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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외딴 방- 신경숙

DidISay 2012. 1. 23. 04:30

책장 한 귀퉁이에서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오랫만에 펼쳐든 책.

 

아주 오래 전에

계천 주변 헌책방에서 집어 온 책.

 

읽을 때마다 울림을 주는 글귀와

다가오는 느낌의 폭이 다르다.

 

 

 

 

  우리들하고는 다른 삶. 나하고는 다른 사람. 하계숙에게서 우리들하고는 다른 삶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엄마를 떠올리며 멍해졌다. 사실은 나, 하계숙의 말처럼 내 여고 시절이나 글을 읽지 못하는 내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어쩌면 나는 좀 더 일찍 어머니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모르고 싶었기에 알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경을 펴 놓고 계시지 않은가, 성경을 읽고 계시지 않은가, 하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받은 함구령을 하계숙은 한마디로 질책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들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하면서. 우리들하고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하면서. 나는 하계숙과 전화를 끊고 방 안을 서성거리며 그녀에게 화를 냈다. 나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순정한 첫사랑을 밖에 두고 문을 닫아 버린 사람 취급하다니. 그러나, 하계숙 얘기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들 얘기를 쓰지 않았다. 딱 한 번 시도해 본 적은 있었다. 그 글은 하계숙이 읽지 못했다는 첫 소설집 마지막에 실려 있다. 하지만 그녀, 하계숙이 그 글을 읽는다고 해도 그녀는 그 글이 그 시절 우리들 얘기라고 생각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정직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껏 시치미를 떼었으니까. 내 젊음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자신은 없고 생생한 아픔만이 승해서 범한 건너띔, 이십 년 후 이러이러했다고, 끝을 내놓았다. 정면으로 쳐다볼 자신이 없어 얼른 뚜껑을 닫아 버리며 나는 느꼈다. 내게는 그때가 지나간 시간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낙타의 혹처럼 나는 내 등에 그 시간들을 짊어지고 있음을, 오래도록, 어쩌면 나, 여기 머무는 동안 내내 그 시간들은 나의 현재일 것임을.

 

  이후, 육 년의 세월이 더 흘러 지금이 되었고, 그동안에도 나는 그 때의 이야기가 문장으로 튀어나오려 하면 심호흡을 하며 밀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가 아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으니까. 어떻게 그녀들이 이끌어 내진다해도, 나는 그 속의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한번 자신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뚜껑을 닫아 버리는 것만으로만은 되지 않아 이렇게 집을 도망쳐 왔으나 하계숙은 끈질기게 여기까지 따라와서 내 이마에 얼음물을 똑똑똑 떨어뜨리며 속삭인다. 뭐라고 변명을 해도 너의 진심은 부끄러움에 있는 거야. 우리를 부끄러워하는 거야. 밤 어선을 내다보며 닫아버린 뚜껑을 열어 보는 지금도 자신감은 회복되지 않는다. 이 글이 마무리되었을 때 이 글이 과연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마주 앉아 있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도 계속 도망칠 것 같다. 틈만 나면 다른 이야기 속으로 건너가려고 할 것 같다. 벌써 기승전결의 이야기 형식을 내 손에서 놓아 버리고 있질 않나. 가장 접근하기 쉬운 그 형식을 놓아 버리고 어쩌자는 것일까. 어쩌리라는 마음도 사실 없다. 다만 내가 짐작하는 건 이렇게 나는 도망치려 하면서 다시 돌아오고 도망쳐서도 다시 자의로 돌아오고 하며 완성될 것 같은 느낌 밖에. 너무나 오래 마음속에 삭여 온 일이라.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으니 내가 도망치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에 날줄 씨줄이 짜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