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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남한산성-김훈

DidISay 2012. 1. 23. 03:54
김훈의 작품은 이상하게 소설은 거의 읽지 않고
그가 낸 에세이들이나 기행문형식의 글들만을 봐왔었다.
자전거 여행이나 풍경과 상처... 밥벌이의 지겨움 같은..
 
그래서 소설도 이전에 내가 읽었던 것들과 비슷하겠구나 했는데
서사양식의 특징때문인지 그 느낌은 사뭇달랐다.
김훈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색다른 느낌
 
일단 남한산성은 작가의 걸죽한 입맛과 만연체의 문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남성작가의 매력이 잘 묻어난다고 해야할까.
 
문장으로 발신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가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었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문장이 길고 아주 현란해서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지는 감도 있지만
그럼에도 아주 중독성이 있어서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쫀득쫀득하고 찰싹찰싹 달라붙는
감칠맛이 있었다면 김훈은 좀더 화려하고 건조한 느낌이다.
저 부분은 조정래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진득한 맛은 역시 덜한..
 
상황과 음담패설을 묘하게 엮어서 풀어내는 기술은
일상 대화에서 듣는다면 불쾌하겠지만 역사소설 내에서는
작품의 맛을 살리는 마법사의 지팡이가 될 수 있다.
 
근데 조정이 나가면 칸이 죽이지 않을란가?"
"죽이지 않을 거여. 계집도 초장에 대주는 년보다 뻗대다가 벌리는 년이 더 예쁘지 않던가. 맛도 더 좋고."  
"근데. 너무 오래 뻗댄 거 아녀?" 
"그러니까 빨리 벌려야지." 
"그려. 벌릴 바에야 활짝 벌려야 혀."
 
다만 역사의 재현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연성을 잘 살려내어서
상황을 납득시키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