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권태(L'Ennui, 1998) 본문
원래 작년에 시네큐브에서 개봉했을 때 보려고 했지만,
이래저래 약속이 취소되고 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쳤었다.
이번에 다시 보게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의
그 특유한 무미건조함과 위트가 녹아있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40대 철학교수와 17세 누드모델의 스캔들
한 남자만 사랑하는 건 따분하다고 말하는 그녀
꽤나 자극적인 광고카피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는 수많은 배드신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배드신 자체가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왠지 행위만 배드신이고, 그냥 길을 걷는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남자의 집착에 눈이 먼 행위가 너무나
웃기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
전혀 야한영화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휴머니즘 영화나 성인판 성장 영화라면 모를까..
줄거리는 이러하다.
40대 철학교수. 아내와 이혼 후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 중이다. 성충동을 예술이나 학문적인 성취로 해소하는 프로이드의 '승화'를 들먹이며 금욕적인 생활을 고집한지 6개월 째. 그러나 가르치는 일에서도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새로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지만 별 진전이 없다. 어느 날 단순한 호기심에서 누드모델 세실리아를 만나면서 그동안 몸담아왔던 차가운 이성의 세계와 결별하고 사랑에 매달려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겪는 정체모를 괴로움을 경험한다. 한 때, 승화를 모르는 인간은 날뛰는 성기와 콩알만한 뇌를 가진 한심한 미치광이라고 단언하던 마르땅. 그는 세실리아를 향한 사랑 때문에 잠을 설치며 번민하고,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구나 그녀에게 자기보다 젊은 새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사랑은 불같은 질투와 집착이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세실리아를 독점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는 마르땅. 사랑은 포기했다고 말하던 그는 이제 어떻게 해도 애타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다.
결국 남자주인공은 이별의 선물로 준비했던 것을
소녀의 냉담한 태도에 오기인지 호기심인지 알수없는 감정이 생겨
그녀를 붙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고
그녀의 다른 남자친구의 존재마저 힘들게 수용해버리고 만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여자 때문에 비상식적으로 변해가는 남자
너무나 다른 캐릭터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독특한 유머
한 논평에서 이런 표현을 썼는데, 정말 딱 맞는 표현인것같다.
정말 외모상으로는 전혀 매력이 없어보이는 여자주인공이
그 냉담하고 무관심한 태도, 어처구니 없기까지 한 대답들
(내가 좋은데 왜 하면 안되죠?.류의 언행들..)로 인해
영화가 끝날무렵에는 왠지 남자주인공의 감정처럼
그녀가 매력있게 보이고 부럽기까지하니
정말 남녀관계에서 소위 튕기는 행위는
매력적인 소스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문제는 이 영화에서 소녀는 정말 천성이 무관심이어서
교수가 점점 집착하였다는 거다.
영화를 보다보면,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는 교수가 애같고
소녀가 세상 다 살아서 미련없는 늙은이같기도 하니..
이 영화의 원작은 이탈리아 작가 모라비아의 작품이라던데
꼭한번 텍스트로 접해볼 생각이다.
툭툭 웃음이 터져나오는 영화, 권태이다..
(참, 난 소녀와 교수의 관계만큼이나
교수와 전부인의 관계도 꽤나 흥미로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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