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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는 인생-성석제

DidISay 2013. 11. 15. 20:44

몰두

 

개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가 있다.

미친 듯이 제 몸을 긁어대는 개를 붙잡아서 털 속을 헤쳐보라.

진드기는 머리를 개의 연한 살에 박고 피를 빨아먹고 산다.

머리와 가슴이 붙어 있는데 어디까지가 배인지 꼬리인지도 분명치 않다.

수컷의 몸길이는 2.9밀리미터, 암컷은 7.5밀리미터쯤으로 핀셋으로 살살 집어내지 않으면 몸이 끊어져버린다.

한번 박은 진드기의 머리는 돌아나올 줄 모른다.

죽어도 안으로 파고들다가 죽는다.

나는 그 광격을 '몰두(沒頭)'라고 부르려 한다.

 

 

 

 소설. 이라고 하지만 어떤 스토리나 뚜렷한 갈등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

작은 소품집 느낌의 책이다.

 

난 성석제의 글을 읽다 보면 항상 담백한 국수면발을 먹고 싶어진다.

특유의 너스레함과 아저씨스러운 털털함 때문일까..

문장의 길이가 그리 짧다거나 수사가 건조한 편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얗고 힘이 적당히 빠진 잔치국수 같은 맛이 느껴진다.

 

해학적인 멋스러움이 성석제 소설의 특징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날카로움은 좀 덜하고 조급하지 않고 느긋한 여백이 느껴져서

다른 소설가들의 해학과 풍자와는 또 차별성을 띈다.

 

 

 

 

 개인적으로는 성석제가 쓴 음식이나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데,

여기서도 간간히 여행담이 짧게나마 나온다.

여행담 뿐만 아니라 여러 성격의 이야기들을 중구난방으로 모아놓은 듯해서

읽다보면 책의 정체성에 궁금증을 품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씁쓸하기도 하고, 끝도없이 싱거우며, 

간혹 제목에 충실한 재밌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여러가지 맛이 있어서,

또 우리의 삶이 '재미나는'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언제나 즐거운 인생은 지루할 뿐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