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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백인남성 떡밥 본문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돌고 도는 케케묵은 주제 중 하나는, 백인 남성과 교제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이다.
쓰레기 같은 백인영어강사 문제야 제도적으로 당연히 해결해야할 일이니 논외로 두고,
이번엔 저 한국 여성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을 좀 이야기 해보려 한다.
몇년전 처음 이런 주제가 부각되었을 때는,
무분별하게 유입된 자질 없는 영어강사에 대한 비판인가 싶었는데,
결국 '영어 사용하는 백인남자라면 다리를 벌려주는'
불특정 한국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하룻밤 상대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들이야,
으슥한 새벽 어느 클럽을 가도 남녀불문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저런 천박한 부류의 남자들은 '픽업아티스트'라는 명목으로 한국에도 이미 존재한다.
게다가 원나잇 후기나 동영상을 유출하는 행태 역시,
일반인이 촬영한 수많은 동영상들이나 소위 '홈런'경험담을 올리는 카페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즉 백인강사들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쓰레기짓은 한국남성과 한국여성 사이에서도 이미 쉽게 발생하는 일들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인성과 신뢰와 사랑이 기반이 되어 관계를 시작했는지 의문인데,
'영어 사용하는 백인 남자라면'의 부분은,
'부유하고 학벌이 좋다면' /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기면'으로 얼마든지 치환이 가능하다.
남자의 경우엔 '몸매 쭉쭉빵빵하고 다소곳하니 어리다면'
/ '예쁜데 직업과 집안까지 좋다면'으로 얼마든지 끼워넣을 수 있겠다.
하지만 여자의 얼굴에 혹해 하루 식사로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날린 사례들에서
우리는 보통 남자가 아닌 '된장녀이자 보슬아치인' 여성들을 비난하기 일쑤다.
게다가 남성의 경우에도, 이미 백인여성에 대한 성적환상은 무수한 야동과 야설에 등장하는 서양여성들,
그리고 소위 '백마 탄다'라는 표현으로 익히 퍼져있지만 이는 비난 받지 않는다.
만약, 한국의 남성들이 대단한 민족주의자라 꼭 같은 국가와 민족끼리만 관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많은 섹스관광객들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유독 백인남성 옆에 붙어있는 젊은 한국여성에 대해 분노한다.
오히려 더 문제시 되어야하는,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골라오는 비인간적인 국제결혼이나
버려진 수많은 코피노들은 외면되어 담론조차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나를 더 벙찌게 만드는 것들은, 마치 여성을 국가에 속해있는 소유물인 양
백인남성에게 '뺏겼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의견들이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이 백인남성과 사귄다면, 우리는 서양여성들로부터 백인남성들을 빼앗아온 것인가?
아니다. 그 누구도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이 분노하는 것은, 마땅히 자신의 것을 빼았겼다는 박탈감 때문인데
남성들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 확고한 자리에 있으며, 오직 소유물처럼 오가는 것은 여성일 뿐이다.
그리고 이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단어는, '남자는 씨, 여자는 밭'이라는 문구이다.
이 일상적 언설은 여성의 난자도 씨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지만,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성별제도의 위력 앞에선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문구는 남성의 생산의 주체이며 인류의 본질이자 문명의 기원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때 여성은 움직이지 않고, 움직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를 규정짓는 것은 바로 '씨'가 되어,
남성 주체에 의해 성판매 여성이든 첫사랑의 연인이든 고정된 자리에 있게 된다.
백인 남성과 사귀는 여성은 오직 그들의 흰 피부색과 유창한 영어발음에만 현혹되었다고 비판받으며,
그들 개개인이 서로의 매력이나 개성에 끌려 인격적인 관계를 맺었을 거라는 가능성은 아예 차단된다.
그리고 이 비난은 대부분, '큰 사이즈' 운운하며 성적인 담론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며,
이들의 성적인 관계를 은유하며 '더럽다'거나 '걸레' '창녀'라는 표현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 논의에서 남성의 사이즈로 화제가 넘어가는걸 한두번 본게 아니라 이제는 지겹기까지 하다.
게다가 혹시 결혼으로 이르는 커플이 있더라도 이들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일축되며,
이 논의에서 여성은 마치 외국인처럼 철저하게 타자화한다.
