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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스 극장의 연인-자닌 테송

DidISay 2012. 9. 1. 05:00

 

 

 

얼마전 연애와 관련된 오디오파일을 우연하게 청취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정직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초반의 관계를 실패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강사는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너무 처음부터 오픈하지 말라고.

어느정도 관계가 진전된 뒤 상대방이 그것을 감당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을 때 말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나 역시 과거에. 아니 사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 연인의 자리에 그 사람을 두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민감하거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속깊은 이야기를 터놓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야 내 자신이 오롯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나 애정이 솟게 되는 튼튼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설사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내 자신의 만족감 때문일지라도

나에겐 그런 과정이 거의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했기에.

 

막상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은 그 말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혹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는지 전혀 모르고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로 듣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힘들게 하지만 태연을 가장하며.

전기포트의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억지로 끓여낼 때처럼

몸 안의 모든 힘을 쥐어짜 이야기 했을 때

가장 좋은 것은 상대방의 조용한 침묵과 다정한 눈길.

가장 안좋은 것은 별것도 아닌 일을 왜 어렵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가장 안좋은 반응을 한 상대에게 난 서서히 멀어져갔다.

 

 

 

 

 

가장 힘들었던 긴 연애에서

내가 그를 냉정하게 떨쳐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이 처음 꺼냈던 순간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던.

그 따뜻함의 기억, 완벽한 위로의 시간 때문이었다.

 

 

어떤 작가는 사랑에 빠진 여자는 눈이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나의 눈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저 속깊은 대화가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이 책은 비룡소에서 나온 청소년 문학선의 일부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이라 아이들에게 가끔 복사해서 읽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얇지만 아름답고. 하지만 한없이 가볍지는 않아서 참 사랑스럽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문체가 좀 붕 뜬 느낌이긴 하지만) 청소년들만 읽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랄까.

작품자체의 문체가 빼어나다기 보다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연상되는 이미지나 느낌이 참 매력적이다.

 

이 책의 젊은 한쌍의 남녀는 '뤽스극장'에서 매주 수요일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날.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첫만남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만남을 무언의 약속을 한 것처럼, 계속 이어간다.

 

'뤽스'는 라틴어로 빛을 의미하는데, 어두컴컴한 암흑과 희미한 스크린의 빛번짐이 떠오르는 그 공간에서

이들은 '빛나는 상대방'을 발견하고 점점 끌리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관에 대한 묘사가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학창시절에 다녔던 동네의 한물간. 하지만 주말이면 뻔질나게 오갔었던.

커다란 에어컨이 앞뒤로 있었던 낡은 개인 영화관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했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공간이었다.

 

(이 문장들은 개인적으로 나직하게 소리를 내서 읽으면 더 좋았다.)

 

  뤽스 극장은 누가 봐도 완전히 한물간 영화관이다. 못 보고 지나치기 일쑤인 데다 빨갛게 칠한 정문 때문에 중국 음식점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뤽스 극장의 사장이자 영화 표 판매원이며 안내원이자 영사 기사인 피오 씨 역시 그가 당당히 '제7 예술의 전당'이라고 부르는 이 영화관 못지않게 촌스럽다.

  평소 뤽스 극장에서는 피오 씨가 '저급 영화'라고 무시하는 상업 영화들을 상영한다. 그러나 매주 수요일만은 '진정한 영화'의 영광을 기리는 데 하루를 바친다. 수요일이면 피오 씨는 나비넥타이를 맨다. 손님들에게 표를 내줄 때 피오 씨의 눈에서는 빛이 난다. 열에 들뜬 피오 씨는 혹시 늦게 입장하는 관객이라도 있으면, 못마땅해 하며 영사기를 돌리러 부지런히 달려간다.

  수요일은 '시네 클럽'이 열리는 날이다. 몇 년 간의 끈질긴 청원과 지역 주민들의 성원 덕에 피오 씨는 마침내 파리의 옛 영화관을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일 주일에 단 하루뿐이기는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수요일 저녁 여섯 시와 아홉 시 두 번에 걸쳐 피오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위대한 작품들을 틀어 준다. 그 시간이면 뤽스 극장의 하나뿐인 상영관은 추억을 만나러 온 나이 지긋한 어른들과 낡아 빠진 벨벳 의자에 기댄채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젊은이들로 절반쯤 채워진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트하우스 모모나 상상마당이 근처에 생기기 전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관은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였다.

 

언제나 후회 없는. 좋은 작품들을 상영해준 이 공간은 내 20대 초반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친구들과 연인과 내 지인들과 함께 방문했던 그곳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에 있는 많은 영화관들이

스치고 마음 속에 머물고. 어둠 속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나도 저 두 사람처럼. 오래된 극장의 세번째 줄 일곱번째 좌석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지는.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 혹은 약점을

상대방에게 언젠가는 밝혀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서로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무서워하고, 한참이나 망설이고, 두려워한다.

 

 

 

여자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기억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이 사실을 머릿 속에 새기는 데 꼬박 이 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기적은 없어. 기적을 믿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상황은 전혀 심각하지 않아요. 마티외 투르니에 씨. 단지 내가 절망한 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내일 다섯 시면 막은 내린다. 할머니의 말처럼 '연극은 끝난다.'. 더 이상은 그 얘기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자는 마음 속에서 뭔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여자는 이를 앙 다물고, 입을 뒤틀어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런 거야. 마음이 부서진다는 게...또다시 시작된 거야. 난 내 마음이 이미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부서져 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지금도 이렇게 계속 부서지고 있는걸. 이 상태가 얼마나 더 오래 계속 될까? 정말 알고 싶어. 어쨌든 이건 끔찍할 정도로 괴로운 일이야'

 

 

두 사람이 갈등하고 상처를 억누르며, 서로에게 조금씩 가까워져 가는 모습이

얼마나 공감이 가던지.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이 소설의 한가지 부차적인 즐거움은, 많은 영화와 음악이 인용되어 있어서 다채로운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배경이 오래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기도 하고, 인물들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작품들을 연상하면서 좀더 풍성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작품 전체에 있는 재즈음악과 많은 고전영화들은 사실 꽤 오래전의 것들이라,

청소년들보다는 오히려 부모님 세대에 더 적합한 느낌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으면서, 이 영화에 언급되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이 작품을 읽는 다른 독자들의 마음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를 희망해본다.

 

 

 

 

 

 

 

덧) 이 작품의 끝에는 작은 반전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