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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기 소년-유은실

DidISay 2012. 9. 4. 04:34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반에는 항상 겉도는 여자아이가 한명  있었다. 지혜라고 하는.

 

중간에 전학을 왔던 난 지혜와 2년의 초등학교 과정을 한반에서 함께 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나에게 가까운 대상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멀찍이 지켜보는 대상에 가까웠다.

 

 

당시 새로운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치마바람 센 학부모도 제법 있었던 우리 동네는

반대로 아직 개발이 덜 된. 비닐로 울타리를 친 회벽칠한 낡은 집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었고

때문에 아이들의 입성도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지혜는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아이였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그 아이의 이름을 발음하면, 다른 아이들의 2배에 가까운 몸집 외에도

거의 1년 내내 볼 수 있었던 낡아 빛바랜 검붉은 초라한 잠바차림이 먼저 떠올랐다.

헝클어져있던 머리 위엔 흔한 예쁜 머리핀조차 없었고,

표정은 아이들에게 눌려 항상 어딘지 움츠려 들어 있었다.

 

지혜를 대놓고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당시 왕따라는 말조차 없었던 그 시절에도

분명히 지혜는 우리반 여자아이들의 그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못했다.

 

전학생이었던 나 역시 전학온지 삼 일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었고,

어딘지 안되었다는 마음. 하지만 내가 속한 그룹에 그 아이를 차마 끼어줄 수는 없는 마음.

그 사이의 부담감과 죄책감에서 언제나 지혜를 마주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공간에서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짝을 지정해서 뽑을 때마다 홀로 남던. 

언제나 조롱 섞인 한마디와 시선을 받아야했던 뒷모습을.

지혜를 거냥한 여자아이들의 은밀한 수군거림과 외면을.

그 모든 순간들에서.

 

 

 

 

우리는  체육시간마다 피구를 하곤 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지혜가 공을 매우 잘 잡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아이들이 뽑는 순위에서 그 아이를 가장 끝에 남게 하던.

이 과정이 너무 잔인해서 날 힘들게 만들던 그 순간에서

지혜는 더이상 가장 끝에 남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체육시간 뿐이었고,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아이들은 철저한 무관심과 소외 속으로 지혜를 혼자 남겨뒀다.

그리고 피구에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책임이 지혜에게로 돌아가 날선 눈빛을 보내곤 했는데

난 그것에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나서서 항변해줄만한 용기가 없어 침묵하곤 했다.

 

지혜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말을 걸고, 과자를 먹을 때 끼어주고

함께 도시락을 먹자고 불러주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반에서 이름이 불리는 일이 거의 없던 지혜는 내가 말을 걸 때마다,

항상 외로운 짐승의 눈. 깊고 간절한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봐서

또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어느날 난 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고,

반 아이들은 나에게 종이를 돌려 짧은 말을 남기거나 개인적인 편지를 써주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편지 하나를 뜯어보았을 때 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정확한 문장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지혜의 삐뚤한 글씨로 채워진 

종이의 글은 '고마워.'라는 말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 편지를 봤을 때 밀려들었던 감정은

단지 부끄러움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후회과 자책감이 뒤섞인. 내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동안 지혜를 외면하면서. 머뭇거리면서.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애써 잊고 있던 모든 돌덩이들이

내 마음 속에 피가 나도록 툭툭 던져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쏟아져나왔던. 이유를 알지 못했던 눈물을 흘린 뒤에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 편지를 본 이후로 계속.

그리고 지금도 때때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2년 내내 고수했던. 

차가운 혹은 비겁하게 그저 바라봤던 모습에도 불구하고

자격 없는 나에게 오히려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해줬던 그 아이가.

다시 보고 싶다.

 

지혜야 미안해.

 

 

 

 

 

 

 

 

 

창비에서 나온 단편소설집. 총 9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읽을수록 황홀하고 진하고. 아릿한 이야기들.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그런 책이다.

 

 

잠깐 쉬어가는 시간에 읽어주려고 산 청소년용책인데

오늘은 수업 중에 '보리 방구 조수택'이라는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갑자기 저 깊은 곳에서 밀어올라오듯이 

주르륵 눈물이 흘러나와서 순간. 울먹일 뻔 했다.

 

급하게 기침을 해서 마음을 감췄지만 

다 읽은 뒤에도 계속 저릿저릿하게 아리던...

