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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DidISay 2012. 1. 23. 02:39
<예전 자연사강의를 들었던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된 책이다.
이 글의 서평은 개인적으로 중앙일보의 김형경 기자가 기재한 글이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잠시 빌려오기로 했다.>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이들이 더러 인용하는 사례 중에 테레사 수녀의 꿈 이야기가 있다.

“천사의 손에 쥐어진 황금빛 창의 단단한 끝이 불타고 있었다. 그가 긴 창으로 내 가슴을 몇 차례 찔렀고 끝내 나의 내장을 뚫었다. 그가 창을 뽑았을 때 나는 창자가 모두 달려나오는 듯했고 마침내 신의 사랑에 온몸이 타버렸다. 나는 고통스러워 신음했지만 고통은 끝없는 감미로움을 가져왔고 ….”

20세기 숭고함의 표본인 테레사 수녀는 이 꿈을 종교적 신성 체험이라고 말했지만 정신분석의들은 그것이 다만 억압된 리비도의 표출이라고 해석한다. 마찬가지로 테레사 수녀의 지극한 이타심에 대해서도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의심해 보는 건 나의 외람된 생각이다.

옥스퍼드대 출신의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0년대 중반에 발표한 『이기적인 유전자』는 사회생물학계에서 혁명적인 책으로 꼽힌다. 도킨스에 의하면 어떤 개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일관된 기준은 그 소속 집단이나 가족의 이익이 아니며, 그 개체 자신의 이익도 아니고, 오로지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 기계인 생물들에게 주는 단 하나의 지침은 이것이다.

“유전자를 생존시킬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되면 무엇이든 하라.”

책은 처음부터 생물이 갖고 있는 희생이나 헌신·본성을 결정하는 데 교육이 미치는 영향을 논외로 하겠다고 선언한 후 일관되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관점에서 유전자가 어떻게 냉혹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해 왔는지를 차근차근 밝혀 나간다.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유전자만이 길이 후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그 이기적인 유전자의 집적인 생물들이 어떤 본성을 갖고 있을 것인지를 유추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나온 지 20년쯤 후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가 출간한 『이타적인 유전자』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마지막 장에는 인간에게는 ‘문화’가 있어 다른 생물과 구별되며, 순수하고 사심없는 이타주의라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매트 리들리는 마치 아버지의 영광에 복무하는 아들처럼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을 인간의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사회생물학·경제학·게임이론 등을 동원하여 인간의 이타성을 입증하기 위해 초지일관 정연한 논리를 편다. 인간 정신이 비록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인간 정신은 사회적 협동성·신뢰성 등을 지향하도록 진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용어와 달리 ‘이타적인 유전자’라는 과학 용어는 없으며, 이 책의 원제는 ‘선행의 기원’ 이다. 결국 인간의 선행이나 관용·희생은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행위이며, 좋은 평판은 그의 사회적 거래에 유익하고, 궁극적으로 자기 이익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즉 이기적인 유전자가 선택하는 가장 고도의 생존 전략이 이타성이라는 것이다. 그 결론은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이들의 이론과도 일치한다. 자살자의 진정한 욕망은 타인에 대한 살해 욕구이며,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너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의식의 뒷면이라는.

앞의 책은 과학자의 책이고, 뒤의 책은 과학 저널리스트의 책이다. 앞의 책은 사회생물학 분야의 이론만을 외곬로 칼칼하게 전개해 나가는 데 반해 뒤의 책은 폭넓은 시각으로 다양한 이론을 동원하여 지금 이곳의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책을 읽고 나면 테레사 수녀의 숭고하고 이타적인 생에 대해서도 심리학적·사회 생물학적·경제학적 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해 보고 싶은 불경한 욕망이 생긴다. 아무래도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곧 환상을 벗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