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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곰이 되고 싶어요(2003)

DidISay 2012. 2. 28. 12:29




가끔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인데,
수채화풍의 선 굵고 간결한 그림이 참 아름다워요.

아기곰을 잃은 엄마곰이 너무나 슬퍼하다가
인간의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얀 설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배경 속에서,
아이를 되찾으려는 인간과 곰의 끝없는 추격전이 벌어지죠.

하지만 곰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인간부모에게 되돌아와도 기뻐하지 않고, 계속해서 곰 그자체가 되고 싶어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짓고 일반적인 틀에 껴맞추려는 태도나.
서넛만 모여도 따돌림을 시키는 인간의 폭력성이 엿보여서 참 마음이 아팠어요.

개인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로 힘들 때,
신화와 관련된 책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여러번 반복해서 봤던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는 성장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나 영웅의 시련극복의 과정이 잘 나와있어서
아이들이 신화를 배울 때 보여주곤 합니다.

다만 독특한 것은, 이 아이가 겪는 시련극복의 원인이
인간이 아닌 곰으로 거듭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게다가 그 극복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도 어떤 초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한 존재라는 것이 참 마음을 벅차게 합니다.

지금 고통을 겪는 아주 작은 존재인 개개인들도,
삶의 역사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내 삶의 영웅이라는 메세지를 전달받고 힘을 내곤 했어요.

우리의 신화 속 웅녀와는 완전히 반대인 셈인데
웅녀는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었지만,
이 소년은 참 고되고 험한 세월을 견딘 후에야 겨우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전 신과 결혼한 웅녀보다는 평범한 곰과 짝을 짓고,
또 하나의 작은 곰으로 살아가길 택한 이 소년의 이야기를 더 사랑해요. :)

모든 신화는 인생이란 태어날 때부터 짜디짜며 소금기가 더할 수 없이 독하다고 말합니다.
또 맵고 매운 것을 견디는 것이 인생의 일부라고 얘기하죠.

고통은 바로 생의 통로이므로, 마땅히 이겨나가야 할 절대의 길목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말해주는 신화들은 어떤 아픔이 있을 때마다 참 힘이 되죠.

이 작품을 보고 여러 설화들을 배운 아이들도
그저 나와 동떨어진 오래된 영웅들의 텍스트로만 작품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인생의 시련을 견디고 있는 또 하나의 영웅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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