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여자,정혜 본문
만약 스토리만 보고 이 영화에서 달콤한 로맨스를 생각했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오히려 다큐멘터리나 프랑스 영화처럼 단조롭게 진행되는 영화이니까..
이윤기감독은 영화중반까지 정혜(김지수) 일상을 아무런 수식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공감되는 장면이 있어서 풋하고 웃기도 했지만..(특히 황정민이 저녁식사에 오지 않은 다음날 신호등에서 그를 보고 다른 길로 가버리는 장면이나..멍한 눈으로 똑같은 일상을 의미 없이 반복하는 장면들..)
나름대로 인내심 많다고 여기는 나도 이렇게 불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하루같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일(그것도 지루한 우편잡무를!)들에 똑같은 대화까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왜 일일이 나열해서 질질 끌지?" 그러나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 지루해 미치겠지? 넌 2시간이 지나면 끝이겠지만 정혜는 스물몇을 저렇게 살아왔고, 앞으로 남은 평생도 저렇게 보내야 될지도 몰라.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짓밟혀버린 한 여자의 삶이 어떤건지를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녀의 상처가 얼마나 골이 깊은 것이었는지 조금씩 알아가면서 지루함은 동정심이 되고, 그녀의 상처가 우리 모두의 상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동정심은 소망이 된다. 그녀가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들의 상처를 치유할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예전 남편은 묻는다. "처음 섹스할 때 기분이 어땠어?" 어릴적 정혜가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모르는 그는, "그런 걸 꼭 얘기해야 되나요?"란 말에 또 한 번 보챈다. "아팠어요." 그녀는 그가 자신의 생채기를 보듬을 수 없을 거라 일찍부터 예감했기 때문일까. 신혼여행 첫 날 그녀는 도망친다. 그리고 생각했다. 상처받은 과거가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 줄 수 있을 거라고.
사람만이 문제라고 했다. 정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유일한 희망이었던 사람을 잃었고, 고모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로 세상사람들과 선을 긋는다. 또다시 상처받느니 차라리 세상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삶에 어느날 한 남자(황정민)가 들어왔다. 미리 알리지도 않았고 초대하지도 않았지만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머뭇머뭇거리는 모습에 멀찍이서만 바라보고 말한 번 붙여보지 못하는 수줍음, 약간 어눌해보이는 듯한 느릿느릿한 말투와 수수한 옷차림까지. 보통의 여자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거 같은데 정혜는 그의 어떤 모습에 이끌렸을까? 그래, 그녀는 그리웠던 것이다.
사람냄새 물씬 나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미. 치. 도. 록. 그. 리. 웠. 던. 것. 이. 다.
하지만 그의 천성 탓일까? 아니면 그녀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았던 탓일까?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되찾을 때까지. 마침내 그녀는 꺼내보는 것이 두려워서, 마냥 덮어만 두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마주선다. 피를 토하듯 오열을 한 뒤 그녀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간다. 고모부와의 기억으로 얼룩져있던 남성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우연일까, 아니면 상처받은 사람들끼리는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는 걸까. 이제야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 그녀에게 그가 어리숙하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아쉽게도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는 우리들의 상상력에 맡긴 채로.
이 영화를 보고 답답하다..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난 개인적으로 괜찮게 봤다..마음 속의 상처나 응어리가 서서히 녹아드는 기분이랄까..어느 것이든 자신의 느낌이 중요한거니까..
하지만 단지 시간 때우기 용으로 보거나 뭔가 달콤하고 흥미진진한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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