 

 

 

 

 

  칠판 앞에는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다 나와 있었어. 하나 같이 멋쩍은 표정이었지. 지나가는 사람이 보았다면 아마 단체로 벌 서는 줄 알았을 거야.

  "이번에 정하면 겨울 방학까지 앉는 거다. 시작."

  선생님은 마치 달리기 출발 신호를 하는 것처럼 손을 쭉 뻗으며 말씀하셨어. 나는 이게 몇 번째 짝 바꾸긴지 마음속으로 세고 있었지. 삼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바꿨으니까 삼, 사, 오, 육, 칠, 구, 십, 십일, 십이, 그래, 여름 방학 빼고 아홉 번째였어.

  "우리 선생님은 짝을 이상하게 바꿔. 저번에는 여자들보고 맘에 드는 남자 옆에 앉으라고 하더니 말이야."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투덜거렸어.

  남자아이들은 계속 쭈뼜거렸지. 서로 다른 사람 뒤에 숨으려고만 했어. 나는 누가 와서 내 옆에 앉을 까 궁금했어. 짝 바꾸기가 끝날 무렵까지 혼자 앉아 있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어. 나는 키가 작아서 첫 줄에 앉아 있었거든. 특별히 나를 좋아하기 전에는 아무도 맨 앞줄에 앉으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았어.

  "자, 누가 먼저 나올래? 어서 시작하자."

  선생님이 재촉하시는데도 남자아이들은 계속 머뭇거리고만 있었어. 자꾸 칠판 쪽으로 물러서기만 했지.

  그때 앞으로 나온 아이가 하나 있었어. 수택이였지. 여자들은 모두 바짝 긴장한 얼굴이었어. 아무도 개하고는 짝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

  수택이는 석간신문을 배달하는 아이였어. 머리는 자주 감지 않아서 기름이 흐르는 데다가 비듬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어. 손톱 밑은 새까맣고, 잠바 소맷부리는 때에 절어 번질대고 몸에서는 꼭 시궁창 냄새 같은 게 났어. 게다가 하루에 몇 번씩 방귀를 뀌는데 냄새가 아주 지독했어. 아이들은 수택이가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했어.

  수택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였어. 그러고는 우리 반에서 제일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쓴 아이 옆에 앉았지. 나는 그만 숨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어. 그게 바로 나였거든.

  앞에 나와 있는 남자애들이 킥킥대기 시작했어.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애들은 그제야 안심을 하는 눈치였고, 한숨을 후유 내쉬기도 하고 속닥속닥 귀엣말로 주고받는 거야.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어.

  "보리 방구 조수택이 내 짝이 되다니....."

  수택이 냄새보다 아이들이 킥킥대는 소리가 더 참기 힘들었지.

  나는 바로 짝을 바꿔 달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전에 수택이 짝이 된 아이들은 그렇게 해서 바꿨거든. 선생님은 물론 들어주시지 않았지. 번번이 수택이가 바꿔 달라고 한 거였어. 짝이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면 선생님한테 가서 이렇게 말했거든.

  "선생님, 맨 뒷자리로 보내 주세요."

  "왜?"

  "혼자 있으면 가방 걸기도 편하고 팔도 안 걸려서 좋거든요."

  "그렇다고 자꾸 혼자 앉으면 어떡해?"

  "그래도 짝꿍 팔에 걸려서 공부를 못하겠어요. 뒤로 갈래요."

  선생님은 가라, 가지 마라 말씀하시지 않았어. 입을 다물고 가만히 계셨지. 그러면 수택이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짐을 챙겨서 늘 앉던 자리로 돌아갔어. 교실 맨 뒤에 혼자 앉는 자리는 거의 수택이 차지였지.

  그래도 나는 대놓고 싫어하는 눈치를 보일 수가 없었어. 일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착한 어린이 상'을 탔거든. 아이들이 투표해서 뽑아 준 거였지. 내가 그 상을 타고 싶어서 착하게 군 건 아니었어. 하지만 그 상을 탄 다음부턴 착한 어린이답게 행동하고 싶었어. 애들은 수택이를 보리 방구라고 놀리고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해찌만 막상 짝을 바꾸겠다고 하면 나를 좋지 않게 볼 것만 같았어.

  "쟤가 무슨 착한 어린이야?"

