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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강은경

DidISay 2012. 9. 4. 02:54

 

 

 

 

 

'영국의 시골농장에서 보낸 천국 같은 날들'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에세이집.

친구를 따라 예정에 없이 헌책방에 갔다가 책구경을 하는 사이에 무작정 골라 온 책.

 

회색 바탕의 표지에 붉은 색으로 가지런히 놓은 글자들.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 라는 제목이 참 좋았다.

난 외로울 때 누구에게. 어디로. 소풍.을 가야할까.

 

화려한 표지 사이에서 혼자 오뚝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회색의 작은 책이 눈에 띄어 집어들게 되었다.

껍질을 벗겨내듯 회색의 표지 한꺼풀을 벗겨내자

마치 일기장을 훔쳐보듯 담담하게 쓰여진 글과 사진, 그리고 소박한 그림들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24살의 대학졸업을 앞두었던 작가가 어느날 런던으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젊음이라고 하면 떠올라야 하는 것은 열정, 희망, 꿈이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런 단어들과 자신의 삶을 연결짓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그녀도 이제 겨우 '뭘 싫어하고 뭘 못하는지 알' 것 같은 나이일 뿐이었다.

이쪽저쪽에도 당당하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

 

목적의식도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떠난 런던.

다행히 그녀는 일이 그럭저럭 잘 풀려 계속 패션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었고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뒤엔 나름의 성공적인 커리어도 갖게 된다.

 

하지만 이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활활 날 준비를 해야할 나이의 그녀는

여전히 우울하고, 정신과 물질의 결핍과 욕구불만에 항상 시달려야 했다.

 

계속해서 닳고 닳아가고, 자신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모해서 빼앗기는 그 느낌은

나 역시 사회인이 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도 간간히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갔고 그렇게 초반부를 읽었을 때 난 이 책을 손에 쥐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마저 읽어 내려간 이 책의 중후반부는

도시생활에 지쳐버린 그녀가 제2의 탈출구로 찾았던 브라이튼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확히는 땅을 사랑해 자신이 찾아낸 농지에서 계속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여농부 투스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투숙하고 경작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에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았던 과정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이다.

 

 이 책은 크게 거창한 이야기가 담겨 있거나 유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책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도시의 여자가 농장에 머물면서 겪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자신의 노트 한귀퉁이에 낙서와 글을 조금씩 끄적인 것을 읽는 느낌에 더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생명이 움트는 봄을 맞이하는 이 경이적인 순간에 나에게 잠시 일어난 별난 사건이라면, 겨우내 썩어가는 사과의 색에 반해 버렸다는 것이다. 농장 뒤편에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다듬고 선별한 후에 그 나머지 버릴 것을 모아두는 장소가 있다. 그중 버려진 사과 상자 안에 있던 상한 사과들을 본 순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과의 색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그 색들의 스펙트럼이 내뿜는 요염함이 마치 독버섯처럼 치명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도시에 살 때는 상한 채소나 과일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니 평소 볼 기회가 없었을 뿐더러, 있었다 해도 이렇게까지 아름답다고 생각할 만큼의 여유도 없던 것 같다. 싱싱할 때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러움'을 지니던 것이 가지로부터 생명의 공급이 끊기고, 가진 생명을 다해서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는 모든 과정은 생명의 순환고리 안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조차도 관능적이며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 썩어가는 사과가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농장의 삶을 경험해본적 없는 보통의 도시녀이기 때문에

새삼 흙의 색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양배추의 색감이 이렇게 다채로운 것인지.

정말 유기농 토마토 주스에서는 오렌지맛이 나는건지

지은이가 탄성을 내뱉을 때마다 함께 궁금하고 벅차고 기뻤다.

 

 

보통 귀농.이라고 하면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한국의 농촌.이라고 한다면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는데,

그건 내가 접한 대부분의 한국 농촌의 이미지는

일제나 산업화 과정에서 수탈당하고 끝없이 생채기 되어 가는 모습.

고향의 모습을 상실한 씁쓸하고 애달픈 모습이기 때문이다.

 

만약 풍요롭고 햇빛과 땅의 에너지가 듬뿍 담긴 정겨운 전원의 모습이 그립다면

이 책은 분명 그 욕구를 충분히 채워줄 것이라 믿는다.

게다가 농사짓는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는 여주인 투스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도시라면 기계적인 과정 혹은 임금으로 계산되는 시간당 육체노동으로만 생각될

때로는 고통스러운 농사짓기의 과정이 고된 삶의 몸부림이 아닌,

내가 약함을 인식시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과정이었으니까.

 

슬쩍 피하거나 진통제로 무마시키지 않고 고통을 오롯이 느끼는 그 과정은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그녀를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농장에서 만나는 여행객들, 그녀처럼 농장에서 지내는 우퍼들,

그리고 야채를 팔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한 시장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나 정겹고 감정에 솔직하던지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했다.

