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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블루 재스민(Blue Jasmine, 2013)

DidISay 2013. 10. 11. 23:30

부유한 남편 덕에, 뉴욕에서 성대한 파티를 주최하며 살아가던 재스민.

남편의 몰락과 자살로 동생 진저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되지만

그녀는 명품백과 샤넬 패션을 고집하며,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부유한다.

 

 

 

영화는 재스민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자유자재로 오가는데

그 넘나듦이 너무 잦아서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환상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마치 분열되고 있는 재스민의 정신처럼...

 

백인 화이트칼라에 휩싸여 명품매장을 돌아다니던 상류층의 삶은

몰락 이후 차이나타운에서 블루칼라의 히스패닉 남자들과 부대끼는 모습으로

선명하게 대비되어 펼쳐진다.

 

 

 

 

이들 자매의 삶은 너무나 다른데,

재스민이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에르메스의 버킨백으로 기억된다면,

동생은 이름부터 버킨백을 본딴 중저가 가방 '진저백'에서 따온 것이다.

 

 

자신의 환경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이성을 찾는 진저와는 달리,

재스민은 과거의 이름인 '자넷'을 끝까지 거부하고

명품가방과 옷을 알아차릴만한 남자를 찾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한다.

 

우디 앨런은 언니에게 물들어 환상적인 다른 남자를 찾던 진저에게는

가난하지만 그녀만을 바라보는 순정적인 사랑을 남겨준 반면,

재스민에게는 끝까지 냉소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만약 재스민이 정말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무구 해서

갑자기 몰아닥친 현실에 절망하는거라면 그래도 동정이 갈텐데,

사실 그녀는 '그런 척'을 할 뿐이다.

 

대학생 때는 싱싱한 미모를 이용해, 부유한 유부남을 그의 부인에게서 낚아챘고

사업에 대해 아무 관심도 지식도 없는 유한부인 행세를 했지만

남편 사업의 비밀스런 속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처지가 위협 받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감정만을 위해 행동했다.

 

남편의 불륜을 알았을 때 그녀가 순간의 감정이긴 했지만 모든 재산을 버린 것을 볼 때

어쩌면 정말 남편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돈이 아닌 관심을 원했을지도.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예전의 부와 명성만을 찾아헤매며,

때문에 그녀가 그토록 갈구하는 욕구와 행복은 결코 채워질 수 없다.

 

 

 

 

나락으로 떨어진 뒤에도 이런 의뭉스런 면은 변하지 않아서,

불리하거나 구차한 상황에서는 그저 상황을 피하고 모르는 척 하는 것으로 도망치며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꿈꾸기 보다는 미모와 거짓 이미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부에 편승할 생각만 할 뿐이다.

 

하지만 우디 앨런이 만든 현실은 냉정하기만 해서

그녀의 버킨백이 바닥에 곤두박질 치는 그때, 그녀를 완전히 절망하게 만든다.

이제는 꿈도 희망도..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진 그녀에게 

재기는 영원히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현실 보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겠지.

 

 

 

 

내용을 보면서 계속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재스민' 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은 예전에 블랑쉬 역으로 연극무대에 선 적이 있다고 한다.

허영 많고 도도한 역이 이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는데 정말 딱이다 싶은 연기다.

그녀의 동생이나 주변인들의 연기도 좋고.

 

한동안 유럽관광시리즈만 내놓던 우디 앨런의 영화도 좋았지만,

역시 내가 보다 사랑하는 그의 영화는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인가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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