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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일곱번째 파도-다니엘 글라타우어

DidISay 2013. 10. 12. 20:22

책을 읽을 때 애용하는 우리집 한구석.

두툼한 가죽좌식의자에 앉아서 읽으면, 어쩐지 소파보다 집중이 잘 된다.

날이 추워져서 수족냉증者인 나는 카펫을 이번주부터 깔기 시작.

생일선물로 코타츠를 받아야하나 고민 중이다.

 

의자 뒤에 있는건 내가 집에서 주로 입는 두툼한 스웨터. 똑같이 두툼한 슬리퍼.

귤 세개. 녹차 조금. 그리고 아이패드로 틀어놓은 팟캐스트 음악방송.  

 

사실 오늘 원더우먼 페스티벌과 조이올팍페스티벌.

초대권 받은 곳이 두군데나 있었는데 일정이 어그러져서 포기하고

페이퍼 작성 뒤에 하루종일 독서모드 :D

 

 

오늘 내가 읽은 책은 연애소설 시리즈. 

얼마만에 읽은 독일소설. 그것도 로맨틱한 내용인지 모르겠네.

 

예전에 이 책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부분을 조금 읽었다가

한번에 쭉 읽어내려가야 할 소설인 것 같아 접어놓은 뒤에

한참 시간이 지난 오늘에야 다시 책을 집어들었다.

대화형식이라 연인과 주고 받으면서 읽어도 좋을 듯 :D

 

 

이 책은 서술과 묘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좀 독특한 소설이다.

순수하게 인물 사이의 대화로만 전개되는 이메일 형식이며,

모든 인물이나 갈등, 사건들은 이 두 사람의 통신 사이에서만 등장한다.

 

보통 온라인으로 친분을 이어가고, 두 남녀가 호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보통 소설 두권 분량 아니 한권 분량의 이야기로도 이어지기 힘들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했을 때 환상과 실제의 간격이 달라

더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고,

설사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한다치더라도, 그 관계는 이메일이라는 간접적이고 느린 수단이 아니라

전화나 1:1 대면이라는 직접적이고 좀더 소통가능성이 폭넓은 빠른 채널을 이용하게 될테니까.

 

 레오, 사흘이나 저에게 메일을 안 쓰시니 두 가지 기분이 드네요.

1) 궁금하다,  2) 허전하다.

둘 다 유쾌하진 않아요. 어떻게 좀 해보세요!

 

from 에미.

 

 

 

당신 생각을 많이 해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사이와 그 바로 전, 바로 후에도.

다정한 인사를 보냅니다.

 

frm 레오.

 

 

하지만 우리의 다니엘 글라타우어는 이 소설을 그렇게 이끌고 싶지 않았고,

이메일을 통한 밀땅과 아슬아슬함, 설렘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오래오래 전달하고 싶었다.

결국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이 두 사람이 쉽게 만날 수 없는 제약 내지는 금기를 설정한 것.

 

그렇다. 레오는 변덕쟁이에 신경증이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애인이 있고,

에미는 행복한 결혼생활이라고 자부하며 남편과 의붓아이들을 품어왔다.

그래서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의 경우, 두 남녀는 단 한 번 만나는 일 없이

핑퐁 처럼 주고 받는 대화와 묘한 긴장감을 즐길 뿐이다.

 

하지만 이 둘의 대화에서 주변 환경은 어떤 물리적인 제약도 거의 가하지 못하므로,

그저 이 둘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장치로만 쓰인다고 봐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 두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정이입이 돼서

책에 몰입하기가 힘들어진다.

 

 

 

 

메일의 도착시간과 날짜를 조절하는 간단한 방식만으로도 관계의 거리가 조절되는데,

이 둘의 밀땅이 어찌나 짜릿한지 둘이 '사고'를 치는게 아닌지에 대한 걱정을 넘어서

나중엔 제발 그냥 만나든, 끊든 해!! -_-+라는 짜증까지 생기게 된다.

결국 독자들에게 작가가 보여주는 끝은

에미가 보낸 메일에 관리자가 답하는 '없어진 메일계정입니다'이다.

(이 과정에서 갑작스럽던 에미 남편의 선택은 슬프기까지 했다..)

 

때문에 독자들은 이 허무하고 아쉬운 두 사람의 관계에

작가에게 어떻게든 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일곱번째 파도'라는 두번째 후속작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일곱번째 파도 역시 큰 발전은 없는데,

레오가 보다 성마르고 건조해졌으며

에미는 좀더 철부지 같고 성미가 급해진 것을 제외하면

밀땅과 기다림. 번갈아 보여주는 보챔은 여전하다.

 

만약 영상이나 일반적인 서술방식을 통해 접했다면,

아 이것들이 십대도 아니고, 뭐하는거야 진짜 =_=+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지만

이메일이라는 형식을 취해서, 마치 영화 접속을 보는 것처럼

괜히 설레고 감정이입 되고, 메일의 답장을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나도 이메일로 모르는 사람이랑 편지 주고 받고 싶고.

낯선이와의 긴장감 있는 로맨스를 상상하게 된달까.

일단 로맨스소설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역할은 충실히 해내는 작품이다.

 

 

 

 

 

 

일곱번째 파도에서 작가는 독자들의 희망을 충족시켜,

나름의 결론을 맺었고 이에 우리가 만족할지 불만을 표시할지는 각자의 몫.

 

개인적으로는 아쉬움 가득 1편에서 끝내는 것이 좋았을거라 생각하지만,

이건 궁금해서 2가지 한달음에 다 읽어버린 독자가 할 이야긴 사실 아닌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왜 당신에게 메일을 쓰느냐고요? 그럴 마음이 내켜서요. 그리고 일곱 번째 파도를 말없이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요. 이곳 사람들은 무척이나 거칠고 고집스러운 일곱 번째 파도가 있다고들 해요. 처음 여섯 번의 파도는 예측할 수 있고 크기가 엇비슷하대요. 연이어 이는 여섯 번의 파도는 깜짝 놀랄 만한 일 같은 건 만들어내지 않아요. 일관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여섯 번의 파도는 멀리서 보면 서로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늘 같은 목적지를 향하죠. 그러나 일곱번째 파도는 조심해야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게 단조로운 도움닫기를 함께 하면서 앞선 파도들에 자신을 맞추지요. 하지만 때로는 갑자기 밀려오기도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거리낌 없이, 천진하게, 반란을 일으키듯,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 만들어놓아요. 일곱 번째 파도 사전에 ‘예전’이란 없어요. ‘지금’만 있을 뿐. 그리고 그뒤에는 모든 게 달라져요. 더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그건 그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 그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지요.

 

 

 

....예전에 죄수였던 앙리 샤리에르가 쓴 자전적 소설 『파피용』에서 일곱번째 파도를 묘사한 대목이 있더군요. 앙리는 프랑스령 기아나 해안 앞에 있는 악마의 섬으로 이송된 후 몇 주 동안 바다를 관찰한 끝에 일곱번째 파도는 하나같이 앞의 파도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죠. 그리고 그는 어느 일곱번째 파도에 자신의 코코넛 뗏목을 맡기고 바다로 나아갔어요. 이건 그의 탈출을 의미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