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전경린 본문
태인은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좀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싱싱한 생선이나 감자나 양파,
혹은 흙 묻은 시금치나 상추 같은 것들 만지기를 좋아했다.
태인은 그것을 생과의 접촉이라고 말했다.
껍질 깐 감자나 양파의 신선한 생명력을
손끝에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은 가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양말과 옷가지는
반드시 스스로 세탁해서 말려 입으려고 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혼자 생활해온 습관이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간의 품성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그런 생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고수할 생각이었다.
요즈음 계속 전경린 소설들만 읽고 있다.
씁쓸하면서 끈적한 그런 눈물의 짭짜롬한 맛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후에 한동안 내 주위를 맴돈다.
전경린의 작품 속에는 80년대의 싸한 기억을 간직한 인물들
혹은 생에 대한 생생함을 간직하려고 몸부림 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어찌보면 쳇바퀴 도는 삶 속에서는 내 자신에 대한
날카로운 이지라든가 정체성이라는 것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불륜이라든가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형태의 사랑들이 등장하는 것이겠지만.
정체성을 찾아야한다고 혹은 자신을 사랑해야한다고
끊임없이 되뇌여보지만
정말 자신을 사랑하다보면 주변 사람들이 불행해지거나
사회적으로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강한 사람, 행복한 사람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려면 어느 정도의 삶의 깊이를 쌓아야할까.
하늘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상승과 추락.
저는 위험하게도 언제나 추락에 더 깊은 감동을 받아왔습니다.
자기를 구원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너무나 결정적인 상처 때문에
세계에 대해 무감각해진 사람들, 지친 피부에 절망적인 검버섯이 피어난 사람들, 두 눈 속에 자신의 끝이 새겨져버린 사람들.....
가장 순결한 사람만이 생에 대해 저항하며 공격하고,
그리고 산산이 파멸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생의 맨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칩니다.
생이 품고 있는 지뢰와 거울 뒤의 악의와 밤과 낮의
서로 다른 사랑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삶 자체에 비관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삶을 신뢰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저는 고통 속에서 발견된 인물들을 그들이 그리워하는 곳까지 이끌기 위해 마지막까지 한 걸음 더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소설의 끝이
언제나 따뜻하게 미소짓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가장 비극적일 때조차도 말입니다.
-작가의 수상소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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