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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이성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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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이성복

DidISay 2012. 6. 14. 07:44

 



이성복 시인의 아포리즘. 
이분 꽤 이목구비 또렷한 미남이신데, 젊으실 적엔 헤어스타일이(...)  

강신주 선생님 강의 듣다가 추천 받아서 샀는데,  얇고 가벼워서 부담이 없는 책.
하지만 문장이나 생각만은 묵직하고 힘이 있다. 시인 특유의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표현들도 좋고.

소파나 침대 근처에 두고, 마음이 아플 때나 머리가 복잡할 때 집어들고 읽는다.
그럼 이 건조하고 예리한 문장들이, 어쩐 일인지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신기하게도. 


 

삶은 아무것도 속이지 않는다. 정직하게 시간의 칼을 휘두르며, 자기의 변화를 완성할 뿐.


우리의 고뇌는 신의 출현방식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집에다 싸움판을 벌여놓고 가출한다. 그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이미 제기된 문제를 미루거나 포기하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나선다. 그들이 신비에 정통한 듯이 행동하는 것도 그곳에서는 안심하고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껍데기다. 가장 민감한 껍데기. 낭심의 피부처럼 유별나게 부드러운 껍데기


절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임의의 절망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마치 산불을 끄기 위해 맞불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즉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러, 세계의 '사리(舍利)'를 얻어내는 일


시는 아픈 사실들을 이야기함으로써 그 사실들이 더이상 아프지 않게 한다. 씌어진 것들은 내던져진 것들이다. 그것들은 욕망과 욕망의 대상, 깨끗한 것과 추한 것의 저 너머에 있다.


무서운 것은 사랑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데 있지 않고, 애초에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네가 내 손을 잡아줄 수 없듯이, 내가 네 손을 잡아줄 수 없음.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부둥켜안는 것이다.


극복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한 위안은 그래도 우리가 그 아픔을 '앓아낼'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


우리는 처음 결혼식을 갖는 신랑처럼 어색하게, 어눌하게 살아간다. 그것이 생이라면, 구태여 세련된 것은 인간적이 아니다.


사실 어떤 대상에 대한 불만은 어떤 대상에 내가 준 관념, 즉 나 자신의 일부에 대한 불만이다. 적은 언제든지 내 편이다.


사물이 자유롭지 못할 때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사물에게 자유를 되찾아주는 것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일이 된다. 그러나 선후관계를 잘못 생각해서, 우리의 자유를 먼저 찾으려 할 때 과장된 몸짓과 억지 울음이 쏟아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