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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평전-안도현

DidISay 2014. 11. 27. 14:39

좋아하는 두 시인이 만났다. 백석 그리고 안도현

 

두 사람을 연결지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평전을 펼치면서 나란히 쓰여진 두 사람의 이름을 놓고 보니

나즈넉하고 정감 넘치는 시풍이 참 비슷하다 싶기도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철길 양쪽으로 펼쳐진 빈 들판에 기러기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잠자리로 돌아가려는 기러기들이었다. 기러기들은 여럿이 떼를 지어 날았지만 백석은 혼자였다. 그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영 처녀 박경련도 없었고, 경성에서 마지막으로 본 자야도 없었다. 최정희도 노천명도 없었다. 평양에서 결혼을 하고 안동과 신의주에서 잠시 같이 살았던 문경옥도 없었다. 평양에서 결혼을 하고 안동과 신의주에서 잠시 살았던 문경옥도 없었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자주 술잔을 나누던 신현중도 허준도 정현웅도 없었다. 함흥의 김동명과 한설야도 없었다. 낯선 만주에서 그를 돌봐주던 친구 이갑기도 시인 박팔양도 이석훈도 없었다. 낮게 깔린 먹구름 때문에 정주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정주역에서 고장이 나 멈춘 기차는 백석이 고읍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 쭈글쭈글한 주름의 늙은 어머니가 서른네 살 아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아들이 오마니한테 어찌 이케 늦게 완?"

 백석의 손등 위로 어머니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백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도현 시인이 팬심을 담아 써낸 이 백석평전은 짜임새를 잘 갖춘 책인데,

기존에 있었던 백석의 자료들을 모두 취합해서 오류여부를 검토해 실어놓았고

백석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 꼼꼼하게 살펴서

글을 읽다 보면 평전이 아닌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보통 서술 위주의 평전을 읽다 보면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읽더라도

그 신변잡기성이나 딱딱함에 질려서 중간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글은 백석 자신의 삶과 그를 둘러싼 시대 자체가 워낙 한국사의 격변기이기도 했고

복잡다난 했던 애정사.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치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처럼

유려한 대화들과 묘사 때문에 매끄럽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하나라는 백석.

예전엔 월북작가로 분류되면서, 언급 자체를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는데,

판금이 풀린 뒤에는 교과서와 수능에도 여러 차례 출제 되면서 대중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백석의 어린 시절부터 초로의 노인이 된 시기까지를 최대한 다루고 있는데

6.25이후 그의 기록이나 작품활동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정도로도 묘사를 한 안도현 시인에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고 서글픈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녹두빛 '더블 부레스트'를 젖히고 한대寒帶의 바다의 불결을 연상 시키는 검은 머리의 '웨이브'를 휘날리면서 광화문통 네거리를 건너가는 한 청년의 풍채는 나로 하여금 때때로 그 주위를 '몽파르나스 Montparnasse'로 환각 시킨다. 

 

어느 날 백석이 연둣빛깔이 나는 더블버튼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양복은 매우 고급스럽게 보였다. 어깨를 으쓱하며 그가 말했다.

"이건 이백원을 주고 맞춘 양복이야."

신현중과 허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30원에서 40원정도면 살 수 있는 양복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2백원이라면 서너 달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이었다.

...

백석은 보통 사람들이 한 켤러에 20-30전짜리 양말을 신고 다닐 때에도 1원이나 2원을 줘야 살 수 있는 양말을 신었다.

"양말이라고 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나는 완벽하게 챙겨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지 않으면 대체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백석은 빈틈이 없었다. 깔끔하지 않은 모든 것은 그의 적이었다.

 ...

백석은 지저분한 음식점을 출입하는 것도 꺼렸다. 함께 길을 거닐다가 점심때를 만나면 친구들은 백석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보통은 설렁탕이나 대구탕 한 그릇이면 점심으로 그만이었다. 하지만 백석은 음식점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아무 데나 선뜻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탁자를 행주로 깨끗이 닦지 않은 집이라거나 주인여자의 앞치마가 청결하지 못하다는 핑계를 대기 일쑤였다. 백석의 입맛에 맞는 깨끗하고 분위기 있는 음식점으로 가기에는 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끼니때가 되면 친구들은 이런 게 항상 걱정이었다.

  신문사 교정부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더욱 가관이었다. 신문사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면 그는 수화기를 손수건으로 싸서 들었다. 그리고 수화기를 입 가까이에 대지 않고 멀찍이 떼어 들고 전화를 받았다.

"자네 무슨 결벽증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따끔하게 쿡 찔러봐도 백석은 태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손과 입김이 닿은 것이어서 나로서도 어쩔 수 없네."

심지어 사무실 문을 여닫을 때에도 백석은 손잡이 쪽을 대지 않았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을 골라 손등이나 팔꿈치를 이용해 문을 열고 닫았다.

 ..

백석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세상은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그는 이 더러운 세상을 혼자서라도 맑은 사람이 되어 건너가고 싶었던 것이다.

 

 

북에서 온 인사에게 그의 노년을 물어보면 '전원생활'을 하다 돌아가셨다는 답변이 돌아온다는데

말그대로 모던보이에 결벽증까지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시들을 쓰고.

결국엔 작품활동을 금지당한 채 시골에서 도리깨질을 배우며 살았다는 것을 상상하면

그 '전원생활'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란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사람들이 가장 재미를 느낄만한 부분은

백석과 자야 여사의 사랑인데, 실제로도 꽤 많은 비중을 거쳐서 다루고 있다.

그만큼 백석에게 자야. 그리고 그가 결혼하고 싶어했던 통영처녀 박경련은

실제 그의 삶의 행로에서나. 작품에서나 큰 영향을 미쳤다.

 

책에서도 계속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그의 삶과 연결시키며 설명을 하고 있어서

시를 이해하는데 잔재미를 느낄만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좀 딴길로 새자면,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내가 들었던 생각은 =_=;;

얼굴값 하면서 살았구나 내지는

시인으로서는 참 좋아하지만 남자로서는 영;;에 가깝다;

 

일단 시대가 요즘과 다르니 어느정도 참작을 한다고 해도 

박경련한테 구애를 하러 가는 와중에도 기생집에 들러서 놀질 않나;

자야와 동거하는 와중에도, 부모님 핑계 대면서 결혼을 몇번씩이나 했다가 돌아오고 =_= 

절친이었던 신현중이 배신을 해서 박경련을 뺏겼다지만

자야와 계속 관계를 맺는 와중에도 못잊음(...)

 

게다가 북한에서 결혼한 부인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애를 유산했다는 이유로 박대를 해서 이혼하고 등등;;;

처음에는 그래그래..뭐 그래...-_- 하며 이해를 하면서 읽다가

나중엔 거의 야 이 찌질아..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진저리를 쳤는데;;

자야여사가 백석과 나중에라도 헤어져서 진짜 다행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들었(..)

뭐 작가의 삶과 작품은 분리해야 하니까 하아.. 

 

 

 

 

요즘 겨울인데도 날이 그리 춥지 않아서

두터운 롱스웨터 하나로 매일을 나고 있는데

오랜만에 길상사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