그곳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적당히 숨기고 과장하거나 적당히 비겁한 도시인의 모습이

촌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골의 겨울밤에 대한 문구.

도시의 밤은 저녁 6시나 새벽 3시나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시골의 밤은 어둡고. 칠흑 같고 진하다.

 

경주에서는 아주 커다란 보름달이 떴을 때

그 달빛으로만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달빛기행'이란 행사가 있었는데

읽는 내내 그때 생각이 났다.

 

 

 

나긴 겨울밤 무얼하며 보낼꼬?

 

 

 

  농장의 겨울밤은 길고도 춥다.

 

 

  긴 밤과 오들거리는 추위 둘 다 지극히 영국적이지만, 그중에서도 오후 세 시만 넘으면 어둑해져 오는 겨울밤은 모든 사람을 예술가나 철학가로 만들기에 충분히 길고도 충만히 우울하다. 이미 몇 해나 영국에서 겨울을 보낸 나에게, 크리스마스 쇼핑으로 정신을 쏙 빼놓는 런던이 아닌 이 조그마한 시골의 길고도 고요한 겨울밤이 특별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곳에서 처음 밤과 어둠을 정식으로 소개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농장의 밭에는 도시의 공장처럼 전등이 달려 있지도 않고 달 수도 없으며 달 필요도 없다. 그래서 자연히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산다. 해가 뜨면 일어나서 일하고 해가 떨어지면 어두워져서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겨울에는 고작해야 하루에 다섯 시간 일하기가 힘들고 그마저도 폭설이 오기라도 하면 어쩔 수 없이 쉬는 날이다. 눈이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오면 농장 사람들은 그야말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적인 겨울휴가 계획을 세우거나 짧은 여행을 다녀오거나 한다. 농장을 잠시나마 떠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일년 중 유일하게 이때뿐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에서 떨어져 지내는 이곳에서 겨울 동안 내가 가장 그러웠던 것은 벼르고 벼르던 겨울 시즌의 세일쇼핑도 아니고 단골 커피집의 진하고 고소한 커피 한 잔이 아닌, 밝은 도시의 밤이었다. 밤에도 낮처럼 밝은 도시의 밤. 밤은 원래 어둡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던 사람처럼 나는 처음 이 농장에서 어두운 밤이 새삼스러웠다. 어둠에 대한 나의 반사적 개념들은 무서운 것, 피해야 하는 것, 밝혀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무섭고, 혼자서 잔뜩 긴장하며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오려고 애썼었다. 그마저도 한겨울이 되니 오후 세 시 반만 넘어도 어둑해지는 통에, 아쉬운 대로 자동차 불빛을 따라 위험한 도로를 돌고 돌아서 밤길을 걷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점점 눈이 어둠에 적응해가고 이따금 칠흙같이 어두운 밤의 숲도 걷게 되면서 도시 불빛에 길들여진 내 눈에도 어느새 하나둘 별이 보이고, 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름달 밤은 반달의 밤보다 배로 밝다는 것과 그믐의 밤은 공간감이 없이 어지러울 정도로 어두운 밤인 것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밤이면 온전히 나의 감각을 최대한 예민하게 사용해 한걸음씩 발이 기억하는 대로 길을 걷는다. 시골의 밤은 어둠과 친구가 되는 순간 거로등 뒤에 감춰져 있던, 놀랍고도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숲 속에 바스락 소리가 토끼가 내는 것인지도 알아차리게 되고, 내가 밟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발걸음이 땅과 마주쳐 만드는 리듬과 숨소리가 더해져 만들어지는 음악은 나와 자연의 앙상블이 된다. 항상 그곡에 있었으나 어두워지기 전에는 볼 수 없던 것들을 느끼는 순간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어둠과 친구가 되고 나니 긴긴 밤 메밀묵이나 찹쌀떡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나름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을 즐길 만한 여유가 생겼다. 한기만 겨우 가신 방에서 이불을 목까지 폭 뒤집어쓰고 루이보스 티를 홀짝거리면서, 내가 어쩌다가 이곳까지 흘러와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스스로 신기해 하다가,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는 몸을 주무르다가, 이내 스르륵 단잠에 들기도 한다.

 

  벽난로 앞에 바싹 앉아서 타는 장작들을 물끄러미 보다 금세 온몸이 노곤해지면서 반쯤 잠긴 눈을 하고 발바닥에 불을 쪼이다 보면 장작이 타는 냄새와 온기, 가끔 튀는 불꽃에 놀라기도 하지만 불이 사그러들 때까지 그 앞을 떠날 수 없게 된다.

 

  날씨가 너무 추워지거나 혼자 놀기 조금 지겨워지면 이따금 저녁 시간에 나란히 옷을 몇 겹씩 껴입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이런 때는 주로 투스가 미리 관심 있는 프로그램을 기억해뒀다가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어서 미리 낮 동안 과일과 계피 등 향신료를 넣어 끓여놓은 뜨거운 와인을 마시며 그 프로그램이 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함께 보곤 했다.

