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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한 권의 책-최성일

DidISay 2012. 7. 20. 07:00

 

 

 

 

 최근에 읽었던 서평집 중 하나.

 


서평집의 매력은 지은이가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올곧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책 역시 그런 점에서  훌륭한 서평집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나쁜 서평집은, 이른바 명작의 반열에 뽑히는 책 혹은 베스트셀러라 해서
자신의 실제 느낌을 무시하고 그저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글들인데
이 책은 작가의 주관이 매우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고
느낌이나 생각이 아주 솔직하게 나와 있으면서도, 개인적인 편견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시도가 엿보여서 좋았다.

 

 

 

 

이 작품은 국문학과를 졸업해 '출판저널'과 '도서신문'을 거쳐,
전문 시평가로 활동해던 최성일씨의 시평 모음집이다.

2011년 뇌졸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생애의 반 이상을 책과 함께 한 셈인데
한 출판사와의 우정의 힘으로, 그의 시평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 이 책이다.

 

그의 실제 성격은 꼼꼼하고 이성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었을 것 같은데,
손을 씻고서야 책을 만지고, 자를 대듯 금을 그었다는 일화 외에도

문체 자체가 마치 과학서적들처럼 꽤 건조하고 딱딱하며 직설적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쓴 책 중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가 있다)

 

 

 

 

때문에 감성적이고 호사스러운 문장의 향연은 찾아 보기 힘들고,

논리적이고 꼼꼼하게 책을 살펴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책의 작은 오류들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있고,
부적절하게 사용된 단어나 문장 역시 날카롭게 지적한다.

 

분석해놓은 책 자체도 문학작품은 거의 찾기 힘들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인상을 더해준다.

 

문장 하나하나가 말하려는 바가 정확하고,
애매모호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서평이다.

 

 

 

 

 

이 글의 장점 중 하나는, 작가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배경지식이 아주 폭넓어서

한 책을 통해 이끌어내는 논의가 꽤 깊다는 것이다.

 

책에 따른 서평의 길이나 다루고 있는 내용의 깊이를 보면

작가의 관심사나 세계관을 쉽게 추측해낼 수 있었다.


또한 도서출판계에 오래 몸담았던 작가의 경험에 의해,
책과 관련된 뒷얘기를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당황스러웠을 때는,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백지상태로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을 읽다가 작가의 사망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최성일 씨의 부인이 써내려간 이 글은 소박하고 담백한 문장이지만,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고인이 가지고 있었던 책에 대한 진지함이 엿보여서 인상적이었다.

 

근래에 읽었던 서문 중 가장 마음 한구석에 남았던 글이었기에
이 자리에 덧붙여 본다.

 

 

 

 

 

 

머리말을 대신하여

 

'한 권의 책'은 남편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처럼 미리 저자의 머리말이 준비되었더라면 좋을 걸 그랬다. 남편은 이 책이 묶일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훌쩍 떠나 버렸다. 그래서 이 책의 머리말을 부득불 그의 아내가 쓰게 되었다. 여느 책의 머리말에 보이는 책의 성격이나 감사의 인사말을 적는 대신, 나는 출판평론가라는 남편의 직업에서 파생되는 몇 가지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에게 끝내 고백하지 못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토로하면서 머리말을 갈음하고자 한다.

 

  남편 글의 첫 독자로서 누리던 호사(?)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돼 유감이다. 워낙 꼼꼼한 성격의 남편이어서 교정까지 마친 남편의 원고는 흠잡을 만한 구석이 거의 없었다. 간혹 내가 그의 글에서 눈에 띄는 조사나 어미 등의 오탈자를 잡아내면 그는 글을 보는 눈썰미가 제법이라고 나를 추켜세우곤 했다.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에는 남편의 친절한 보충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 경우 대개 일차 텍스트의 형식에 기댄 그의 글쓰기 전략이 숨어 있게 마련이어서 그는 글이 어렵다는 독자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글의 내용에 따라 곁들여진 내 느낌도 조금씩 달랐다. "읽을 만한데요", "재미있어요", "와, 이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

 

