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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이청준

DidISay 2012. 1. 23. 03:49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이청준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11권이나 되던 전집도 찾아서 보곤 했었는데

한참이나 잊고있던 '벌레이야기'가

영화 밀양의 개봉과 함께 내 기억 속으로 떠올랐다.

 

벌레이야기의 외적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약국을 운영하는 부부의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납치된다. 아내는 평소에 믿지 않던 교회며 절을 다니며 기복신앙에 의지해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고 빌지만 결국 아들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어 두달만에 돌아온다. 범인이 아들이 다니던 주산학원 원장이라는 것이 발견되고 그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아내의 간절한 희망은 극한 증오로 발전해서 범인의 죽음을 기다리고 그를 저주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웃여자의 반복적인 방문과 대화로 그녀는 교회에 나가게 되고, 신의 힘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마침내 평화를 찾는듯 하다.크리스마스를 앞둔 날 그녀는 범인을 직접 만나서 용서를 해줄 것을 결심하여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범인 역시 이미 신의 은총 안에서 평화를 찾아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는 입장이 되었고, 자신이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것을 감사하고 있었다.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아내는 범인이 눈과 신장을 기부하고 사형을 받은 다음날 자살로 생을 끝낸다.

 

100pg 남짓의 단편소설이라 1시간안에 읽어갈 수 있지만

주제는 꽤 무겁다. 신 앞에서 벌레같은 존재의 인간.

신의 사랑 앞에서 사람은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과연 무엇인가.

사람에게 자기존엄성이 없다면,

과연 동물과 다른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소설의 관점에서 본다면 신의 용서는

폭력적이고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소설의 주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작가는 이 소설을 광주민주화운동을 염두에 두고 썼다한다.

실제로 아무도 용서한 적이 없는데, 언론플레이를 통해

어느덧 용서한꼴이 된 현재의 상황은 우습다.

 

영화화가 되면서 벌레이야기는 밀양이 되었다. 밀양의 밀은 빽빽할 밀 密이다. 빽빽할 밀은 비밀스러운, 가까운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가깝게 존재를 알듯모를듯 존재하는 사람들. 누군가는 이 밀이 곳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신의 섭리를 의미하는거라고 하던데 그건 좀 아닌듯;;;

 

벌레이야기가 그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신의 영역을 논했다면, 이창동 감독은 소시민(송강호)을 등장시킴으로 이를 인간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한 것 같다.

 

이를 새로운 해석이라고 해야할지, 이창동 감독의 한계라고 해야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난 조금 아쉽다.

 

ps. 영화의 영향으로 벌레이야기가 따로 출간되었는데,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쪽수를 늘릴 생각이었는지 최규석의 그림을 삽입해놓았는데, 그림이 너무 음울하고 강렬해서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린 사람의 의도대로 따라가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 불쾌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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