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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신경숙

DidISay 2012. 1. 23. 03:51

 
 
왕실의 무희는 매우 아름다운 용모로 다른 무희들과는 구분되었다.
그것은 유럽인의 눈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젊은 외교관이 이 무희이 우아함과 매력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녀를 원하게 되었다......
유럽으로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은 그  외교관은
매일매일 그 젊은 한국 여인에게서 발견되는 지적인 매력에 이끌려
그녀와 헤어지기를 원치 않게 되었다.               
- 이플리트 프랑댕 -
 
 
 
나는 어린 시절부터 궁에서 지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서 나는 '소인'이 아니라
'나'로 살았으며 행복했습니다.
나를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것들을 깨뜨리고 나를 느끼는 일은 설레지만 두렵고 심장이 뜨거워질 만큼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서 나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보살피며
사는 박애가 무엇인지, 나의 자유로 나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떠나면서 내 머리를 빗기고 싶어했던 것을 거절한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미련을 가질까봐 그랬지만 그 정도의
미련도 없다면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왜 그 때는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나도 모르게 당신은 프랑스인이고 나는 조선이라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남자와 여자였을 뿐인데 ..........
이제 나 리진을 내려놓고 자유로우세요,
그래야 나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당신의 후두염이 염려되겠지요,
당신은 나를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내 머리를 빗기고 싶겠지요.
이 것으로 우리는 충분하다 여깁니다.         - 리진-  
 
 
여기서 왜 울고 있는 거요?
이렇게 몰래 숨어서 울기나 하려고 이 먼 곳 까지 왔단 말이오?
실로 이곳에 와서 배운 점이 많소. 어서 돌아가 내가 보고
배운 것들을 펼치고 싶소.
망설였으나 인사는 하고 가야 될 것 같아 왔소.
여기 사람들에게 조선을 알리는 길은 조선 이야기 책을 이곳 말로 옮겨 읽게 해 주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게 내 생각이오.
이 곳 사람들은 점성술에 관심이 많으니 조선 점성술을 읽게 하면
그 독서가 조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택했소.
그대가 세심히 보강을 해 주었으면 하오.
책이 나오는 걸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애석하오.
 책으로 나오는 동안 본인의 일처럼 여가고 관여해주오. 부탁하오           -홍종우-
 

 

 
어느 기자의 말처럼 신경숙과 역사소설은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
자료도 거의 남아있지 않고 베일에 싸인 리진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그려내었을지 굉장히 궁금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두 인물.
 
섬세한 신경숙의 표현이 조선의 무희에서 프랑스 대사관의 연인이 되고,
이후 금조각을 삼켜 죽음을 선택한 여인의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가슴 먹먹하게 잘 그려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