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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걸어도 걸어도(歩いても 歩いても, Still Walking, 2008)

DidISay 2012. 7. 27. 05:15

 

 

가정이란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니다. 우리를 이해해 주는 곳이다
-크리스티앙 모르겐스턴

 

 

 

 

 

걸어도 걸어도의 첫 장면은, 어머니와 딸의 요리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다소 색감이 빠진듯한 화면에서 소박하고 평범한 여름의 일상이 그려지고 있다. 

 

오늘은 10년전 물에 빠진 한 아이를 구하고 사망한 이 집의 장남 준페이의 제사를 위해 온 식구가 모이는 날로

이 영화는 이 가족의 1박2일의 일상을 집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그대로 보여준다.

 

 

 

제사날이긴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라 그런지 슬픈 기색보다는

오랜만에 모이는 식구들을 위해 요리하는 모습들이 더 부각되어

일상적이고 소박한 행복이 스며나오는듯한 느낌을 준다.

 

나무도마에 칼이 리드미컬하게 부딪히는 정겨운 소리.

썰어지는 무와 당근들. 식구들이 합심해 옥수수 튀김 만들기,

메론과 초밥, 성게로 이어지는 푸짐한 음식들은 거창하지 않지만 따뜻한 식탁이다.

 

이들 가족은 그리 대단한 구석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며,

특별히 성격이 모나다거나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천사표도 아닌

문을 열면 주변 어딘가에서 마주칠 수 있을듯한 이웃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 소박하고 따뜻한 가족영화겠구나. 라고 안심하는 순간,

서서히 보이는 균열들은 우리들을 어딘지 거북하고 아슬아슬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아주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을 찍은 사진을 보고 반해,  그 지역을 여행간 적이 었다.

깨끗한 물결과 티없이 맑은 하늘은 매우 청량하게 느껴졌고, 소박해보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오밀조밀한 집들은 어딘지 푸근하고 한없이 나를 포용해줄 것 같은 그런 근거 없는 꿈을 품게 했다.

 

잔뜩 기대감에 차서 도착한 그곳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실망스러웠다.

사진과 똑같이 맑은 물결 주변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잔해가 남아있었고

소박한 사람들은 동시에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와 성미 급한 운전, 과한 바가지로 날 놀라게했다.

 

결국 난 이 진짜 이 고장을 보려고 여행을 한건지,

내가 원했던 어떤 특정 이미지의 환상에 끌렸던건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나에게 이 지역은 멀찍이 관찰할 때만 이상적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공간.

가까이 가서 생활화가 되었을 때, 조금은 불편하고 거북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난 저 때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는데,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때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단란함'과 '무조건적인 포용', '웃음이 넘치는 따뜻함'과

'가족의 간섭' '명절의 피곤함' '귀찮음과 무관심함' '온갖 상처의 근거지' 등으로 말할 수 있는 불편한 실제의 괴리를

1박 2일의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무심한 듯 쓰윽 한켠을 내보이며 보여주기 때문이다.

 

타인과 마주할 때,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행복하고 안정적인 사람임을 가장하긴 쉽지만

나의 어릴 적 모습과 온갖 약점을 다 알고 있는 가족 앞에서는 이 경계는 속절 없이 허물어지고

이로 인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을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그리고 이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면, 가족은 어쩐지 귀찮고 꺼려지는 존재지만

완전히 벗어난다거나 무신경해질 수도 없는

무릎이나 팔꿈치 어딘가에 난 쓰라린 상처정도가 될 수도 있다.

 

 

 

 

 

어긋나는 관계들.

 

 

1. 형의 제사 때문에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향하는 차남 료타는

내려가는 길에서부터 언제 돌아올지를 걱정하는데

아내가 이미 자고 간다고 말했다고 하자,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당일날 올라오려고 한다.

 

그 이유는 의사이길 바랬던 자신의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어주기는커녕

미술복원사가 되어, 애 딸린 과부와 결혼을 한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불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현재는 실직 상태인 자신의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 부자의 대화는 잘 섞이지 못하고 계속 엇나가는 느낌이며,

죽어버린 장남과 엇나가버린 차남에 의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는

료타의 의붓아들에게도 은근히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내비쳐 갈등을 빚는다.

 

 

 

 

 

2. 이 영화에서 딸 지나미는 어머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나누며,

모든 가족들을 포용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녀가 이번 제사 때 방문한 목적은, 죽은 오빠의 방을 허물고

집을 개조해 자신이 들어와 살다가 집을 물려받기 위해서이다.

