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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사이비 (The Fake, 2013)

DidISay 2013. 12. 18. 13:26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 개봉한 뒤에 꼭 영화관에서 봐야지 했는데,

다행히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아직 상영 중이라 걸음을 재촉해 다녀왔다.

전작이었던 '돼지의 왕' 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봐서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다 :D

 

 

 

 

 

 

사이비는 연상호 감독의 인터뷰를 봐도 그렇고

특정 종교를 비방하기 위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믿음과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룬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사실 작품을 보다보면 사이비가 아니라, 기독교 그 자체를 까는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연상호 감독 종교가 기독교라고 하는데, 갑자기 어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를 깐 'pd수첩'편을 보다가

이 방송 pd가 자신도 기독교라고 인터뷰 한게 기억이 나서 좀 재밌었다. )

 

마치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밀도 있게 압축해놓은 것처럼

굉장히 속도가 빠르고 몰입도가 높아서 쉴새없이 휘몰아친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정신은 세 번 변화한다고 썼다.

첫번째 단계는 아무 비판이나 저항 정신 없이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낙타의 삶.

그리고 억압을 부정하지만 더 이상의 발전이나 창조를 꾀하지는 못하는 사자.

그리고 마지막은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어린이이다.

 

이 작품에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낙타와 같다.

현재의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기 보다는, 기도원 혹은 천국을 쫓으면서 미래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누군가가 비판을 제기해도 이를 '마귀의 소리' 혹은 '사탄이 씌웠다'며 뻔히 보이는 증거조차 외면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유일하게 비판과 의구심을 제기했던 사람은

그저 비판만 할 뿐 다른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증오와 복수에 사로잡혀 이를 파괴하려 할 뿐이다.

 

 

 

 

 

이 작품의 재밌는 점은 그 누구도 긍정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인데,

중심인물들이 하나 같이 사기꾼, 위선자, 동네 폭력배이자 술꾼으로

도저히 정을 줄 수 없는 인간군상들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다보면 선-악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누가 더 악한가, 누구의 악이 더 명분이 없는가를 판단하게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눈 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

현재의 삶이 너무 힘들고 지리멸려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진실보다는 거짓되더라도 행복과 변화를 꿈꿀 수 있는 환상이 더 가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하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미래를 꿈꾸기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과

불안하고 부족해 보이더라도 당장 내 손에 잡히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맞는 방법일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의 불행을 똑바로 직시하지 않고,

종교나 돈, 사상...기타 다른 것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면

그때부터 비극은 시작된다는 것.  

 

 

 

 

 

+목소리를 누가 맡았나 궁금해서 유심히 봤는데,

똥파리의 '김꽃비'와 '양익준'님이 있어서 재밌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