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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부러진 화살(2012)

DidISay 2012. 2. 13. 00:40



부러진 화살은 안성기와 문성근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경영과 문성근은 거의 주연급 비중을 차지하는데
특별출연으로 크레딧에 올라와 있어서 의문스러웠던..

보통 법정드라마라고 하면 연상되는 현란한 쇼맨십이나
변호사의 능수능란한 말솜씨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법대로 재판을 진행하길 요구하는 안성기와
이를 묵살하는 사법부와의 역설적인 대립각,
그리고 그로 인한 답답함과 숨막힘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화려한 언어로 인한 논리성보다는 말과 말 사이의 간극이 주는
묵직함이 힘을 발휘하는 영화랄까.

이 영화가 실제 사건과 같냐 같지 않느냐는 중요지 않다.
픽션을 전제로 하는 영화를 가지고 그것을 논한다는 행위는,
도가니를 가지고 비판한 모 의원의 행각처럼 우스운 것이고,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사법부를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법치주의가 얼마나 불신의 시선을 받고 있는지를 대변하는 것이다.

예전에 푸코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
그리고 한국의 교육이 왜 발전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수업을 들을 때
동일하게 제기되었던 문제가 있었다.

한국에 어떤 철학이나 제도가 들어왔을 때, 
하나의 열병처럼 그것이 열광적으로 추앙되고
모든이가 마치 그것이 진리인양 한마디씩 하지만
결국은 그 좋은 제도나 철학이 그저 '유행'처럼 흘러갈 뿐
우리의 생활영역에 철저히 녹아들어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또 다른 유행을 열병처럼 좇아갈뿐..
우리의 삶은 여전히 적당히와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안일한 논리로 흘러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코메디처럼 웃겼던 장면은,
판사가 보수꼴통이라는 말을 듣자
안성기가 원칙대로 하는 것이 보수고,
나도 어디서나 꼴통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잘됐다고 응수하는 장면이다.

한국의 보수가 과연 보수인가.
보수는 모국회의원처럼 여성을 성희롱 하는 것이 아니라
계집애들이 어딜 이런 복장으로 쯧쯧..이라며 이를 가려주는 것이 보수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힘의 논리로 억압하는 것은 보수가 아닌 폭력이며,
오히려 원칙과 법대로 진행하는 것이 보수이다.
자기 아쉬울 때만 아무렇게나 갖다 쓰는 것이 보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갖는 보수의 의미가 워낙 왜곡되다 보니,
한국에서는 꽤 과격한 진보주의인데,
막상 해외에서 진행되는 진보주의의 정책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다보면
오히려 보수에 속하게 되는 웃기는 상황도 발생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그만 따지고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
'좋은 게 좋은거지' ,' 어른이 말씀하시는 데 어딜 감히'등등인데
이런 말들이 여전히 용납되는 한 한국에서의 토론문화는 절망적이라고 봐야한다.

상대방을 타당한 논리와 합리적인 근거로서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나 다른 헤게모니를 통해 억누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토론이 아니라 폭력이니까...
시민사회의 기본조차 형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교과서나 상식이 말 그대로 통용되는 사회.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그 원칙들이 활자로 갇혀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도 실제로 실행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내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