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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일루셔니스트, 뱅샹 쇼메

DidISay 2012. 4. 30. 13:11

일루셔니스트는 뱅상 쇼메의 대표작 중 하나로,
특유의 독특한 색감과 캐릭터 묘사가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이다.

프랑스 코메디거장 '자크 타티'의 동화같은 삶을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고자 노력한 결과,
작화 하나하나에 살아숨쉬는듯한 생동감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자크 타티를 부활시켰음을 느낄 수 있다.

영국의 시내 곳곳과 스코틀랜드를 묘사해 놓은 장면들이
매우 사실적이고 아름다운데
마치 화면을 통해 마술사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술사이다.
하지만 인기 있고 멋진 마술사가 아니라,
이제는 록스타나 영화에 밀려 뒷골목으로 밀려나게된
힘없는 초로의 사내이다.

영국 중심가에서는 더이상 서기 힘들어진 마술사 타티셰프가
스코틀랜드 작은 섬의 선술집 공연을 하게 되고
여기서 자신보다 더 초라한 종업원 소녀,
앨리스를 만나게 된다.

아픔을 느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주인공은 이 소녀의 초라한 신발이 맘에 걸려서
빨간 구두를 선물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소녀는 매우 기뻐하고,
이를 마술의 힘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노인이 섬을 떠날 때 소녀도 몰래 따라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마법 같은 자본의 힘에 물들어버리게 된 소녀는
계속해서 마술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고,
소녀의 코트나 구두 등을 사기 위해
마술사는 점점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처지에 이른다.

힘이 없어지고 모두에게 무시를 받는 상태였던 마술사에게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노력에 맘껏 기뻐해주는 소녀가
너무나 소중하고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세일즈의 일환인 눈속임으로 전락해버린,
혹은 늙은 노파나 찾게 된 마술을
소녀는 정말 현실인 것처럼 믿어줬으니까.
적어도 소녀에게만은 마술사는 작은 영웅이었다.

일루셔니스트는 그렇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쇠락과 화려한 변화를 교차하게되는 한 마술사와 소녀의
헌신과 동경을 담아낸 여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소녀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마술사의 노력이 계속 될수록
화려하고 세련된 앨리스와 상반되게
마술사는 점점 초라해지며,
관객 역시 안타까워하고 힘들어져간다.


하지만 어느날 마술사는 소녀가 젊고 잘생긴 청년과
데이트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이제는 새 세상으로 나아가 현실을 마주해야 할 앨리스를 놔주고
조용히 떠나게 된다.

마술은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일이고 환상을 보여주는 일이다.

어린 시절 산타 클로스의 존재를 믿다가
그것이 가상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삶이 환상의 공간에서가 아닌 실재하는 공간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어른으로서의 짐을 어깨에 지고 세상을 살게 된다.

영화에서 보이는 장면과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동화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주는 정서는 우리들의 삶이 가진 고통과 아픔이 배어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의 삶이 갖는 아련함과 상실감
그리고 쓸쓸함이 짙게 드리워 있다.

노년의 마술사 타티셰프의 모습을 보면서 그 쓸쓸함의 깊이가 전해지며
그의 인생의 쓸쓸한 시간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Magicians Do Not Exist"

자신이 마술의 도구로 쓰던 토끼를 어느 산 언덕에 풀어 준 마술사는
더 이상은 마술을 하지 않을 것이다.
타티셰프는 앨리스에게 '마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난다.
앨리스는 이제 세상은 더 이상 마법 같은 환상의 공간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고,
스스로 삶의 시간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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