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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알랭 드 보통

DidISay 2012. 7. 17. 04:32

 

 

 

발제문 작성하느라 다시 읽어본 불안.
몇 번을 읽어도 좋은 책.

이 책도 겉표지가 싫어서 떼어버리고 심플한 양장본 표지로만 보관 중.


 

 

 

 

 

불안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출판사

 

 

 

 

 ‘불안’의 개념

사회적 지위의 낮음에 의해 혹은 자신의 지위에 만족할 경우 현 상태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유래되는 불안. 
                     현대에 들어서 사회적 지위는 주로 경제적 성취에 의해 좌우된다.

 

 

 

 

1.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무엇인가?

 

 

- 1 :사랑결핍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사랑이 성적인 사랑이며 두 번째는 사회가 자신을 인정해주고 관심 가져주며 중요하게 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첫 번째 사랑 못지않게 두 번째 사랑을 갈구하는 것일까? 이상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 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만이 자신을 올바로 규정하고 스스로를 공정하게 평가하며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2: 속물근성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한다. 사람은 타인의 칭찬이나 관심이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거나 그 본심이 의심스러울 때조차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아래의 실험결과는 우리가 얼마나 타인(실험에서는 컴퓨터에게 조차)의 관심과 사랑에 무력한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학생들은 의식적으로 아첨하는 컴퓨터의 평가가 의미가 없다고 느꼈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칭찬을 받아들이고 아첨하는 컴퓨터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관계의 본심』 p.37)


 

속물이란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동일하게 바라보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사람의 내면을 보려하지 않고 외적인 조건에 따라서 사랑(관심, 존경)을 표시하려 하기 때문에 사랑을 얻기를 원하는 우리로서는 사회적 지위를 비롯한 외관에 관심하게 되는 것이고 이로써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이 생기고 가중되는 것이다.

속물근성은 속물들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과 열등감에 기인하며 사회적 분위기에 좌우되는 집단적인 증세이다.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은 오직 우리와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란다!”

 

 

- 3: 기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활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면서 물질적 진보에 대한 기대는 점증된다. 18세기부터 일어난 일련의 정치적 혁명은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보편화 시켰다. 아울러 과학적 사고방식에 의해 그 존재에 대한 믿음에 의문이 제기된 내세에 대한 사고방식의 변화는 유일한 현재의 생에 대한 기대를 절실한 것으로 만들었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이 이러한 기대의 용광로에 끊임없이 풀무질을 해대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절대적 수준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준거집단의 범위가 확대되어 상대적 빈곤은 커진다. 요컨대 “실제의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외려 늘어났다” 토크빌의 “중세의 궁핍한 계급은 근대의 후손이 결코 누리지 못할 정신적 평온을 누렸다. 사회는 불평등 했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라는 평등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윌리엄 제임스의 방정식(자존심=이룬 것/내세운 것)도, 루소의 “날카롭고 기묘하지만 섬뜩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는 목소리로” 갈파한 원시인의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많이 기대하고 기대한다. 이 때문에 기대하는 것과 현재의 모습간의 골은 깊어지고 그 골만큼 불안은 더해간다.

 

 

- 4: 능력주의

 

이전에는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는 이념으로 가난한 사람도 사회의 기능적 측면에서 가난하더라도 나름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보다 중요한 점은 가난이나 낮은 지위에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소박하고 경건한 삶에 더 후한 도덕적 평가가 내려진다.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 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는 18세기부터 최근까지 만연한 의식은 가난이나 낮은 지위의 상태라도 그들의 물질적 결핍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위로를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농업의 생산성 향상과 산업의 발전은 생산에 수요가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생산을 부추기도록 만드는 경제의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부의 소비는 생산을 촉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소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므로 빈자보다는 부자가 더 쓸모 있다는 의식이 생겨난다. 한편 세습적 신분체계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된다. 개인의 능력은 그의 아버지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탁월한 경제적 성취와 사회적 지위에 있다면 사회는 그에게 그러한 지위에 걸 맞는 존경을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더 나아가 게으름과 부도덕은 가난하고 낮은 지위와 쌍을 이루게 되며 그래야만 마땅한 것이 된다.(스펜서의 사회진화론). 이처럼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 5: 불확실성

 

능력을 발휘할 개개인의 재능은 마치 자기의 재능이 아닌 양 들쭉날쭉하다. 또한 매사가 인과관계의 고리에 매달려 있지 않은 듯이 일은 우연에 좌우되기도 한다. 한편 고용주의 이익도 세계경제의 흐름에 따라서 춤을 추고 이런 전반적인 불확실성을 부추기는 요인들은 불안을 가중한다. 우리의 요구와 세상의 불확실한 조건 사이의 불균형은 지위에 대한 불안을 끈질기게 들쑤신다.

