 사이가 나빠지는 일이 있었다. 헤밍웨이가 지프에서 튕겨져 나갔고, 독일군의 총알이 쏟아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카파는 물끄러미 카메라를 손에 쥐고 “어서 꺼져버리라”고 소리치는 위대한 작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헤밍웨이는 연하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 종군기자가 자신이 독일군의 총알에 벌집이 되는 순간을 찍으려고 서있는 카파라고 생각한 것이다.(....) 카파는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