하고 수군대면서 말이야.

  나는 수택이 냄새를 한 번 견뎌 보기로 마음먹었어. 내가 조금 전에 보리방구라고 말했던가? 그래, 보리 방구는 수택이 별명이었어. 이름보다 별명이 더 유명했지.

  "우리 반 조수택 있잖아."

  "너네 반 조수택이 누군데?"

  "보리 방구 말이야"

  "아, 보리 방구."

  이럴 정도였으니까. 수택이는 별명대로 늘 보리밥을 먹었어. 쌀밥 속에 보리가 드문드문 섞인 그런 보리밥 말고 쌀보다 보리가 더 많이 들어간 거뭇거뭇한 보리밥.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보온 도시락 통에서 따뜻한 밥을 꺼내 먹었어. 우리 반에서 보온 도시락 통이 없는 사람은 수택이뿐이었지. 수택이는 고개를 숙이고 차갑게 식은 양은 도시락 통을 열었어. 그러고는 풀풀 날리는 보리밥을 꺼내 먹었지. 반찬도 고춧가루가 군데군데 묻어 있는 허연 깍두기 한 가지뿐이었어.

  다른 애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밥을 먹었어. 서로 반찬도 바꿔 먹고 말이야. 하지만 수택이는 늘 혼자였어.

  수택이는 보리밥이랑 허연 깍두기 반찬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야. 늘 뚜껑으로 도시락 한쪽을 비스듬히 가리고 밥을 먹었지. 어깨를 움츠리고 왼팔로는 도시락이랑 깍두기 통을 가리면서 말이야.

  "야, 첫눈이다."

  "아니야. 진눈깨비야."

  "하얗게 내리는데?"

  "저 봐, 땅에 닿자마자 녹아 버리잖아."

  그렇게 진눈깨비를 두고 첫눈이네, 아니네 하고 말씨름을 하던 때였어. 나는 수택이 냄새에 조금 익숙해져 있을 무렵이었고.

  "자, 오늘부터 밥은 제자리에서 먹는다."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이 웅성댔어.

 "날씨가 추워서 창문을 자주 못 여니까, 먼지를 내면 안돼서 그래."

  먼지 때문이라는 선생님 말씀을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

  "선생님, 교실에서 말뚝박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요."

  "도시락 통 들고 몇 발짝 걷는데 무슨 먼지가 그렇게 나요?"

  "화장실 가는 것보다도 조금 움직이는데요?"

  아이들은 이상하니까 자꾸 얘기했어.

  선생님은 우리 얘기를 잘 들어주시는 편이었거든. 우리 말이 맞으면 선생님이 생각을 바꾸실 때도 있었어.

  "내가 보기엔 먼지가 난다. 오늘부터 제자리에서 먹어라."

  그날따라 선생님은 우리 얘기를 통 들어주지 않으셨어. 교실은 갑자기 조용해졌지. 우리는 그렇게 딱딱한 선생님이 낯설었어. 나는 하는 수 없이 수택이 옆에서 밥을 먹게 되었지.

 나도 깍두기를 자주 싸 왔어. 수택이처럼 날마다는 아니었지만. 내 깍두기는 고춧가루랑 젓갈이 넉넉히 들어가서 빨갛고 먹음직스러웠지. 나는 깍두기를 집어서 앞으로 가져 가다가 힐끗 수택이를 보게 되었어. 수택이는 뭔가 잘못한 아이 같았지. 몰래 훔쳐 먹는 아이처럼 허연 깍두기를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삼키는 거야.

  나는 조금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수택이 보리밥 위에 내 깍두기를 얹어 주었어. 젓가락으로 들어서 얼른 옮겨 놓고 고래를 푹 수그렸지. 수택이는 밥을 우물거리다 말고 멍하니 있었고.

  한참 그렇게 보고만 있던 수택이가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푹 찍었어. 그러고는 깍두기 하나를 조금씩 다섯 번으로 나눠서 먹는 거야. 도시락 밑으로 흘러내린 국물까지 밥으로 싹싹 닦아 먹었지.

  "윤희야, 이거 어제 배달하고 남은 거야."

