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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뿌리-조세희

DidISay 2012. 9. 7. 02:35

어릴적 가장 좋은 나라로 흔히 들었던 것은 아름다운 풍경과 평화의 나라 스위스였다.

 

페터 빅셀은 자신의 책(스위스인의 스위스)에서,

스위스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 스위스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직도 그 나라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엔 스위스.

혹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심지어 땅이 아닌 죽음 너머의 곳을 선택하는 이들도 매일매일 생겨나고 있다.

 

 

 

  지난 70년대에 나는 어떤이의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 한 권을 써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 책이다. 그때 나는 긴급하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80년대에 들어와 바로 10년 전 그 생각에 사로잡혀 또 한 권의 책을 펴낸다. 

  이번 책에는 사진이 들어있다. '슬프고 겁에 질린 시대에 적합한' 것이 사진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지만, 인화를 끝내 공장으로 넘긴 다음에 접한 이 말에 나의 서툰 작업을 연결지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 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은  조세희 선생님의 글들과

사북사태 이후 그곳을 몇년에 걸쳐 방문하셔서 직접 찍으신 사진들,

그 지역 아이들의 짧은 글들이 담겨 있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소름이 돋았기 때문에, 결국 어렵게 어렵게 구입한 책이다.

출판사에 전화까지 해서 문의했었는데, 조세희 선생님께서 재출간 계획이 없다고 하셔서 아쉬웠다.

 

조세희님의 난쏘공을 처음 읽었을 때

주머니가 없는 옷만 입히는 어머니, 아이들이 고기 냄새를 맡고 다니는 장면이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그때보다 훨씬 진한 무거움이 가슴에 얹히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을 덧붙여 본다.

 

  시간이 있을 때 무심히 집어드는 책 두권이 나에게 있다. 국어사전과 법전이 그것이다.  말을 일정한 순서로 모아 실은 사전에 별난 해설은 붙어 있찌 않지만,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생각은 언제나 꼬리를 문다.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물론, 추하고 모질고 무서운 것들,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표현하기 위해 골라 써야 할 많은 말들이 한 권의 책 안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다.

  법률책과 언어사전은 그 성질과 효용이 아주 다르다. 그러나 어느 순간의 감정유발은 사전을 읽을 때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해 나는 놀란다. 법조문들 가운데서 나는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마찬가지로 모질고 무서운 것들을 또 본다. 이때의 '무섭다'는 말은 사전을 뒤적일 때의 그것과 달라 복합적인 공포심과 관련을 갖는다.

  내가 '참 근사하다!' 감탄하며 읽는 부분은 법전 앞쪽에 있다. 그것은 정말 근사해 그 부분의 말들을 읽을 때 나는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떠올리고, 몇 해 전부터 보기 힘들어진 민들레꽃씨의 예쁜 비행 모습을 갑자기 대하게 되는 착각에 빠진다. 이른바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을 국민에게 약속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인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지닌다"는 문장은 큰 감동을 주는 부분 가운데서도 압권이 아닐 수 없다. 국가는 사회보장의 증진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확약까지를 우리는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다.

  보통 문학과 법학은 대립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문학이 기본적 인권의 개념 풀이에서 그 힘을 발휘나느 것을 나는 확인한다. 평등과 자유는 옛날 유렵의 나폴레옹법 이후 모든 법의 내용으로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풀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생활 보장을 국가에 요구할 권리를 갖게 된 것은 바이마르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이 있고 난 뒤부터이다. 그때 이미 경제적 사회적 생존권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권, 공정한 보수를 받을 권리, 단결권, 단체교섭권, 휴식과 여가에 대한 권리, 건강과 안전, 모자보호권, 그리고 문화생활에 참가할 권리 등이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남의 땅에서의 근대적 시민의식의 성장이 우리가 읽는 국한문 혼용 법전 앞부분에 영향을 주어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까지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과정이야 어떠하든, 어떤 개인이 눈물나는 슬픔을 겪는다든가 불행한 처지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개인이 소속된 사회와 국가의 구조, 그리고 여러 제도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오늘에 와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글들...