이때 여성은 '학벌이 부족해도, 돈이 없어도, 키가 작아도, 못생겨도, 집이 없어도, 동양인의 사이즈여도'
'철저한 더치페이를 하며, 남성에게 의존적이지 않고, 애교가 많고,
다소곳하며 예쁜' 어머니 내지는 성녀의 이미지와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며 남자 사이즈나 밝히며
어떻게 좀 얻어먹을까 호시탐탐하는' 된장녀 내지는 창녀로 양분된다.
남성 판타지가 원하는 것은 성애화된 모성, 모성화된 성애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정숙하면서도 섹시한', '다소곳하면서도 독립적인'
'낮에는 현모양처, 밤에는 요부'의 이미지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때문에 성매매 여성에게 남성이 사고자 하는 것은 단지 그녀의 성이 아니라,
그녀의 배려, 대화, 보살핌, 그리고 '오빠' '당신이 최고'라는 칭찬과 격려이다.
이때 여성의 몸은 남성들 간 권력 관계의 표지이며 점령지로서,
백인남성과 한국여성의 교제는, 한국인이 백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종적인 컴플렉스,
학창시절부터 취업때까지 끊임 없이 강요받게 되는 영어컴플렉스를 은밀하게 건드려
'나보다 우월한 집단'에게 여성을 빼앗긴 느낌, 내 존재가 '더 큰 권력'에 짓눌린 느낌을 주게 되어
그토록 큰 분노를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왜 한국남성과 원나잇을 하면 '개인적인 일'이고, 백인남성과 원나잇을 하면 '한국의 수치'인가?
도덕성의 여부는 주체의 행위 그 자체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지,
그 상대방이 누군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원나잇이나 사랑 없는 관계가 그토록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들 외에도 비판해야 할 대상들이 수도 없이 많다.
게다가 사실, 한국사회는 여성을 단 한번도 제대로 '보호'하고 '존중'한 적이 없다.
한국의 남성 지배 세력은 언제나 '포주'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 조공으로 바쳤던 환향녀들을 '화냥년'으로 몰았고
1970년대 초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이 철수하려 하자
기지촌 성판매 여성 '제공'을 조건으로 주둔을 애원했으며, 달러를 위해 기생관광을 장려했다.
심지어 주한미군사령관부인과 부시 대통령의 부인을 납치, 감금하여 성폭행한다는
'태극기 "꼿"으며'라는 '반미에로' 영화를 만들고 즐긴다.
'군 위안부'여성들의 생애사 기록들은 전시 일본군에 의한 강간보다,
귀국 후 한국 남성에게 당했던 구타, 성폭력 학대가 더 큰 상처였음을 보고하고 있다.
이럴 때, 한국 남성과 한국 여성을 같은 '한국인'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가?
왜 평소에는 여성혐오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된장녀'라느니 '보슬아치'라느니 온갖 비난을 일삼으며
이래서 '한국 여자 말고, 다소곳한 일본여자나 우즈베키스탄 서양 미녀와 결혼을 해야지'운운하면서
'미모나 다소곳함'이 아닌 '영어'를 선택한 여성에게는 그렇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내뱉는 것인가?
왜 전자는 개인의 선택이자 표현의 자유이고, 후자는 한국남성을 등진 더러운 여자가 되는가?
왜 그렇지 않은 여자들이 더 많다는 의견은 매번 무시되는가?
영화 속 백인과 흑인의 사랑은 인종차별을 넘어선 아름다움인데,
한국여성과 백인남성은 무조건 보슬아치와 백인쓰레기의 만남인가?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정말 저 여성들을 걱정해서인가?
여성의 경험과 인식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남성의 생각이 곧 인간의 생각으로 간주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여성들에 의해 잠재적인 성폭력 범죄자 혹은 성매매 경험자로 취급받고 싶은 남성은 없을 것이다.
여성들 역시 잠재적 보슬아치 내지는 된장녀로 취급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남성 문화와 여성 문화가 동일하게 학습되고 상호 존중되어야
여성들은 남성과의 차이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남성 역시 개개인의 차이가 섬세하게 인정되어야 좀더 행복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한쪽의 목소리가 일방적이고 유일한 것일 때, 남녀 모두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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