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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20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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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2012)

DidISay 2014. 2. 1. 07:43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911테러로 아버지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한 소년의 이야기다.

책을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던 차에 설에 식구들과 함께 먼저 영화로 접하게 되었다.

 

나에게 911테러는 고등학교 때 야자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여름밤으로 기억된다.

10시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에 집으로 와서 소파에 앉았는데,

tv에서 건물이 동강 나는 영상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새로 나온 재난영화인가 싶었다가 온 채널마다 같은 장면이 나오는 것이 이상해서 보니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았었다.

 

먼 타국에 사는 나에게도 정신이 멍해질정도로 당혹스러운 일이었는데

눈 앞에서 가족이 사라지는 것을 생중계로 보아야했던 사람들에게

이 일은 분명 끔찍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상적인 아버지를 두었던 한 소년이

아버지의 유품인 열쇠를 가지고 성이 블랙인 사람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탐험 놀이를 계속 이어가는 것을 주요 구성으로 하고 있다.

 

3년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방대한 프로젝트지만 특유의 집중력과 추진력으로 이 일을 모두 완수하는데,

사실 영화의 포인트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 유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한 이 소년의 상처와 두려움의 치유에 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잘 만든 영화다.

 

 

 

전형적인 성장영화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교육철학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다리도 건너지 못하고 지하철도 타지 못하는 아이가

할머니댁에 세든 노인을 통해 트라우마를 서서히 극복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아이에게 보여주는 주변 어른들의 배려심이 참 감동스럽다.

 

편집증의 증세를 보이지만 이를 억지로 교정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서서히 치유되도록 조심스럽게 이끌고 지켜봐주는 과정.

세상의 일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모험'과 '성취'의 기회를 부여하는 태도...

어찌보면 참 당연하고 원론적인 것인데

흔하게 볼 수 없는 방식이다보니 영화 내용보다 저런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세상의 모든 일을 수치화하고 목록화해서 깔끔하게 정리하려던 소년에게

빈 관을 묻어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바로 '열쇠의 주인 찾기'프로젝트 였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소년이 바라는 방식으로 성공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처가 많고, 원인 모를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도

서로를 보듬고 아픔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이 세상은 험하고 상처투성이일지 모르지만,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들일지라도 서로를 향해 부둥켜 안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