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상처 떠나보내기-이승욱 본문

소리내어 책 읽기

상처 떠나보내기-이승욱

DidISay 2012. 7. 18. 23:44

 

 

 

이 책은 이승욱 님이 진행한 다섯명의 개인 상담 과정을 엮어놓은 책이다.

 

기존의 상담사례집들은 보통 상담과정만을 기술적으로 적어놓는 경우가 많았고,
상담사례를 통해 상담의 예를 보여주거나, 절차를 설명하는 식의 책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주로 내담자의 감정에 집중하거나,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저서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상담전공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전문가용 사례집이라기 보다는,
책 속의 내담자들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대중 서적에 가깝다.
때문에 기본적인 상담 용어들도 모두 각주를 달아서, 친절하게 표시해 놓은 '-'

 

또한 기존의 대중 상담 서적과는 달리,
상담이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상담자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해놓아서 더 인간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따귀 맞은 영혼' 이후에 간만에 즐겁게 읽은 심리서적이었다.
근래에 쏟아져나오는 심리학 서적들 대부분이
많은 책들이 고통의 원인을 한쪽에 치우쳐 설명하고 있거나, 
실용서처럼 온갖 메뉴얼을 통해 단정적인 해결법을 제시하는 가벼운 책들이 대부분이라,
짜증이 나던 참에 간만에 오아시스와 같은 책이었다.

 

읽으면서 딱 나와 들어맞는다 싶은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들이 있어서
어쩐지 마음이 덜컹거릴 때가 있었다.

 

타인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들의 고통을 살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시간이 되었다.

 

 

 

상대가 내 뜻대로 해주지 않을 때, 사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실망감 때문에 좌절한다. 그래서 좌절감을 느끼게 만든 그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다......인간은 이해되어야 할 존재이지 설명되어야 할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이해받고 싶은 욕망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경계성 성격장애는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해서 생겨난다고 말이다. 성격장애 아동의 어머니들은 자녀와의 최초 관계에서 절대권력자인 자신의 사랑에 대한 태도를 아이에게 강요한다. 자신의 감정과 똑같은 사이클과 진폭의 감정을 느끼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결국 아이는 자신의 주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엄마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게 됨으로써 자신이 엄마에게 100퍼센트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아니라 엄마를 100퍼센트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내가 찾은 답은 그 순간에도 나는 오르막을 오르려 애쓰던 그 남학생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방어했다는 것이다. 만약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그가 거절한다면 나는 얼마나 무안하고 불쾌해질까. 나의 호의를 그가 거북해 한다면 나는 또 얼마나 나의 경솔함을 자책할 것인가. 이런 이기적인 두려움이 그 자리에서 나를 바보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준 그 남학생은 휠체어 탄 학생을 장애인이라는 편견 없이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음으로 도와주었다. 마치 길 잃은 할머니에게 친절히 길을 가르쳐 주듯이 말이다. 나는 그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내가 얼마나 깊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고 한참 동안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천박함이란 무엇인가, 이기적인 사람이다. 배려심을 갖춘 천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채영 씨는 남편의 천박함과 이기심에도 진저리를 치지만 그것보다 더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좋게 말하면 남편의 무덤덤함이었다. 이런 남편들을 나쁘게 말하면 정서와 감정기능의 저능아라 할 만하다. 공감이 불가능한 사람들. 그러나 공감 없는 관계란 끔찍하지 않은가.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이나 형제라고 해도 서로 공감하지 못하면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전락한다. 결혼이 오직 정서적 연대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부부관계에서 공감이란 일상의 관계를 풍성하게 이어주는 일용할 양식이다.

 

 

결혼을 통해 구원받기를 원하는 여자들은 고유한 한 남자,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편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자격,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면 된다. 고난에 빠진 사람에겐 구원받는 것이 중요하지 그 구원자가 예수든, 부처든, 마호메트든 그런 건 상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혼은 어떤 경우에도 구원이 아니다. 한 사람은 구원 받고 상대방은 그저 구원자의 역할만 한다면 그것은 어느 쪽을 위해서도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없다. 결혼은 존엄한 두 인간이 사랑과 존중으로 같이 성장해 나가기로 약속하고 실천해나가는 노력의 과정이다. 자기 삶을 더 편하고 더 기름지게 만들기 위해, 고통을 잘라내기 위해 결혼을 택하고 그에 걸맞은 대상을 물색해 같이 살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지옥으로의 구원이라는 엄정한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에겐 완전한 수용과 전적인 인정이 필요하다. 인간을 그것을 놓지 못한다. 끊임없이 인정을 갈구한다.

 

 

"보통 우리는 '화'를 상대를 다치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죠. 화는 불이니까 누군가를 향해 발사하면 그가 화상을 입잖아요. 그렇지 않고 화를 담고 있으면 내 속이 화상을 입겠죠. 하지만 불을 잘 쓰면 아주 좋은 도구가 되는 것처럼 화, 분노라는 감정도 잘 처리하면 아주 좋은 에너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감정이 그렇습니다만, 누구도 다치지 않게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났다면 먼저 '화가 났다'고 말을 하십시오. 정말 화를 내지 마시고요. 그것이 화를 다루는 첫걸음입니다."
화를 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화나게 한 이유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화를 내면 자신이 화난 이유가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는 불과 같아서 누군가로부터 화가 쏟아지면 감정의 방패를 사용해서 그 화를 방어하기에 급급해진다. 당연히 화를 내는 이유도 그 방어벽에 막혀 전달되지 못한다. 화의 뜨거움만큼 화난 이유가 강력하게 전달될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그 뜨거움만큼 상대의 방어벽도 강력해진다. 그래서 화난 사람의 좌절도 커지고 방어하는 이의 마음도 단단하게 굳어버린다.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는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로부터도 말 걸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가난이다. 가난을 가장 소중한 재산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신은 주저함 없이 그를 참된 아들로 삼을 것이다.

 

 

언젠가 티벳 승려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다가 결정에 관한 간결하지만 아주 중요한 지혜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결정 앞에서 망설이는 젊은 제자에게 스승이 일러준 가르침이었다.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면 그 중 더 어려운 길을 택하라" ...더 어려운 길을 따랐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의 경험을 거듭하면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이 더 옳은 결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쉬운 길에 비해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가슴 깊이 새겨지는 교훈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길이 주는 열매는 충분하다. 후회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미래를 실패로부터 구원한다. 그런 후회의 경험은 성찰로 승화된다. 하지만 상습적인 후회는 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소리내어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활자 잔혹극-루시 랜들  (4) 2012.07.22
한 권의 책-최성일  (0) 2012.07.20
불안-알랭 드 보통  (2) 2012.07.17
루시퍼 이펙트-필립 짐바르도  (0) 2012.07.15
도망자 이치도-성석제  (0) 201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