 

그녀의 남편도 살가운 듯이 굴지만 이는 점수를 따기위한 빈 말일 뿐이며

집안의 대화에는 별 관심없이 한쪽 방에서 계속 낮잠만 잔다.

 

또한 저녁도 먹지 않고 당일로 내려가는 와중에도,

그의 남편은 자신이 파는 차 홍보를 하여 실적을 올리려고 애쓰고

그녀 역시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살뜰하게 챙겨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을 물려받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부모님과의 독립된 생활공간을 원하는 딸이 어머니는 별로 탐탁치 않다.

 

사실 어머니의 속마음은 차남인 료타가 이 집에 살면서 죽은 준페이의 자리를 채워주는 것인데,

료타와 그의 가족은 결코 그럴 생각이 없어, 이 세 사람의 희망은 아쉬움만 남긴채 채워지질 못한다.

 

 

 

 

3. 이 영화에서 부모님은 계속 료타에게 맏형의 자리를 이어갈 것을 은근히 강요한다.

 

죽은 형과 료타의 추억을 계속해서 혼동해서 이야기하며,

그의 직업도, 그의 부인도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순간순간마다 내비친다. 

 

그의 어머니에게 료타는 아직도 어린 아이 같아서,

치과를 꼭 가보라고 잔소리를 한다거나 파자마와 수건 등을 손수 챙겨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료타는 가족에게 꽤 무심한 모습을 보이며

전화를 통해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한다.

 

그는 집 목욕탕의 타일이 떨어져나간 것을 보고도, 빈말로라도 고쳐주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으며

어머니를 차에 태워준다거나, 아버지와 축구장을 가는 일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4. 어머니가 궁금해했던 스모선수 이름을 료타는 돌아가는 버스에서 기억해 낸다.

어머니도 뒤늦게 이름을 기억해내지만, 이들은 서로 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늘 한발씩 늦네'라고 한마디 하고 지나갈 뿐.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놀러갔다 왔는지 말하지 않으며,

이들은 가족이라는 틀에 묶여있긴 하지만,

사소하거나 일상적인 기억들을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상처주거나 무심하게 넘기기

 

 

1. 료타의 아버지는, 슈퍼봉투를 들고다니는 것도 꺼릴만큼

자존심이 강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전직의사이다.

 

그는 아들이 죽은 날에도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볼만큼

프로의식이 있는 의사였으나 현재는 녹내장에 다리까지 불편해 은퇴한지 오래다.

 

현재 그의 위치는 도움을 청하는 이웃도 치료하지 못하고,

구급대원들에게는 무시받는 그냥 '노인네'일 뿐이다. 

 

게다가 무뚝뚝하고 독단적인 성격탓에 가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온가족이 어울린 자리에도 식사를 할 때 외엔 거의 진료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이 집은 내가 일해서 지은집인데 왜 할머니 집이라고 하냐'고 말할만큼 가부장적이지만  

막상 식구들은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그의 의견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도 형의 죽음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해,

나비를 형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애틋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습을 료타는 모두 목격하지만,

부모님을 위로한다거나 도움을 주려 하지 않고 그저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2. 료타의 부인 유카리는 죽은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아츠시)을 데리고 총각이었던 료타와 결혼했다.

그녀는 료타보다 부모님의 감정을 더 챙기고 다정하게 어울리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식구들도 표면적으로는 그녀에게 살갑고 친절하지만,

깊이 이 가족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그녀를 완전한 식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료타의 가족이 도착하기 전 어머니는 전남편이 죽은지 3년 정도만에 재혼했다면서 유카리를 험담하며,

아버지는 재혼한 형수를 언급하는 도중에 '애딸린 과부라 재혼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무신경하게 내뱉는다

 

또한 유카리에게 자신의 기모노를 바리바리 싸주는 와중에도,
'우리가 젊었을적엔 여자는 술은 받되 잔은 비우는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면서 

저녁 식사 때 술을 마신 그녀를 은근히 비난한다.

 
게다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 아츠시군과 갈등이 생길거라며 아이를 낳지 말 것을 종용하는데,

이는 사실 지금에라도 그녀와 아들이 헤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손자 손녀는 애칭으로 부르면서도, 그녀와 그녀의 아들에게는 꼭 존칭을 붙이는 것

이미 장성한 아들은 잠옷까지 챙겨줄만큼 살뜰하게 굴지만,

막상 의붓손자의 것은 챙기지 않는 행동들도 그녀에게 모두 상처로 돌아온다.