 

 

 

 

 

2.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불안의 해법 1: 철학

 

철학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무용하다고 본다거나 사람들의 비난이나 질책이 무조건 근거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인의 판단을 철학의 이성적 규준에 비추어 판단함으로써 이에 휘둘리기 보다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흔히 적용하는 변덕스럽고 비합리적인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위계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었다.”(『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p.242)

 

한편 우리 주위의 가치체계의 비뚤어진 곳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여 쇼펜하우어처럼 지적인 염세주의를 선택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하지만 그 철학자는 다음의 말도 잊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 불안의 해법 2: 예술

 

 

 

예술이 과연 우리 삶에 도움을 주기는 할까? 예술이 없어도 사람의 존재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예술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불안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써 찾을 수 도 있겠다.

 

“예술의 역사는 지위의 체계에 대한 도전, 풍자나 분노가 서려 있기도 하고, 서정적이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기도 한 도전으로 가득하다”

 

예술은 미천한 사람으로부터 성스러움을 읽어내고 높은 지위와 우아함을 가장하는 이의 우매함과 속물근성을 폭로 한다. 그림은 위대한 영웅만을 그리지 않는다. 민초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림으로써 그들의 위대함을 웅변한다. 그림은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인간의 실패가 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가 겪는 불안은 좀 더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극은 우리로 하여금 실패와 좌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 준다. 따라서 비극은 실패나 패배에 대한 단순화된 관점을 버리게 하며 거기에 담긴 교훈을 받아들인 세계에서는 실패의 결과가 우리를 그렇게 심하게 짓누르지는 않을 것이다. 한 컷의 풍자화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감정의 진폭은 깊고도 넓다. 유머는 높은 지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유용한 도구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처럼 예술은 삶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주면서 우리가 겪는 불안이 그렇게 치명적이지도 않고 저들의 삶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다고 말해 줌으로써 우리의 불안을 위무해 준다.

 

 

 

 

 

 

- 불안의 해법 3: 정치

 

정치란 사회적 지위체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전의 사회적 지위체계를 결정했던 요인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거나 전복을 시도하는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참정권이 그렇고 노예의 존재에 의식도 그러하다. 현대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경제적 성취로 판단되며 - 자본주의 - 능력주의는 이러한 경제적 성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 더 나아가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고 그 소유자에게 있어 부는 미덕의 증거가 된다. 지위와 관련된 근대 이상에 대한 저항, 물질적 축적이 우리 삶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불안에 대한 정치적 접근의 시발점이다. 경제력을 우리 삶을 규정하는 잣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지배계층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이다.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마르크스)

 

그렇다면 물질적 축적이 우리 삶을 규정하는 잣대라는 점에 대해서 이해하려 하고 의문을 품어 봄으로써 지위의 불안을 극복하거나 적어도 외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삶을 규정할 수 있는 잣대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으며 새로운 잣대를 찾아내거나 만들어 냄으로써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사회적 위계를 결정짓는 요인들의 중요성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관념의 보편화, 이것을 우리는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할 수도, 패러다임으로 지칭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워지고 사회적 위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하던지 영향력은 상대적일 뿐이라는 점은 절대적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정치가 가능하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 불안의 해법 4: 기독교

 

죽음은 지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그것이 누구도 범접하거나 파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가장 민주적인 물질인 먼지로 화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이런 궁극의 결과 - 소멸 - 를 예상하고 현실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지위에 대한 불안에 대해 위로한다.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더 진정한 더 의미 있는 길의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죽음은 진정한 삶의 나침반이다. 한편 질투심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도 지위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고 나약해지고 겸손해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고만고만한 키재기로 스스로 불안을 자초함으로써 열패감과 좌절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다. 폐허의 모습에서 시간의 무한성을 본다면 광대한 풍경에서는 공간의 절대성을 본다. 우리의 유한성은 분명해진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유한성을 확인하는 또 하나 방법일 수 있으며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는 공동체에서는 지위에 따른 불안이 싹트기 어려울 것이다.

