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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

DidISay 2012. 1. 23. 03:29

"그건 그렇지만 너도 한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너한테는 약간 말이야..남자한테 오해를 하게 할 만한 부분이 있어.나야 오해 안 하지만 다른 사람들 말이야."

 

"그게 뭔데?"

 

"뭐라고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첫째로 말이야 넌 너무 잘 웃고...

그리고 너무 정이 많아.남자들은 그러면 가끔 오해해.더구나 넌 지금 혼자고.."

 

"그래 그래서?그럼 남자들을 만날 때면 차도르를 쓰고 나갈까?

그도 아니면 장옷을 뒤집어쓰고 눈만 빼꼼 내놓은 채로,아무리 우스운 일 있어도 절대로 웃지 말고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마치 사춘기에 들어선 열여섯 살 소녀처럼 인간적인 호의와 이성적인 호감도 구분하지 못한 채로 새침을 떨까?"

 

-"보기 싫었겠지.아직도 젊은 제 부인이 다른 동창들이랑 마치 예전의 그 처녀같은 얼굴로 떠드는게 싫었겠지.그래서 확인하고 싶었겠지.내가 잘난 척해도 넌 내 소유물이야 그걸 느끼는데 섹스보다 좋은 건 없은까...신데렐라를 꿈꾼 일은 없어.돈이나 명예를 욕심냈다면 저 인간하고 결혼하지 않았을거야.하지만 이건 아니야. 적어도 이건 아니야...아니야!

 

"내 말은 우리들은 어머니들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자주 웃거나 하면 안되는 걸로 알고 자란 남자들이란 말이야.대한 민국의 그냥 보통 남자 말야...내 말은 그런 뜻이었어.."

 

"우리들은 어머니들이 그런 걸 보고  자랐어.다른 점은 말이야. 우리들은 그런 어머니들의 생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거야.너희 남자들은 그게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던 거고..단지 웃음이 문제 되는게 아니고 말이야..."

 

"그래 그렇겠지.하지만..."

 

"그래 우리들은 그런 세대야. 우리 어머니들은 딸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생을 살라고 가르쳤고, 그리고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라고 가르쳐지.그러니 우리가 부딪치는 건 어쩌면 당연해.단지 나는 이제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피곤할 뿐이야.정말 피곤할 뿐이야."

 

 

아주 오랫만에 공지영의 소설을 집어들었다..

 

이 책은 학창 시절에 읽었던 것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내게 주었다.

아직까지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거나,안이한 태도로

안주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의 인정이 아닌 '차별'이 존재함이리라..

 

오늘 티비를 보다가 여자 사원이 첫입사날 커피심부름을 거부하자

너무도 당당하고 큰 소리로

'꼴통페미'라는 말을 내뱉는 것을 들었다.

슬펐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모습이나 권위적인 모습 앞에서

당당히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구하면서

'넌 시대에 뒤떨어진 기생충 같은 마초일 뿐이야..'

이렇게 비난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여성은 자신의 성을 앞세워 시대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남성은 자신의 성을 이용해 다른 인격체를 짓밟거나

그 위에 군림하여 지배해서는 안된다.

 

아마 이 작품을 결혼 후에..혹은 아이들을 낳아서 양육하고 난후

아주 오랜 세월후에..읽게된다면 나도 이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무력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게될까..혹은 악착같은 마음과

건조하고 메마른 감성만이 남아 아무 느낌없이 관조하게 될까..

 

그렇게 되지 않게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긴 어떤 누가 이런 삶을 살길 바라겠느냐마는..

이렇게는 안산다..이렇게는...이러면서 또 같은 삶을 살고있음에

절망하고 포기해버렸던게 지금까지 우리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삶이었으니..

 

어쩌면 여성으로 태어난 그때 이미 오욕의 땅을 향해

한걸음 내딛었던 것일지도..

 

오늘날 우리의 삶은..나와 내 주위의 여성들의 삶은

과연 그네들의 인생과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재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면

그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모욕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그녀 자신의 말대로 누구도 자신을

발닦개처럼 밟고 가도록 만들지 말아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이 책의 처음에 나와 있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의 말은 전통적인 구조와 사회적인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무언가 혼자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의지와 힘을 주는 듯하다.

작가 공지영은 이 책에서, 사회에 대한 그리고 여성의 문제에 대한 어떤 확실한 답을 찾고자 한 것은 아니다. 혜완의 가정에서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모순과 경혜의 사회적인 모순의 결과로 인한 불행한 결혼 생활, 그리고 영선의 순종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의 모순을 통해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줌으로써. 여성 스스로가 이런 모순 속에 억압되지 않고, 스스로 이런 굴레를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을 것이다.

나는 여성들이 자신을 포기한채, 남성의 그늘 아래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한 지금도 도처에서 불평등과 억울함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일을 찾아 자신을 발전시키는 이 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남성 역시 여성을 하나의 인격적인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면서,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래야 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문제, 억압과 굴레의 문제들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아 나가기 위해서 서로에게 주어진 어떤 역할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며 함께 돕는 것이 가장 큰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