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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완전하게-이숙명

DidISay 2017. 8. 29. 16:35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어.

같이 사는 것만 빼고.



기왕에 결혼 안 한 보호자로는 애인보다 친구가 낫다. 내가 여자여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밤늦게 헤어질 때 택시의 차량번호를 적어두고, 잘 들어갔는지 확인 전화를 해주는 것은 항상 여자들이다. 회식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도망 나온 날, 길거리에서 '바바리맨'을 만나 심장이 무릎까지 떨어진 날, 밤늦게 현관 문고리를 흔들다 사라진 의문의 행인 때문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잠든 날, 달려와 함께 있어주겠다고 말한 것도 여자들이다. 남자들은 애초에 그런 종류의 공포를 이해하게끔 길러진 생물이 아닌 것이다.


생명과 안전을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여자 친구들이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유용한 존재들이다. 이사할 때 짐 정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것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다닐까봐 밑반찬을 만들어 나누어 주는 것도, 내가 아플 때 "그깟 감기몸살이 대수냐.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지"라고 잔소리 하는 대신 약이 필요한지 죽이 필요한지 꼼꼼히 살피는 것도, 일과 인생 혹은 금전 문제로 고민할 때 단지 하소연인지 해결책을 원하는지 구분해 적절한 조치를 해주는 것도 여자 친구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내게 헌신의 대가로 연애나 섹스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애하다 수틀려서 그 자신이 내 집에서 가장 필사적으로 막이내야 할 주적이 되는 경우도 피할 수 있다...나는 대답했다. "당연하지. 남자들이 얼마나 의리가 없으면 자기들 입으로 그렇게 의리를 강조하고 다니겠어."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물론 그 남자가 무척이나 의리 없는 짓을 하고 떠나간 뒤에 나를 위로해준 것도 여자들이었다.




우리가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흥미로운 무언가에 자원을 쏟아부으려 할 때, 우리가 실패하고 다치고 망하고 상처받을까 봐 말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내가 실패하고 망함으로써 그들을 책임지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지는 소중한 존재들,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족쇄다. 가족이란 대개 그런 존재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포기한 모든 일들은 고스란히 후회로 남는다...가족은 가장 보편적인 종교다. 가족은 무조건 사랑하고 보듬고 용서해야 할 대상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교리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살아서 지옥을 맞는다, 다 쓸데없는 짓이다. 


나는 가족과 나의 기대가 상충할 때,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궁극적으로는 나의 행복을 지지할 거라는 믿음으로 최대한 이기적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가족들도 철저하게 자기 행복만을 위해 살아주기를, 나를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기를, 결과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채무감을 지우지 않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노력했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부모님도 나에게 생활비나 의료비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새로 가족을 만들게 된다면, 그들과도 서로 크게 기대하거나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웬만하면 가족을 더 늘리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말이다.





두려움과 미안함에 굴복하지 않고' 노'라고 말할 때 나 자신이 진정 배려 있고 용감한 사람이 되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 느낌을 알고 나니 더 이상 시간을 벌기 위해 대답을 미룰 필요도 없었다. 미뤄봤자 마음만 더 오래 무거울 뿐이니까. 또한 재빨리 깔끔하게 거절할수록 상대방이 대안을 찾을 시간도 많아진다. 그런 요령들이 나의 작고 평온한 세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해야만 하는 일들로부터 도망칠 공간이 있다는 것, 의무와 무관한 몰입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돈이 되지 않는 일들에 기꺼이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삶을 사랑하고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들 말이다. 



예술영화관에는 데이트를 하러 온 커플보다 영화 자체가 좋아서 온 사람들이 많다. 조조영화관에는 혼자 좀비처럼 스스륵 들어왔다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나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만약 누군가 큰 소리로 "영화를 어떻게 혼자 봐?"라고 말하면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볼 사람만 있는 공간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커플로 가득한 주말 저녁 멀티플렉스에서 천만 영화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아늑함을 준다. 내게 영화란 여전히 '체험'이고, 제 옆에 앉은 사람보다 영화 자체에 애정이 더 큰 관객들이 뿜어내는 건조하면서도 지적인 에너지는 한 편의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혼자인 채로 함께다.



불완전한 타인과의 관계에 의지하지 않고도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서로 결혼을 꿈꾸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친구들이 나와 연인들 간의 애착 관계가 깊지 않거나 남자가 내게 불성실할 거라 짐작했고 자주 헤어지라고 권유했다. 주로 연장자들이다. 그들은 결혼이 사랑이 아니라 상황의 문제임을 종종 잊어버리는 듯했다. 특히 타인의 경우에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짐작은 틀렸다. 우리의 결론이 결혼이 아니라고 해서 함께 여행을 다니고, 봄날의 가로수길과 여름의 해변을 걷고 밥을 지어 먹고, 음악을 듣고, 매일 통화하고, 타인에게 하지 않는 투정을 부리고, 시시한 것들에 함께 웃고,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을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위로하려 애쓰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고, 팔베개를 한 채 잠들고, 아플 때 곁을 지켜준 그 모든 시간이 무의미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결혼에 대한 기약 없이도 우리는 연인에게 그런 것들을 해줄 수 있다. 사랑의 영속성에 대한 집착만 버린다면 그 상태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집착이 없었기에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순간에 충실할 수 있었으며, 그 관계들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내게 외로움에 대한 불안, 이별에 대한 두려움, 쓸쓸한 독거노인이 되는 공포를 벗어나게 해준 것은 영원에 대한 기약이 아니라 그런 연애의 경험들이었다. 언젠가 다시 혼자가 된다 해도 나는 그 경험들에서 얻은 교훈을 딛고 일어설 것이다. 끝없는 외로움도, 끝없는 행복도 없으며, 언제 어디서 인연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믿음 말이다.





그리고 좋았던  Q&A 부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