  가정주부인 내가 그나마 책을 가까이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남편 덕택이다.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자유기고가를 선호했다, 남편 직업상 우리 집은 곧 남편의 직장이기도 해서 나는 집안을 조용한 분위기로 만들려고 애썼다. 그는 외출 건수를 줄여서라도 집에 남기를 고집할 정도로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외출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남편의 모습이 눈에 아직 선하다. "옥아, 나 왔어. 야, 집이 최고다. 집이 제일 좋다니까!" 피로와 안도감이 묻어난 그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쓰기 위한 독서를 하던 남편 곁에서 나는 그가 권장하는 감동적인 도서의 책장을 넘기던 나날들이 참으로 값지고 달콤한 시절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날이 갈수록 남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헛헛한 마음에 버금가는 빈복해진 정신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독서교육에 회의적인 남편은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아버지는 아니었다.연령에 맞는 양서에 관한 정보는 제공해도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자식이 독서를 좋아하면 부모로서 마음이야 좋겠지만, 자식이 책 말고 다른 것에 취미를 붙이면 그 방면으로 거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로 보았다. 그는 자녀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독서교육에 기대기보다는 부모가 먼저 책을 읽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책 읽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정한다." 우리 집 두 아이를 봐도 남편의 이 말은 전적으로 옳다고 본다.

 

  그는 취미삼아 하던 일이 돈벌이가 되어 가장으로서 부양의 의무까지 떠안을 수 있는 글쓰기라는 직업에 만족한 사람이다. 매체와 주체를 가려서 청탁 원고의 수락 여부를 결정하기는 해도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고마운 마음으로 기껍게 받아들였다. 감이 와 닿는 원고는 일필휘지로 단숨에 완성시켰지만, 성이 차지 않은 글에는 끼니를 잊고 매달리는 바람에 아내의 핀잔을 받아야 했다. 그는 다 쓴 원고를 서너번 정도 교정을 본 후 송고했다. 오탈자를 바로 잡고 불필요한 중복되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서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어휘를 골라 문장을 다듬었다. 짧은 글에서 단어까지 중복되면 글에 재미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그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보았다. 남편은 자기 글에 나르시시즘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야, 이걸 누가 썼냐? 정말 잘 썼다. 누가 뭐래도 자기가 쓴 글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니까." 천하에 부러울 게 없는 남편의 이 발언이 실은 산통에 비유되는 글쓰기의 고통에서 벗어난 이의 해방감을 달리 표현한 것임을 나는 잘 안다. 남편은 다 읽은 원고를 A4 파일에 끼워 보관했다. 

 

  그는 책 말고 다른 물욕은 거의 없는, 검소하고 소박한 사람이었다. 여러 출판사가 책을 보내 준 것에 그는 늘 고마워했으며, 책들을 일주일 또는 한 달 간격으로 정리하여 노트에 책 제목과 권수 그리고 가격을 적어 넣었다. 책을 얻거나 빌리기보다는 필요한 책은 꼭 사서 보았으며, 지인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 또한 아끼지 않았다. 책에 대한 애착이 강했지만 책의 임자는 따로 있다면서 소중한 책을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내주곤 했다. 시리즈 도서와 잡지 간행물의 경우 이가 빠진 부분은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헌책방을 자주 순례하기도 했다. "책을 볼 때는 적어도 손을 씻고 봐야 한다." 남편의 이 주문은 그의 깔끔한 성격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문제다. 지저분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은 책에 대한 결례라 할 수 있다. 나와 아이들은 이걸 잘 지키지 못했다. 어떤 책장에는 음식물 부스러기가 보관돼 있다. 남편은 책에 밑줄을 그을 때도 자를 재듯 반듯하게 쳤다. 그는 집안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책을 정리하여 분류하는 우리 집 '사서'이기도 했다. 평생 곁에 책을 끼고 살아서 그는 무료할 짬이 거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쓰러지기 마지막 몇 분 전 화장실 맞은 편에 쌓아둔 책 더미를 어루만지는 것으로 사실상 책과 작별했다.

