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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커트 보네거트

DidISay 2014. 10. 23. 12:46

커트 보네거트의 대표작인 이 책은, 잡지에 연재했었던 글들을 모아둔 것이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독설은 꽤 직설적이고 강도가 센 편이라

왜 사람들이 마크 트웨인 이후의 최고의 독설가로 그를 뽑는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커트 보네거트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나라 없는 사람'을 꼽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비판 대상은 누구나 알만한 정치적인 인물들이나 사건이기 때문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시리즈보다 좀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두께는 아주 얇은 편이라 1, 2시간 내외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나 매력은 꽤 있어서,

다시 돌아가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각 장의 맨 앞에는 아래 이미지 같은 실크 스크린 작품이 있었는데

푸른 바탕에 자유로운 필체가 매력적이었다.

 

글을 읽으면 쓴웃음을 짓다가. 혹은 낄낄거리다가

저 파란색을 보고 잠시 멈추기를 반복하며. 읽었다

 

슬픈 것은 마냥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해맑게 웃을 수가 없다는 것.

한국으로 치환해서 읽어도 맞아떨어지는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억측과 농담

 

 

지난 백만 년 동안 인간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억측하며 살아왔다. 역사책에 기록된 중요 인물들은 가장 매력적이고 때로는 가장 무시무시한 억측가들이다.

그중 두 사람의 이름을 예로 든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틀러가 대표적일 것이다

전자는 훌륭한 억측가이고 후자는 사악한 억측가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많은 나라의 대중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바와 다름없이 자신의 교육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정말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런 저런 억측가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16세기 러시아에서 이반 뇌제의 억측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자를 쓴 채로 머리에 못이 박히곤 했다.

때로는 설득력 있는 억측가들이 우리로 하여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시련들을 견딜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준다는 사실은 인정할 만하다. 그런 이유에서 구 소련에서는 이반 뇌제를 영웅으로 추앙했다. 흉작, 흑사병, 화산 폭발, 사산과 같은 현상들 앞에서 억측가들은 종종 우리가 불운과 행운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런 현상을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던져주었다. 그런 환상이 없으면 우리는 오래전에 자포자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억측가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고 심지어 더 무지할 때도 있었다. 특히 인간이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는 환상은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무식한 억측이었다.

설득력 있는 억측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거의 모든 지도력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갑자기 인류의 손에 들어온 모든 지식을 무시하고 과거의 억측에 계속 매달리는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늘날에는 정치 지도자들이 억측에 억측을 더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시끄럽고 가장 무식하면서도 거만한 억측이 판을 치고 있다. 우리 지도자들은 과학과 학문과 학술 연구가 인류에서 선사한 그 모든 지식에 넌더리가 난 모양이다. 그들은 미국 전체가 자기들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착각은 자유다. 그들이 낡은 가방에서 꺼내들고 시끄럽게 선전하고 있는 것은 금본위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생필품에 훨씬 가깝다. 그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이비 약을 선전하고 있다.

총기는 교도소와 정신병동 수감자를 제외하고 모두에게 유익하다.

맞는 말이다

국민 건강에 수백만 달러를 쓰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맞는 이야기다.

무기에 수십억 달러를 쓰면 인플레이션이 감소한다

맞는 이야기다

우익 독재가 좌익 독재보다 미국적 이상에 훨씬 더 가깝다

맞는 이야기다

비상시에 발사할 수 있는 소수폭탄을 더 많이 보유하면 인류는 더 안전할 것이고 후손들이 물려받을 세계는 더 행복할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방사성 폐기물을 포함한 산업 폐기물이 사람에게 해를 입힌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맞는 이야기다

기업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은 뇌물을 줘도 괜찮고, 환경을 조금 파괴해도 괜찮고, 가격을 담합하거나 멍청한 소비자들을 우롱하거나 공정 거래를 위반해도 괜찮고, 파산 시 국고를 낭비해도 괜찮다

맞는 이야기다

그것이 자유 시장 체제다

맞는 이야기다

빈민들이 가난한 것은 과거에 큰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자식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맞는 이야기다

미합중국 정부가 모든 국민을 돌볼 수는 없다

맞는 이야기다

자유 시장 체제면 충분하다

자유 시장은 자율적인 사법 체계다

맞는 이야기다

이는 전부 농담이다

지식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워싱턴 DC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내가 아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 중에서도 몇몇 똑똑한 아이들은 워싱턴 DC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몇 달 전에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소폭탄이 조금만 터져도 인류의 생존이 위험해지는 것은 간단하고 자명한 의학적 사실이라고 발표했다. 그들 역시 워싱턴 DC에서 환영 받지 못했다.