 

 

 

 

3. 어머니는 준페이가 죽은지 10년이 넘은 상황에도 계속해서 형을 그리워하며,

료타 역시 마치 아이 다루듯이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사랑은 타인에 대한 배타심으로 표현되는데,

부모님은 어린 학생(요시오)을 구하고 대신 죽은 준페이에 대해서

'자기 자식도 아닌데 무리해서 살릴 필요 없었다'라고 말하며 속상해한다.

 

'살아서 죄송하다며' 10년째 제사때마다 찾아오는 요시오군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취업도 제대로 못하고 뚱뚱하기만 하다며 뒤에서 험담을 하고

이런 형편없는 아이 때문에 우리 준페이가 희생했다며 슬퍼한다.

 

또한 '요시오군이 우릴 보고 괴로워하는 것 같다 . 불쌍하니 이제 그만 오게 하자'라는 료타의 말에 

'그래서 오게 하는 거야. 겨우 10년 가지고 잊으면 곤란하지. 그 아이 때문에 우리 준페이가 죽은건데.. 

증오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괴로움이 더 큰거야. 그러니 그 아이에게 1년에 한번정도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는 않아.
그러니까 내년, 내후년에도 오게 만들거야.'라는 대답을

차분하게 내뱉는 어머니의 말은 등을 서늘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4. 이들 가족의 어딘지 조각이 맞지 않는 어색한 상황은,

    딸이 돌아간 뒤 저녁 대화에서 절정을 맺는다.

중재자 역활을 했던 딸이 사라지자, 핸드폰을 보며 방관적인 태도만 취하는 료타 앞에서

부모님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칼을 겨누며 공격한다.

 

'섬세하지 않은건 당신. 콘서트에 데려갔더니 자더라'


' 동네의원이 뭘 대단한가. 아들이 위독한데 곁에 있지도 않았다'

 '당신은 남자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난 일을 안해서 모른다 이제는 당신도 안하지만'

이런 대화는 일상적이면서도, 가족들이 서로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아픔과 불편함을 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또한  부부 간의 추억이 담긴 노래이자 자주 부르는 곡으로,

어머니는 가요곡 '걸어도 걸어도'를 꼽는데

사실 이건 아버지가 과거 불륜녀에게 불러주던 노래이다.

 




 


제사가 끝난 다음날 돌아가는 길.

 

아들을 배웅하고 돌아가는 부모님들은 '설에 보겠군'이라며 대화를 나누지만,

자식들은 '설엔 안와도 되겠어 1년에 한번만 가자. 다음엔 저녁 먹지 말고 가자'라며

늘어났을 몸무게만 걱정한다. 

 

 

3년 뒤에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이 부부에게는 차와 아이가 새로 생겼다.

료타는 끝까지 부모님의 희망을 들어드리지 못했고,

이 약속들은 그냥 그대로 잊혀져 간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나비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주지만

료타는 누가 자신에게 이 이야기를 말해줬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했던 행동 그대로

더운 여름 비석에 물을 뿌려주며 시원하라고 말을 건낸다.

 

아마 그도 언젠가는 그의 아이들에게 배가 부르지만 더 먹으라며 계속 음식을 권하거나

쓸데 없는 비닐봉지를 집안 한구석에 보관해 핀잔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족과의 모든 추억과 기쁨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고,

항상 서로를 이해해주지도 못한다.

오히려 때로는 불편하고 어긋나기만 하는 관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깊은 곳에 자리잡아

좋든 싫든 내 존재의 일부분을 형성해준다.

 

 

아프지만 뜯어낼 수 없는 상처처럼.

그렇게 안고 살아가다보면 또 한구석 아물어 돋은 새살을 볼 수 있으리라.

 

 

 

 

 

덧)

 

1. 비록 우리는 누군가가 죽으면 답할 수 없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 편지를 쓰거나 말을 건내며 애도한다.

아츠시가 남몰래 죽은 친아버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듯이.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이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만든 작품이라 한다.

덕분에 꽤 현실적인 모습의 캐릭터가 완성된. '-'

 

영화를 통해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하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2. 옥수수튀김 해먹어야지! 하는 탄성을 만드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