 

 병원 생활 5개월 열흘 동안 꼼짝없이 누워 지내는 바람에 그의 육체적 자유는 박탈당했으며, 뇌의 전두엽 부위가 암세포에 점령당한 탓에 인지력은 급속하게 떨어져 식구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제 이름 석자를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때 그는 아내가 가져다 준 신문과 자신이 저술한 책과 옛 일기장을 손에 쥐기는 했지만, 그 행위는 별다른 의미가 되어 주지 못했다. 지력을 상실한 이후 남편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과정에 그의 의지는 관여할 바가 못 됐다. 생체실험용처럼 약물을 주렁주렁 달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그의 육체는 학대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나는 '존엄한 죽음'과 '자유죽음' 같은 '인간적'(?) 소멸 방식에 천착하기도 했다.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남편이 세상을 버리기 전까지 날마다 그를 보낼 준비를 하면서 살았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또한 남편에게 미안함으로 남는다. 5개월 넘는 병원 생활 중에 그는 이미 인간사와 세상사에 초연해 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자기연민의 감상주의에 빠지는 법 없이 육체적 고통을 참고 견뎌 준 남편이 나는 한없이 고맙고 미덥다. 그것은 나와 아이들에게 정서적 충격을 덜어 주려는 남편의 배려가 아니고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와병 중의 남편에게 마음 속으로 나는 딱 하나의 소원만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여보, 마지막 순간에 혼자 가지 마라." 남편은 그 순간에 내가 곁에 있어 줘서 외롭지 않았을까? 동행할 수 없는 그 길에서 나는 그가 가는 것을 조금도 지체시키지 못했다. 침대 주위에 남은 것은 눈물과 통곡뿐이었다.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의 외로움을 덜어 보려고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려 했다는 것을. 이것 역시 그에게 미안한 일이다.

 

  남편은 책의 머리말마다 도움 받은 분들을 호명하여 감사와 고마움의 인사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나 역시 남편의 방식대로 남편의 병실을 찾아 주시거나, 빈소에 조문을 오시거나, 조의금을 보내 주신 분들의 존함을 일일이 나열하며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들과 남편 또는, 우리 가족과 맺은 인연 귀히 여기겠습니다. 남편은 적선지사에 필유여경이라는 고언을 입에 자주 담았습니다. 이 말에 깃든 뜻에 따라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선함'을 먼저 생각하고 자연과 사람에게 해가 덜 되는 쪽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라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으나 이는 생략하겠다. 나는 '한 권의 책'이 마흔 다섯 해를 애쓰며 살다간 남편에게 오롯이 바쳐지길 바란다. (남편의 책이되 남편의 것이 아닌 마냥, 마치 내가 저자라도 되는 양 남편에게 헌정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 점, 독자 여러분은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바란다.)

 

  여보, 우리는 1991년 3월 인하대 5남 소강당에서 만났지요. 3학년 복학생과 2학년 재학생의 만남이었습니다. '선배'에서 '형'과 '후배오빠'로 숱하게 오가다가 결국 당신은 아이들의 '아빠'로 낙착을 보았습니다. 아들 녀석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살아 줘서 고맙습니다. 까딱했더라면 녀석을 유복자로 키울 뻔 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을 잃은 제 슬픔이 덜어진 것은 아닙니다만, 하늘이 그때 당신을 데려가지 않고 8년의 시간을 주신 것은 당신에게 책을 쓰게 하느라고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여러 권의 책으로 당신이 이 땅에 살다간 흔적을 남겨 줘서 고맙습니다.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나누지 못한 점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2011년 7월 2일 당신의 별세가 우리의 관계를 원점으로 돌린 것은 아닐 테지요. 저는 당신과 저와의 결실인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리란 것을 믿습니다. 저와 당신은 여기보다 더 좋은 데도 여기보다 더 나쁜 데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육신이 한 줌 재로 변해도 당신의 육체에서 이탈한 영적 에너지가 광활한 우주를 떠돌다가 결국 제 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믿는 까닭입니다. 인간사 모든 관계가 회자정리라 하지만, 저는 당신과 정리재회가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은 갔지만, 저는 당신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2011년 9월

故 최성일의 아내 신순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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