종교는 인간에 대해서 세속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또 하나, 영적지위도 감안한다. 종교는 위계의 개념을 없앤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윤리적이고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재규정한다.

 

저자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에서 현대인들이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지 않고 대형마트로 향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비록 종교가 그 권위를 잃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끼리 교회에 가는 것이 산더미처럼 물건이 쌓여 있는 마트에 가서 소비자로써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견을 제출한다. 종교를 버리고 찾은 그 대안으로써 대형마트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대형마트에 가서 주말시간을 보내는 것은 경제주체인 소비자로서 자신의 불안을 자초하며 사회적 위계를 재확인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나아가 이런 불안을 더욱 촉진하고 내면화하는 자기 파괴 행위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는 현대의 지위에 대한 이상과는 다른 삶의 가치에 주목한다. 신의 존재나 유형과는 무관하게 종교는 타인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긍지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칭송 그리고 자신을 성찰하는 거룩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이상과는 다른 삶의 지표를 제공한다.

 

 

 

 

 

- 불안의 해법 5: 보헤미아

 

 

세속적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도 불안의 요인에 저항하는 해법중 하나이다. 이는 종교의 세속적 버전처럼 보인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우리가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이상을 품고 지위를 정할 것인지 누구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하는지는 선택이 가능하다. 삶을 위계 지울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다양성을 외면하고 맹목적으로 현대의 이상인 경제적 가치라는 틀에 자신을 옭아맴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불안하고 부자연스럽게 만들 이유는 없다.

 

 

 

 

 

 

 

3. 생각 나누며 토의하기.

 

 

1. 저자는 지위 불안의 원인과 해법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불안한가요? 원인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불안하다면 어떤 해법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자의 견해와는 다른 해법을 갖고 계십니까?
(또한 저자는 경제적 성취에 따른 지위의 불안임에도 경제적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 원인: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 해법: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2. 저자는 불안의 역기능과 순기능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불안이라는 감정의 가치를 평가할 때 아래의 두 견해 중 어느 쪽 견해에 보다 공감하시나요?

 

사회에서 제시하는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하여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인다. 더구나 높은 지위는 얻기가 어려우며 그것을 유지하기는 더욱 어렵다. 불안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p.8~9)

 

지위에 대한 갈망은 다른 모든 욕구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있다. 이것은 자신의 재능을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자극하며, 남들보다 나아지도록 고무하며, 남에게 해를 주는 괴팍한 행동을 못하게 억제하며, 공동의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사회구성원들을 결합한다.(p.9~10)
 


 

 

3. 저자가 제시하는 불안에 대한 철학적 해법중 지적인 염세주의를 따르자면 하나의 딜레마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한편에선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반대편에선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정몽주의 모)라는 시 구절이 이런 딜레마의 양극단에 서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판단을 하시겠습니까?

 

“도덕적이고 고결한 태도로, 합리성과 진실한 마음을 갖추고, 관습이나 허영이나 격식 같은 상류사회의 소도구 없이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만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렇게 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멍청하고 허약하고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샹포르(p.166~167)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날 일이 줄어들수록 더 낫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p.167)
 
 

 

 

 

 

 

4. 능력주의에 따라 경제적 능력에 도덕적 가치와 정당성이 부여되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구를 잘하는 것과 라면을 맛있게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듯이 경제적 능력과 도덕적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구도 못하는 녀석들이 라면이라고 해서 잘 만들겠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p.135)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면서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었다.……이제 부가 품성의 온당한 지표로 여겨질 수도 있다. 부자는 단지 더 부유할 뿐 아니라, 어 낫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11)

 

“만약 그렇다면 - 부유층에는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하거나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얼굴들이 묻혀 있어야 할 터인데, 16살의 내 머리로는 왠지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p.129)
 


하지만 그저 무관하다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경제적 능력에 도덕적 가치와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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