 

 

 

 

 

 

 

장의 밤은 도시의 낮보다 아름답다.

 

 

 

 

  나는 투스에게 종종 농장의 생활이 암환자의 요양생활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사실은 진심이었다. 생사가 달린 심각한 진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정당화되는 대안적 삶의 형태 중 하나인 요양이란 것은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 머물며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고, 여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 이상적으로 보이는 삶을 이렇게 살게 되었으니 참 호사스럽다. 어쩌면 나도 자각 증상도 없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고, 나를 사랑하는 어떤 힘이 나를 살리고자 이곳으로 찾아 들어오게 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했다. 자연주의자도, 채식주의자도, 대안적 삶을 갈구하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밤이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두들 각자의 트레일러로 돌아간다. 삼삼오오 다시 작은 트레일러에 모이거나,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가려진 도시의 조각 하늘이 아닌 검은 융단 같은 이곳의 밤은 77가지 검은색의 우리 표현을 다 붙일 만큼 변화무쌍해서 아름답다. 칠흙 같지만 그 어둠에 익숙해지고 나면 비로소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그 표현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밤은 어두운 게 정상인데 우리는 밤에도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빛을 쓰니까 밤도 낮처럼 살아야 한다. 끝이 없고 쉼이 없는 저녁의 이유치고는 좀 슬프다. 밤에도 공부해야 하고 일해야 하고, 필요하면 열심을 내야 한다. 하지만 농장에서는 밤에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다.

 

 대지를 밝힐 수 있는 건 해밖에 없고 우리는 해를 좀 더 길게 잡아둘 수 없다. 순리에 맞게 사는 건 자연스럽게 사는 거다. 종일 컴퓨터와 인터넷을 끼고 사는 나로서는 굉장한 결단이 필요했지만, 농장에서 사는 동안 심지어 도시에서보다 더 많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치우침이나 기형적인 형태가 아닌 참 균형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 균형은 해가 지고 나서의 저녁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자를 캐던 마지막 날이었다. 감자들 중에 못생긴 놈들로만 고르고 장작을 가져다 사과나무들 사이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호일로 싼 감자알을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모닥불 주위로 소파를 죄다 끌고 밖으로 나와 둥글게 놓고 눕거나 기대고 앉아 감자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며 게임을 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밤은 깊어지고 서로의 얼굴은 불 가까이 올떄만 보았다. 과수원 가운데 생겨난 응접실은 사과나무 커튼에 하늘의 별과 모닥불이 조명이고, 산들한 바람도 알아서 저절로 불어온다.

 

  검게 구워진 감자에 버터를 얹고 소금을 솔솔 뿌려  먹는다. 검댕이 묻었는지 소금을 얼마나 뿌렸는지도 알 수 없으나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한 알 먹고 두 알 먹고....결국 배가 터지도록 감자를 ㅁ거었다. 너무 배가 불러 잠들지도 못해, 담요와 베개를 가져와 다시 소파에 들어누워 사그라드는 모닥불과 쏟아질 듯한 별들과 함께 새벽이 다 가도록, 배가 다 꺼지도록 그렇게 밤을 과수원의 파수꾼처럼,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퉁퉁 부은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다시 재회했다. 아침에 되어서야 그 밤에 우리가 먹었던 엄청난 양의 감자와 소금과 버터와 검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파 주위로는 한입 베어 물고 버린 사과가 몇 알씩 굴러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던 사과나무에서 익지 않은 풋사과를 많이도 따먹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냈다. 그 시간이 너무 아름다웠던 건지 그 밤이 너무 어두웠던 건지, 오히려 그 기억이 저릿저릿할 만큼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그 기억만으로도 가끔 힘든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도시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운가.

  농장의 밤은 낮과 같이 아름답다.

 

 

 

 

 

 

예전에 제주도에서는 보름달에 다사롭고 신비한 기운이 있다고 믿어서

보름달이 뜬 해변가의 모래를 싸서 배에 올려놓으면

불임이 고쳐지고 임신을 한다고 믿었단다.

 

흐뭇하고 흐릿하고 희미한 빛.

하지만 익숙해지면 한없이 다정한 빛.

 

 

 

나 역시 걸어다닐 때조차 흙을 밟을 기회가 많지 않고,

먹고 자고 씻는 모든 삶의 순간을 땅에 두 발을 붙이는 것이 아닌

공중에 떠있는 한 공간에서 보내고 있다.

 

내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충전했듯이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길.

 

  

오늘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에 뜬 달도 참 크고 밝다.

여름방학이면 할아버지 댁 한옥에 배를 깔고 누워 바라보았던,

모기향 섞인 달빛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