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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스승(Lean On Me) 본문
이 영화는 조 클락과 다른 교사들이 격렬하게 다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후 클락이 떠난 후 난장판이 되어버린 학교를 보면서 나는 대다수의 관객들처럼 다른교사들의 무능함과 나태함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점차 그 생각이 바뀌게 되었는데 나 역시 그 영화 속 교사였다면 처음 장면에서 클락과 대립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된 장소는 흑인 빈민가에 위치한 이스트사이드고교라는 공립학교이다. 이 학교는 학생들 대다수가 기본 학력평가에서 평균에 못미치고 있고 학생과 교사의 안전을 위협받을 정도로 통제불능상태이다. 마약과 총이 밀매되기도 하며 교사의 권위는 형편없을정도로 추락한 상태이다.
학교가 당국에 넘어가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의견이 떠났던 교사를 다시 데려와 책임자로 앉혀 개혁을 하게하자는 것이었다. 실력위주의 평가로 학교의 지원과 교직원의 책임을 결정하는 미국의 체제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제도는 학교와 학생들의 질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수는 있지만 경제생산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미국의 교육지원제도를 짚고 넘어가야하는데 미국의 지원체제는 대부분이 학부모의 재산세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학부모의 부와 교육의 질이 결정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평가로 지원을 결정한다면 공교육 전반적인 질이 더욱 낮아지고 살아남기 위해 학교는 시험위주의 수업방식을 도입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클락 역시 교장으로 부임한 후에 자신의 교육관에 따라 강력한 개혁을 실시한다. 내가 클락과 대립했을 것이라 생각한 이유도 바로 그의 교육관 때문인데 그는 총기 매매를 위해 출입구를 차단하고 당국의 경고에도 불복하며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앞세운다. 이러한 그의 교육은 아무리 학교의 생존을 위해서라지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우선 제도와의 연계성을 추구해야하는 교육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마치 개인의 학교인 것처럼 독단적인 개혁을 취했다. 또한 교사의 권위가 필요한 것은 나역시 동의하고 있다. 교사의 권위가 너무 높아도 학생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저해하고 교사중심의 수업으로 치우칠 위험이 많지만 너무 낮은 경우 기본적인 수업진행이나 적절한 개입이 장애를 받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속 클락의 위치는 교사가 아닌 교장이다. 설사 교사라고 하더라도 그처럼 강압적인 태도는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충분한데 그가 교장의 위치에서 교사들까지 억누르는 행위는 더욱 심각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교장의 권위가 강해지면 위로부터의 직접적인 통제가 이루어지게되므로 교사나 상담실등 세부기관들의 독립성이 유지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그대로 나타난다. 교장이 교사의 수업에 끼어들어 수업방식을 문제 삼고 수업내용을 임의로 바꾸며 더구나 학생들 앞에서 교사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책망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또한 교사와 학생의 평가 역시 인성적인 면이나 과정을 중시하기보다는 시험결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이로 인해 교사들은 교장에게 반발심을 가지게 되고 강압적인 태도로 인해 교사로서의 존중이 아닌 순종의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나게 된다.
클락 교장은 학생들을 대하는 면에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는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들을 일괄적으로 모두 퇴학시켜버리는데 물론 학교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학생들 개개인의 차이나 문제점을 개선하기보다는 통제하려는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또한 자신이 문제아로 주시한 학생의 일에 계속해서 간섭하고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는 태도는 교육자로서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클락은 수업 외 시간의 모든 생활 상의 문제를 교육의 일부로 보고 통제하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인성지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긍적이지만 그의 태도는 지도라기보다는 강압에 의한 인위적인 변화로 보이며 자신의 교육관을 주위사람들에게 억지로 주입시키려는 위험을 내포한다.
또한 자신의 교육관과 대치되는 사람은 이해시키기 보다는 해고시키는 등의 행동은 교사를 동료가 아닌 자신의 수단적 도구로만 보는 행위이다. 학생과 교사의 자율성 보장면에서 교장의 권위는 최소화 되어야 하며 학교는 학부모, 제도와의 연계를 통해 개혁을 실시해야한다. 물론 그는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직접 찾아가서 도와주고 그의 생활을 개선하게 하는 등 긍정적인 면모를 보이며 후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그의 진심을 알고 모두 수긍하고 존경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교사가 모든 학생들의 생활문제를 해결하고 그처럼 강압적인 사람에게 학생과 교사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그렇게 쉬울 수 있을까? 개혁을 성공시키고 학력고사에 통과한 클락은 아마 학습자 중심의 수업이나 동료 교사들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 그 시험성적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계속 시험위주의 강력한 수업방식을 취할 것이다.
교사의 권위는 물론 존중되어야 하고 이는 교육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권위는 학생과 동료교사들의 존경심이 먼저 전제되어야 하고 그 권위는 조력자로서의 개입 그 이상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시험위주의 수업방식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인 학습에 대한 즐거움을 상실하게 하는데 장기적으로 학습에 대한 동기를 약화시키는 이런 수업방식이 과연 교육적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목 속의 고독한 교사는 클락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의 고독함은 자신의 강압적 행위가 자초한 결과이고 그가 그런 교육관을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교사는 고독한 존재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는 더 이상 고립되거나 고독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사제도와의 통합을 통해서 개혁을 실시해나가야 하며 그 개혁은 단기적 효과가 아닌 장기적인 교육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자신의 교육관은 개개인이 선택할 문제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다수의 학습자와 교육 전반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계속적인 고찰이 필요한 영역이다. 교사에 대한 권위와 학습자의 권리가 계속해서 대치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주게 하는 영화였다.
교육학개론 시간에 봤던 영화. usb 정리 하다가 감상문을 발견했다 ㅎ
1학년 초반에 간단하게 썼던 감상문이라 문장이 정리되지 않고 꽤 거칠다.
꽤 강렬하게 봤던 영화라.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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