  깍두기를 나눠 먹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 수택이는 어린이 신문을 한 부씩 갖다 주기 시작했어. 나는 차마 신문을 거절할 수가 없더라. 건네주는 손에 거무죽죽한 자줏빛이 돌았거든. 손등에는 여기저기 튼 자국이 있었고. 추운 날씨에 배달을 하느라고 동상에 걸렸던 모양이다. 나는 신문을 받아서 가방에 넣었어. 친구들이 알아챌까 봐 빨리 넣느라고 신문이 구겨져 버리곤 했지.

 그렇게 손을 날쌔게 움직였는데도 본 아이가 있었나 봐. 그게 그만 소문이 나버리고 말았어.

  "야, 너 보리 방구랑 사귀냐? 너는 반찬 주고 걔는 신문 주고 그런다며?"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어. 다른 반 친구들도 곧 알게 되었지. 화장실 문에는 '구윤희 ♡ 보리방구'라는 낙서까지 생겼어. 꼭 내 몸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어. 수택이랑 짝이 되었던 날보다도 더 힘든 시간이었어.

  나는 더 이상 깍두기를 나눠 먹지 않았어. 신문도 수택이 서랍에 도로 넣어 버렸지. 내 몸에서 수택이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까 착한 어린이 상은 생각도 나지 않았어. 그저 빨리 소문이 가라앉기를.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를, 그래서 수택이랑 짝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지.

  내가 계속 신문을 도로 제 서랍에 넣는데도 수택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 책상 서랍 속에 신문을 넣어 두었어. 소문은 점점 퍼져 가고 말이야.

  "다시는 나한테 신문 주지마!"

  나는 수택이 얼굴에 대고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지.

  그렇게 으름장을 놓은 다음 날이었어. 그날은 아침 일찍부터 놀림을 받았어. 학교 오는 길에 옆 반 애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야.

  "쟤가 보리 방구랑 사귀는 애야?"

  "연애편지도 책상 속에 넣는다는데."

  나는 뒤로 돌아서서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 그래 봤자 더 웃음거리만 될 것 같아서.

  잔뜩 속이 상해서 교실로 들어옸는데 애들 몇 명이 내 책상 가까이에 몰려 있는 거야. 수택이가 옆에 앉아 있는데도 신문을 펼쳐서 읽다가 후다닥 접어서 넣더라. 급히 넣는 바람에 신문 한 자락이 서랍 밖으로 비죽 튀어나와 버렸지. 

 나는 가만히 서서 수택이 어깨를 보았어, 어꺠 솔기가 터진 스웨터 틈으로 누렇게 바랜 내복이 보였지. 수택이는 어꺠를 떨고 있었어. 누런 내복도 낡고 터진 스웨터도 함께 떨렸지. 그리고 내 어깨도.

  나는 서랍에서 신문을 꺼냈어. 신문을 들고 뒤로 돌아섰지. 나는 난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아이들 시선은 나한테로 모아졌어. 나는 난로 뚜껑을 열었어. 난로 속에는 석탄이 빨갛게 달구어져 있었지. 나는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신문을 구겨서 공처럼 만들었어. 그리고 아이들 보란 듯이 신문을 난로 속에 던져 버렸단다.

  신문에는 금세 불이 붙었어.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어. 교실은 숨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고, 나는 난로 뚜껑을 덮고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지. 그리고 다시는.....다시는 말이야, 수택이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어.

  다시 보지 못한 건 수택이 얼굴뿐이 아니었어. 바들바들 떨던 어깨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뒷모습도 제대로 볼 수 없었어. 곧 겨울 방학이 되었고 수택이는 방학 때 시골 친척 집으로 이사를 가 버리고 말았거든. 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선생님은 가정 형편상 이사 갔다는 말만 하셨고.

  나는 육 학년이 되어서도 자꾸 태워 버린 신문 생각이 났어. 신문을 접거나 구길 때면 그날 구겨 버린 신문 생각이 났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몇 년 동안 난로 속에 뭐를 집어넣는 것만 봐도, 신문 재가 목구멍을 꽉 막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어.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이렇게 겨울 부츠 속에 신문지를 껴 넣을 때면, 봄 신발을 꺼내 구겨 넣었던 신문지를 빼낼 때면, 나는 한참씩 수택이 생각에 잠긴단다. 수택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까 궁금해지기도 하지.

  어디서 무얼 했으면 좋겠냐고? 음....어디서 무얼 하든.....그날이 생각나지 않았으면....생각나더라도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그랬으면 내 친구 수택이가 꼭 그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