 

낙원으로 80년대를 약속했던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어디로 숨었나. 그들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가난한 동포에게 매달 쌀 한 말과 보리쌀 반의 반 말이라는 구호양곡, 연탄값 4 천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잘 사는 나라처럼 빈민에게 매달 40여만원을 생활보조비로 지급해 줄 능력은 없어도 한 말의 쌀, 두되 반의 보리쌀 그리고 연료대 4천원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줄 능력은 우리 민족도 갖고 있다. 전체의 생산이 설혹 낮았다고 하더라도 그 동안 물불 안가리고 파괴한 가치가 그대로 있어 부족분은 그것이 메워 주었을 것이다. 변수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는 우리땅 부의 수혜자들도 지나친 욕망이 그렇게 떳떳한 것만은 아니라 믿고, 다수를 위해서, 갖는 것은 물론 소비 수준까지 낮추는 시늉은 했을 것이다. 물론 '부족'은 언제나 나쁜 것이다. 그러나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전체에게는 풍요로울 것이 없는데도 일부만 거짓 가치에 의한 욕망을 키워 놓고 길길이 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달라진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저녁놀을 받고 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기품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는 못하더라도 양곡과 연탄의 지급량을 올리고 어느 정도의 영양가를 지닌 부식이 이따금이라도 좋으니 그 어른의 식탁에 올라가게는 해야 한다. 그리고 21세기 중반, 즉 2050년이나 2060년까지 살 수 있는 젊은이가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희망이 한 쪽으로 몹시 기울어져 있는 일을 나는 슬퍼한다. 능력 있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똑똑한 사람, 힘 센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적당하게 가진 사람들이 협력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바로 짚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좋은 희망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지금 당장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국민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이까지 아는 민주주의를 더이상 파괴하지 않으면서 고통 받는 다수를 소수쪽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생명이 지친 몸에 깃들어 있지 않게 하고도 다른 환경에 닿을 방법이 우리에게는 있을 것이다.  

 

외로운 아이들

 

  우리 둘레에는 외로운 아이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 가운데서도 내 뒤에 앉은 효진이와 지영이가 그렇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외로움 속에서도 명랑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나보다 몇 배나 나은 것 같다.

  점심 때의 일이다. 밥을 막 먹으려 하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지영이가 요사이 아픈 것은 밥을 안 먹어서 그런 것 같으니, 오늘부터라도 지영이와 같이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뒤돌아앉아 지영이와 같이 밥을 먹었는데 지영이의 밥 먹는 모습이 무척 배가 고파 보였다.

 밥을 먹고 우리는 찐도리를 하려고  운동장에 나갔다. 그런데 효진이가 운동장 구석에 쓸쓸히 앉아서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곧 엉엉 울 것만 같았다. "아마도 효진이는 사북 사태로 끌려간 엄마 생각을 하고 있겠지. 참 안됐다" 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에도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세상은 정말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어려운 속에서도 굳굳하게 공부하는 지영이와 효진이가 나보다는 한참 더 큰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들과 더욱 친한 친구가 되어야겠다.

 

-6학년 서주영.

 

 

 

 

 

 

 

 

“팽창하는 우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성운은 그 빛이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우리가 하늘을 어둠이라고 지각하는 것은 바로 이 빛이다. 전속력으로 우리를 향해 오지만 그래도 빛을 내는 성운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멀어지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는 그 빛 말이다. 현재의 어둠 속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려 애쓰지만 그럴 수 없는 이 빛을 지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이다.

 

현재의 어둠 속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려 애쓰지만 그럴 수 없는 이 빛을 지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인은 드물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용기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은 시대의 어둠에 시선을 고정할 수 있다는 것 뿐 아니라 이 어둠 속에서 우리를 향하지만 우리에게서 무한히 멀어지는 빛을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것은 펑크 낼 수 밖에 없는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아감벤, 장치란 무엇인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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