 

 

 

 

예일대 C학점

 

 

공교롭게도 만인을 위한 이상은 달콤한 솜사탕만은 아니다. 그것은 법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헌법이다

그러나 미국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정의로운 전쟁에 참전했던 나로서도 때로는 화성인이 우리 미국을 침략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끔은 정말 간절히 바랄 때도 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미국 헌법은 상상조차 힘들 정도로 유치하고 저속한 시트콤 같은 쿠데타에 전복되고 말았다

언젠가 나는 정말로 무서운 리얼리티 프로를 만들어볼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모든 사람의 머리가 쭈뼛 설 만큼 무시무시한 프로를 구상하고 있다. 제목은 ‘예일대 C학점’이다

조지 W. 부시는 주변에 C학점 상류계급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1) 역사와 지리를 전혀 모르고 2) 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3) 기른바 기독교도이며 4)정말 놀랍게도 정신병자, 즉 영리하고 번듯하게 생겼지만 양심은 전혀 없는 자들이다

특정한 사람을 정신병자라 부르는 것은 맹장염이나 무좀 진단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학적으로 매우 적절한 진단이다. 정신병자의 의미를 규정한 고전적 의학 서적으로는 조지아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임상교수인 허비 클러클리 박사가 집필하고 1941년에 출간한 ‘정상성의 가면’이 대표적이다. 꼭 읽어보시기를!

어떤 사람은 청각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은 시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 책은 특별한 선천적 결함 때문에 온 미국은 물론이고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을 광분케 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바로 양심 없이 태어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된 사람들이다.

정신병자들은 버젓한 외모를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칠 행동을 충분히 잘 알면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심한 것은 돌대가리이기 때문이다. 나사가 풀린 미치광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종업원들과 투자자들과 온 나라의 순수한 국민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그 대가로 자신들의 배를 불린 다음 빗발치는 비난에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 엔론과 월드컴의 임원들을 다른 어떤 말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들이 백만장자를 억만장자로 만들고 억만장자를 조만장자로 만드는 전쟁을 주도하고, tv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으며, 조지 부시에게 돈줄을 대고 있다. 이는 부시가 동성 결혼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비정한 정신병자들은 현대 미국 정부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다. 중요한 권한은 대부분 그들 차지가 되었다. 통신과 교육까지 그들 손에 들어가 우리는 나치에게 점령당한 폴란드 국민보다 나을 게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결단만 하면 우리나라를 끝없는 전쟁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많은 정신병자들이 기업과 정부의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것도 남다른 결단력 덕분이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 않고 빌어먹을 짓들을 해대면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정상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결코 의심을 푸지 않는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군대를 동원하라! 공립학교를 사립화하라! 이라크를 공격하라! 의료 혜택을 줄여라! 국민의 전화를 도청하라!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라! 수천억 달러짜리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라! 인신보호법과 시에러 클럽(자연환경 보호단체)과 인디즈타임스를 엿 먹여라. 내 엉덩이를 닦아라

우리의 소중한 헌법에는 비극적 결함이 있지만 그걸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결함은 바로 미치광이 환자들만이 우두머리가 되고자 나선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교에서도 그랬다. 정서 장애가 분명한 아이들만 반장 선거에 출마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의 제목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뛰어난 SF소설 ‘화씨 451’을 패러디한 것이다. 화씨451도는 종이로 된 책이 불에 타는 온도다. ‘화씨 451’의 주인공은 서적을 태우는 일을 하는 시청 소속 공무원이다.

책을 태우는 이야기와 관련하여 한마디 더 하자면, 나는 도서관 사서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가 존경하는 것은 그들의 물맂거 힘이나 정치적 연줄 또는 막대한 부가 아니라, 이른바 위험한 책들을 도서관 서가에서 제거하려는 반민주적 불량배들에게 끈질기게 저항하고, 그런 책들을 열람하는 사람들을 사상경찰(‘1984’에 등장하는 비밀경찰)에게 신고하는 대신, 열람기록을 몰래 파기하는 양심과 용기다

이렇듯 내가 사랑했던 미국은 아직도 존재한다. 물론 백악관, 대법원, 상원과 하원, 대중매체 따윈 포기한 지 오래다. 내가 사랑했던 미국은 아직도 공공 도서관의 접수창구에 존재한다.

책과 관련하여 한마디 더 하자면,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 매체은 신문과 tv는 오늘날 국민 전체를 대표하기엔 너무나 부실하고, 너무나 무책임하고, 너무나 비겁하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매체는 책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크레이그 웅거의 ‘부시 집안, 사우드 집안’이 있다. 이 책은 굴욕과 수치와 피로 가득했던 2004년 초에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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