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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보지의 독백)-충무아트홀

DidISay 2012. 1. 29. 23:19

버자이너 모놀로그.hwp


나의 질은 화가 나 있다. 그렇다. 그것은 화가 나 있다. 나의 질은 격분하고 있으며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이 모든 빌어먹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한다. 내 말은 그 대우가 뭐냔 말이다. 불쌍한 내 성기와 부드럽고 사랑스런 질을 괴롭힐 방법들을 생각하고 있는 저기 저쪽의 한 무리의 사람들 말이다. 내 음부를 멸시하기 위해 추잡한 사상들과 정신 분석적인 이론들을 세우는데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 비열하고 야비한 질.


이 작품은 몇 해 전 대본을 봤을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안맞거나 일이 생겨서 번번히 보지 못했던 연극이다.

올해로 11주년을 맞는 인기 연극 중의 하나인데도,
아직까지 한글판 제목을 갖지 못하는 연극.
이는 번역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보지'라는 단어의 파괴성 때문이다.

이 연극의 시작은 '보지'라는 단어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다.
눈이나 배처럼 우리의 신체를 표현하는 순우리말인데다가,
그 근본이 되는 단어 또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비속함과는 거리가 멀다.

보지의 어원인 '볻'은 뿌리나 씨를 상징하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봄'과 같은 어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슬아치 따위의 비속한 단어에 이를 사용하며
점잖게 표현해야할 때는 음부라는 한자어를 대신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성인인증이 없으면 뜻 검색 조차 불가능하고
맛있다는 단어를 사용해서 여성의 신체와 음식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냥 몸의 일부분일 뿐인데, 여성비하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고
무언가 저속하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인 함의를 갖게된 것이다. 

이 단어를 이렇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여성들조차도 스스로 이 말을 내뱉을 수 없게 하는가.

이 연극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하여,
월경,성폭력,가정에서의 성문제,여성의 주체적인 성 찾기,
여성의 자위,오르가즘, 위안부,임신과 출산 등으로 논의를 넓혀나간다.

생각보다 웃음코드가 많아서 재미 있었고,
많은 주제를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다양하게 다루어 주어서 좋았다.

위안부 할머님의 이야기나 성폭력 이야기는 
정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작품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꼭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고.

10년간의 세월동안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변했는지,
중년층 부부 관객, 커플 관객들이 반 이상 되어서 보기 좋았다.
20주년 때에는 한글제목으로 당당하게 공연할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