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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홍영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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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홍영철

DidISay 2012. 6. 28. 04:35

 

 

 

  아직도 기다려지는 것이 있습니다.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가에 떠 있는 새털구름 한 조각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마른 풀잎 같은 것도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의 벌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본 것들 가운데 가장 황량한 풍경의 그 가장자리에 지금 서 있습니다. 벌판을 가로질러 멀리 뻗은 길을 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는 그를 나는 누구라 부를까요.

  시인의 할 일은 한 송이 들꽃의 잎사귀를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을 묘사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직도 기다려지는 것들과 벌판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그려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기다려지는 것들의 이름과 가슴속을 자꾸 걸어가는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합니다.

-서문  中에서.

 

 

 

 

95년에 발표된 홍영철님의 시집.
몇 편의 시들을 적어본다.

 

 

너 누구니

 

가슴속을 누가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다.
창문 밖 거리엔 산성의 비가 내리고
비에 젖은 바람이 어디론가 불어가고 있다.
형광등 불빛은 하얗게
하얗게 너무 창백하게 저 혼자 빛나고
오늘도 우리는 오늘만큼 낡아버렸구나.
가슴속을 누가 자꾸 걸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을 듯 보이지 않을 듯 보이며 소리없이.
가슴속 벌판을 또는
멀리 뻗은 길을
쓸쓸하게
하염없이
걸어가는
너 누구니?
너 누구니?
누구니, 너?
우리 뭐니?
뭐니, 우리?
도대체.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이 시를 읊을 때면, 이 시가 삽입되었던 단편드라마의 영상이 떠올라서 잔잔한 감동이 생긴다.
파로브 스텔라의 음악이 떠오르게 하는 시이다.



 

일6

가을밤 두시의 골목에 쌓인 것은
바스락거리는 낙엽만이 아니라
눅눅한 어둠만이 아니라
더럽고 칙칙한 복종도 있구나.
가을밤 두시를 지키는 늙은 청소부
초록빛이 지쳐 까매진 손수레와
단풍빛이 지쳐 까매진 야광조끼와
그리고 길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사라지는 도둑고양이.
가을밤 두시에 제기랄
누구는 잠을 자고 누구는 사랑을 하고
누구는 포근한 꿈을 꾸는데
가을밤 두시에도 잠들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꿈꾸지도 못하고
누구는 불결하고 역겨운 오물들을 만나느냐.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황금이 아니듯이
가을밤이라고 해서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구나.

 

 

내가 퇴근할 즈음 항상 만나는 분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시는 청소부분들.
그리고 이렇게 늦은 새벽까지 깨있다 보면 어느순간 청소를 시작하시는 분들의 소리가 들린다.

내가 이어폰을 꽂고 즐겁게 걸어가는 그 길을, 오물을 만나면서 보내시는 분들.
소파에서 편하게 기대 책을 보거나 영상을 보는 그 시간 누군가는 바쁜 하루의 일상을 연다.
그러고 보니 그분들의 옷이 고운 초록빛..고운 단풍빛이었네.

 

 

 

 

뭐냐

그 어떤 논리도
그 어떤 이론도
그 어떤 주장도
인간의 생활은 편하게 하였지만
인간들 자체를 변하게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눈 뜨고 세수하고 밥 먹고
일하고 화장실 가고 놀고 잠자고
일어나서 또 세수하고 또 밥 먹고
또 일하고 또 화장실 가고 또 놀고 또 잠자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네, 정말.
그럼 이게 뭐야.

 

 


'오래된 미래'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는, 청소기나 세탁기의 발명..도시화와 문명 등이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일하는 시간을 늘렸을 뿐, 
사유하고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대폭 줄였다는 것.

이론과 사상과 물질은 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너무나 바쁘고. 과거보다 더 각박하다.

 

 

 

잠긴 문 열기

너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다.
틈 사이로 안을 조심스레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천천히 손잡이를 돌려본다.
대문은 그러나 뜻밖으로 열린다.
발소리를 줄이며 너의 방까지 다가간다.
방문은 단단히 잠겨 있다.
문고리를 잡고 이리저리 비틀어본다.
그러나 역시 열리지 않는다.
부수고 들어갈까 했지만
부수는 일은 옳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저쪽을 향해 말을 한다.
문을 열어라.
문을 열어라.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다시 문고리를 잡아 비튼다.
이윽고 마룻바닥 한쪽 구석에서
뿌옇게 녹슨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을 자물쇠 구멍에 꽂는다.
방문은 거짓말처럼 쉽게 열린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 너를 찾는다.
그러나 너는 없다.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딘지 이상의 '가정'을 생각나게 하는 시.

어쩌면 이 시집 후반부에 '금홍'을 주제로 하는 시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이상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저 방안에서 너를 찾는 일이 가능할까.

 

 

 

 

금홍의 잠

사람이기를 임시 거부하기로 한 그는
그 여자의 성명 석 자까지도
말쑥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두절된 세월 가운데
그 여자는 왕복 엽서처럼 돌아왔다.
슬픈 그 여자에게 그는
맥주와 붕어 과자와 장국밥을 사 먹였다.
너무 늦었다. 헤어지자, 응?
그럼 난 어떻게 되우, 응?
마땅한 데 있거든 가거라, 응?
그럼 당신도 장가가나, 응?
그 여자는 그에게 2인용 베개를 주고 갔다.
그는 2인용 베개를 혼자 베고 잤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버려라.

 

 

 

이런 시를 읽을 때면 저 장면을 상상한 뒤에 대사를 소리내서 연극처럼 읽어 보게 되는데,
사람이기까지 거부하고, 여자의 이름까지 잊으려 했던 남자와 다시 돌아온 여자의 대화가
참 씁쓸하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2인용 베개를 주고간 여자의 마음이 읽혀지기도 하고.. 뭐 그렇다.

시를 보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이란 문구에 흠칫했다.
이 문구..가을방학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참 좋다했는데, 이 시에서 따온거였구나.

 

 

 

계피양의 목소리가 너무 달달해서. 이 시와는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