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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본문
2차대전 즈음의 독일은 영주국가처럼 산산히 쪼개진 상태였습니다.
이를 하나로 통일할 필요성이 있었던 히틀러는
순수주의를 내세우며 타민족간의 분열을 조장하게 됩니다,
당시 유태인 학살의 총책이었던 아이히만은 전쟁이 끝난 이후
아르헨티나까지 도망쳐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살아가는데 성공합니다.
덕분에 매우 철저하게 이루어졌던 이후 나치전범들의 재판에서 자유로워지는듯이 보였어요.
하지만 10여년 후 이스라엘의 비밀조직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결국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 세워져 심문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엄연히 불법적인 납치행위였지만 유태인 학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
국제 사회도 어쩌지 못하고 방관하는 사태에 이르게 돼요.
뉴요커지는 기자를 특파해 2회에 걸쳐 기고문을 작성하게 되는데,
이 때 뽑힌 인물이 유태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였습니다.
그녀는 독일에서 공부하던 중에 겨우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인 중 한명이었죠.
당시 그녀는 지도교수 하이데거와 염문이 있었고
담배 피는 모습이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일 정도로
매우 당당하고 자유로운 모습의 학자로 80년대 여성들의 로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얼마나 악하고 잔인한 사람인지를
낱낱이 고발하는 자극적인 기사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의외로
아이히만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문구가 유명하죠.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으며
특별히 근면해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이나 반성의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다는 점을 포착합니다.
그는 친해진 간수가 위로차 넣어준 당시 유행소설 롤리타를
음란하다며 거부할 정도로 어떤 의미에서는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의 문제는 철저한 무사유였습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그와는 어떤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어요.
이는 그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타자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에 둘러 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감정이입을 하지않았던 것이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성실하게 명령에 따라 학살을 했기 때문에
이런 끔찍한 결과가 나오게 된 것 입니다.
동양의 공자가 말한 '서恕'나 서양의 성경에도 나오는 공통의 교훈 중 하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입니다.
그렇다면 생기는 딜레마는 아이히만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한
'악을 악으로 갚는' '불법으로 아이히만을 납치한'
'시온주의를 주장하며 팔레스타인을 쫓아낸' 이스라엘인들은 과연 선한 것일까요?
한나 아렌트는 이후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사유할 것을 강조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사유 하지 않고 명령에 불복하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한국의 처우를 생각하면
우리 역시 사유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생각보다 꽤 무거운 문제에요.
우리는 과연 아이히만과 같은 상황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을까요?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인문학은 타인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속내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합니다.
이런 능력들은 결과적으로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이 자긴을 사랑할 수 있게하는 여력을 갖추게 해주죠.
한국이 인문학의 위기인 이유는 이런 능력들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심지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죠.
우리 역시 아이히만처럼 연인이나 가족 외의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는 별로 없죠.
히틀러와 아이히만은 바이에른 공화국의 교육부 장관이 의해
1등을 강조하는 엘리트 중심 체제 속에 자라난 세대들 입니다.
체벌과 경쟁을 강조하고 승자만을 기억하는 것이 마치 한국과 비슷하죠.
이런 교육은 모두 1등이 되어야 하므로,1등을 제외한 다수의 아이들은
모두 결여된 부족한 존재라는 의식을 안고 자라게 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타인의 고통이나 타인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은
점점 사라질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소위 사이코패스나, 지극히 성실하나 생각 없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되는 것이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아이히만 같은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게 할 수있을까요?
우리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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