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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곤의 선물(2012,명동예술극장) 본문
오랫만에 좋은 연극을 보고 왔다.
유명극작가 피터 쉐퍼의 '고곤의 선물'
극단실험극장의 창단 52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 설명을 하자면,
1. 에드워드 담슨: 저주 받은 자식(갓 뎀 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시대처럼 연극으로 세상을 정화하고 지배하는 것을 꿈꾸며,
꾸준한 글쓰기와 노력 보다는 디오니소스적 영감과 광기를 통한 글쓰기를 한다.
이를 증명하듯이 그는 클라이막스만을 써놓은 미완성의 습작들을
젊은 나이에 50편이나 써놓는다.
2. 헬렌 담슨: 에드워드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며,
총망 받는 학자이자 아데나 연구자.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새롭게 뜨는 별이라 믿게 된 강렬한 에드워드를 택한다.
디오니소스적 영감보다는 아폴론적인 이성을 중요시여긴다.
3. 쟈비스: 헬렌의 아버지
캠브리지 교수로 평화주의자며 신화연구자.
고전적인 신화해석에 반항하는, 에드워드를 매우 싫어하며
그를 여러번 내쫓은 경험이 있다.
에드워드가 일을 하지 않고 연극만 쓰자.
예술적 고뇌를 핑계로 무의도식한다고 비난한다.
딸 헬렌의 인생을 망친다고 생각해, 결혼 역시 반대.
4.담신스키: 하숙집을 하는 부인을 지긋지긋해하는 알콜중독자.
에드워드의 아버지이며, 러시아 노동자 출신.
부인에게 빌붙어 술을 마시며 무위도식한다.
에드워드의 연극이 성공했을 때 매우 기뻐하며 칭송하지만,
그렇지 못하자 연극이 꼭 예술이어야만 하냐며 비난한다.
5.필립: 젊은 시절 에드워드에게 생긴 아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손에 성장했다.
아버지에게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드라마 전공의 교수가 된다.
이 작품은 필립이 절벽에서의 사고로 죽은 아버지 에드워드의 평전을 쓰기 위해,
헬렌의 거듭되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까지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결국 헬렌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라도 반드시 출간하겠다는 허락을 받고,
이어지는 며칠간의 대화와 회상으로 이 연극은 진행된다.
이 작품에서 그리스는 아주 중요한 공간인데,
인물들 대다수가 그리스 신화와 연결되어 있으며
작품의 주된 흐름 역시 신화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가난한 러시아노동자이자 알콜중독자인 하숙집 아들.
헬렌은 부모님이 모두 교수인 지식인층의 여자이다.
이 둘은 서로에게 강렬히 끌리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다른 성향 때문에 고통받기도 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부모님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삶에서 부모님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거의 없다고 할정도로 적다.
그저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
이런 영향 때문인지 그는 헬렌을 오로지 영감을 주는 존재이자
나의 광기를 달래줄 여자로 생각하지,
아이를 갖고 새로운 가정을 꾸릴 동반자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문제 해결은 피를 통한 복수이며,
용서나 이성은 그저 타협이나 회피에 불과할 뿐이다.
그가 꿈꾸는 것은 복수 이후의 발구름춤이지,
이성적인 타협과 용서의 과정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과정들이 더 많은 고통을 생겨나게 한다고 말한다.
지식인 출신인 헬렌은 평화주의자인 아버지의 주장대로,
피의 복수보다는 이성적인 용서와 평화를 꿈꾼다.
또한, 관객의 시선을 고려하기도 하는 이성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이다.
이 둘의 차이는 아데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느껴지는데,
아데나를 전쟁과 복수의 여신으로 바라보는 에드워드에게
헬렌은 아데나는 오히려 절제와 이성을 알려주는 여신이라고 말한다.
이 연극의 특징은 그리스연극처럼 코러스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강렬한 조명과 빛을 아주 영리하게 사용한 무대에서
이 코러스의 소리와 몸짓은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축제처럼 연극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에드워드를 도와 헬렌은 일상을 책임지면서도 그의 희곡들에 조언을 해준다.
이 때 헬렌은 아버지, 자신의 연구, 아이를 모두 잃게 되는데,
이로인해 에드워드의 작품을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며 강한 애착을 보인다.
이 소설에는 2 종류의 희곡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에드워드가 공연용으로 완성하는 작품.
두번째는 헬렌과 에드워드의 의사소통에 사용된 (주로 코러스로 표현되는)
페르세우스와 아데나를 다룬 세가지 장면이다.
에드워드의 작품에는 항상 극단적인 피의 복수가 등장하는데,
이를 헬렌이 저지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고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메두사(증오,광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치유하고 용서하려는 나머지 두 자매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한다.
고곤에게 두가지 피가 흐른다는 것은,
연극이 디오니소스적인 피의 복수만이 아닌
치유와 이성이라는 아폴론적인 것도 의미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페르세우스가 고곤의 머리를 똑바로 보는 것을 거부하며,
고곤의 머리를 아데나의 방패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날뛰었듯이
담슨 역시 복수와 광기만을 연극의 본질로 생각하며
헬렌의 지혜를 거부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헬렌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한 지혜의 조언을 에드워드가 잘 따랐으나,
고곤의 머리를 똑바로 보는 것을 거부한 페르세우스처럼
에드워드 역시 성공으로 자만에 빠져 자신의 강박관념과 폭력성을
그대로 노출시킨 작품을 쓰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에드워드의 의도처럼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한 비난을 받게 되며 처참하게 실패한다.
애초에 페르세우스가 고곤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데나의 지혜와 선물 때문이었는데
이를 무시해버렸으니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
두 사람을 맺어주었던 그리스와 연극.
균열을 만드는 것도 이 두가지이다.
이 연극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용서와 균형을 외치던 헬렌이 피의 복수를 꿈꾸며
필립에게 에드워드의 자서전 출간을 강요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큰 희생자인 필립은,
복수를 거부하며 오히려 아버지를 통해 연극의 새로운 부활을 꿈꾼다.
가장 마지막 장면의 헬렌의 '나는 당신을 용서한다'는 독백은
평화롭고 조화롭다기 보다는 오히려 장엄하고 극적이다.
그녀의 용서는 오히려 에드워드의 복수와 광기로 가득했던 삶을,
모두 부정해버린다는 점에서 가장 큰 복수일지도 모른다.
누가 연극은 이제 힘이 없다고 말했는가.
내가 본 오늘의 공연은 그 어떤 스크린의 영상보다도 훨씬더 강렬하고
몸을 떨리게 하는 전율이 있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조명과 빛의 효과적인 사용, 그리고 음악.
이런 것들이 모두 어우러진 정말 멋진 무대였다.
1. 우리는 진실을 고곤의 머리를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있는가.
그것을 모두 바라보았을 때, 피로인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2. 이 작품은 아일랜드나 크롬웰을 끌어와 설명했지만,
6,25나 일제강점기 문제를 끌어와보면 어떨까.
3. 연극을 할 때 정말 빛이 나는 배우가 있구나 싶었다.
티비나 사진과는 너무나도 다른 비범한 인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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