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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생각

밥상머리 이야기 8. 새내기들의 김장김치.

DidISay 2012. 7. 8. 00:22

 

 

 

서울로의 쏠림 현상이 강한,  한국의 기형적인 대학구조에 따라
우리 과 역시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동기나 선후배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과 특성상, 정원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므로,
단과대 내에서 적어도 같은 학번인 동기들은 모두 얼굴을 알고 지냈을 정도였다.
때문에 우리 과의 분위기는 커다란 대학교라기 보다는 마치 중고등학교의 한 반의 느낌이 더 강했다.

과인원이 적다보니 전공수업도 많아야 2,3개의 반으로 개설되어서
수업을 들어가 보면 항상 아는 얼굴들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어 인사를 하며 들어가거나
아예 시간표를 짤 때 친한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의논 끝에  함께 완성하곤 했다.

내 친구들 역시 자취하는 동기들이 몇명 있었는데, 이런저런 고달픔이 많은 자취생의 특성상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마트나 분식집과 같은 생활 정보도 교환하고, 함께 장을 보러 다니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 자취생 동기들은 사이가 꽤 돈독한 편이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던 집은 연희동의 한 원룸이었다.
원룸이지만 창고와 작은 뒷마당이 있어서, 줄넘기를 할 수도 있었고
뒷마당에 접해있던 내 방에선 새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 웃으며 아침을 먹곤 했다.


큰 주택이 많은 연희동에는 할머니들이 마당에 작은 텃밭을 가꾸시기도 했는데 
그 주택들 보다 훨씬 고지대에 있었던 그 원룸에까지,
애호박덩쿨이 넘어오기도 해서, 그것을 따서 가끔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는 낭만이 있었다.

친구들도 그 집을 참 좋아했기 때문에,
내 마음 한 구석엔 그 집과 얽힌 크고 작은 추억들이 있다.


난 사람이 북적이는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학교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항상 살았었는데,
나와 비슷한 친구들도 집 주변에서 하숙을 해서 가끔 집에 놀러와 식사를 하곤 했었다.


이 때의 우린 크게 차린 건 없는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함께 식사를 하는 행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 마치 중고생처럼 꺄르르 웃고 신나했던 것 같다.
마치 우리만의 아지트가 생긴 것 같았달까.

 




그러던 중 바야흐로 김장철이 돌아왔는데,
보통 자취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반찬 중 하나는 김치다.
하다못해 라면 하나를 먹을 때도 빠지면 심심한 것이 이 김치니까.

 

그런데 김치를 사먹고, 식당에서 조금씩 퍼오고...를 하다 지친 선배 한명이
급기야 과방에서 김장을 하자며 제안했고!

이 기발한 안에 우리는 모두 동참하여..
어느 일요일 과방에서 고무장갑과 락앤락을 손에 들고 모였다!


1시간 전만 해도 구두에 미니스커트를 즐겨입고 신촌을 누비던 우리는
죄다 추리닝 차림에 질끈 묶은 똥머리로 변신했고'-'

남자선배들도 마치 농활을 온 것마냥 후줄근한 차림을 하고
게임용 컴퓨터와 기타와 부르스타가 잔뜩 널려져 있던 공간에
미리 절여놓았던, 고랭지 배추와 무를 날라왔다.

그렇게 우리의 김치 담그기는 야심차게 시작되었다.

생각해 보라. 20대초중반의 젊은 대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김장을 하는 모습을.
아마 할머니가 보셨다면, 불안불안 하시다면서 계속 지켜보셨을 것 같다 ㅎ


김치 담그는 법을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나 역시 직접 담궈본 적은 없었기에 각자의 어머니에게 열심히 비법을 알아온 상태로
다들 조금은 우왕좌왕 하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적이며 김장을 시작했다.


이날 굴이랑 보쌈도 사왔던 덕에,
우리의 김치 만들기는 풍성하고도 꽤 유쾌했고
집에서 엄마가 힘들게 만드시던 기억과는 조금 다르게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마치 놀이를 하듯이 만들 수 있었다.


양념을 모두 버무리고, 서로에게 남은 양념과 굴을 입에 집어넣어주면서
빨개진 입술이나 고춧가루 묻은 볼을 보며 웃던 그 날은
피곤하지만 참 맑았던 하루였다.


와 맛있는 냄새 난다며, 옆 과방에 구경오던 얼굴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이리 들어오라며 김치에 보쌈을 건내주던 정감 있는 풍경이
김장을 할 때 쯤이면, 기억 저편에서 말갛게 떠오르곤 한다.

 

해가 뉘엇뉘엇 사라질 무렵에, 빨갛게 노을지는 학교 정경을 뒤로 하고
커다란 통에 김장김치를 가득 담아 집으로 향했다.

우리들만의 힘으로 처음 김치를 완성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고
땀 흘려 일한 뒤,  저녁 바람이 볼에 와닿는 그 상쾌함이 기분 좋아서
또 한참을 재잘거리며 힘차게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해의 김장김치는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 보내주신 것보다 맛있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어머니가 고된 노동을 하는 날로 기억하던 김장김치 만들기를
즐겁고 어설펐던 추억으로 곱게 물들이게 할 수 있었다.

 

 

그때의 그 과방은 그 모습 그대로일까? 
함께 재잘재잘 수다 떨면서 김치를 버무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